사랑의 대상에 대하여 -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당신은 무엇을 사랑하는가? 당신이 마주한 사람을 사랑하는가, 그 사람과 맺은 관계를 사랑하는가? 전자는 사랑하는 대상이 실재하나, 후자의 경우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두 사랑은 분명히 다르다. 누군가와 사랑할 때, 우리는 우리가 의심할 여지없이 상대를 사랑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상대를 사랑한다는 착각 하에 상대와의 ‘관계’을 사랑하곤 한다. 소설 <단순한 열정>은 아니 에르노가 A라는 외국인 유부남과 사랑한 경험을 기록한 글이다. 그러나,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해당 소설은 작가가 A를 사랑했다 라기보다는 자신과 A의 ‘관계’를 사랑한 경험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A를 만나는 과정에서, 작가는 A와의 사랑을 완성하는 데에 집중한다. 그녀는 모든 일정을 A와 시간을 보내는 데에 맞추고, 매번 다른 차림으로 A를 맞이한다. 또한 작가는 A가 남긴 모든 것을 사랑의 증거로써 보존하며 안심하고, A와 함께하지 않는 시간에는 그에 대한 몽상과 욕망으로 대리만족을 느낀다. 사람은 실재하는 대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가감할 수 없는 현실 그 자체인 반면, 관계는 추상적 대상으로, 모든 의미를 가감할 수 있는 관념적 상태이다. 작가와 A의 관계는 여느 불륜과 같으나, 작가가 부여한 의미와 상상으로 서사를 지니고 진정한 사랑처럼 기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작가가 사랑한 대상은 A 자체 보다는 A와의 관계에 가깝다.
작가와 A의 관계에서, 작가는 주체성이 없다. 두 사람이 맺은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관계는 온전히 A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작가는 A가 부재할 때조차 그를 의식하며 행동하고, 그의 허상으로 자신의 빈 시간을 채운다. A와의 관계는 작가의 일상이자 삶 자체이다. 만약 이들이 헤어진다면, 이는 작가의 의지가 아닌 A가 작가를 떠났기 때문이다. A는 언제든 작가를 떠날 수 있지만, 작가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동등하지 않다. A에게 두 사람의 관계는 시간 날 때 성관계를 맺는 관계에 불과하지만, 작가에게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유지해야 할 대상이다. 따라서, 작가는 A라는 사람을 사랑하기 보다는 A와의 관계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두 사람의 관계에서 작가는 극도로 이기적이다. 작가는 단 한 번도 A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해한 적이 없다. A라는 사람을 알고자 하는 대신, 작가는 두 사람이 함께 하는 허구의 경험으로 A에 대한 이미지를 대체한다. A가 어떤 사람인지는 작가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저, A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사랑한다면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작가가 유일하게 궁금해하는 것은 A를 언제 만날 수 있을지 이다. 모든 것을 A에게 맞춘다는 점에서 작가는 A를 배려하는 듯 보이지만, 이는 A를 위한 것이 아닌 작가를 위한 것이다. 그 사람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작가의 말처럼, 작가는 A라는 사람이 자신에게 가지는 의미보다는 관계를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 행복을 유지하는 데에 목적을 둔다. 이것 역시 작가가 A라는 사람보다 관계에 초점을 둔 사랑을 했다는 반증이다.
앞서 말했듯, 사람은 현실인 반면 사랑은 관념이다. 가감이 불가능한 사실 그 자체인 사람과는 달리, 관계는 한없이 이상화 할 수 있는 대상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으로써 타협과 포용이 필요하다. 반대로, 관계를 사랑하는 일은 끝없는 상상의 연속과, 이를 행하는 자신에 대한 자아도취 과정으로써, 편협하고 맹렬한 감정을 요한다. 작가가 자신이 사랑한 경험을 ‘사랑’이 아닌 ‘단순한 열정’이라고 정의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일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서, 작가는 누군가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는 것이 사치라고 전한다. 현실이 아닌 대상에게 마음을 쓰는 일은 어디까지나 필요 이상의 상념이 필요한, 사치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