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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와가치 Aug 30. 2021

단발 샤기컷

현재 진행형 2

큰 딸의 머리가 계속 마음에 걸리던 터였다. 

베트남은 코로나로 인해 현재 거의 전 지역이 봉쇄 상태이다 보니 학교, 학원들은 물론이고 

음식점 및 상점들, 그리고 미용실도 다 문을 닫았다. 

머리숱도 엄청 많고 말총머리 곱슬머리인 딸이 제 머리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든다고 

작년에 탈색과 염색을 반복하더니 등 아래까지 길어진 머리카락이 얼룩덜룩해지고 

머리카락 끝이 다 부서지고 있는 게 보였다. 에구, 빨리 코로나가 끝나야지, 그러고 있던 중이었다.


"엄마! 나 머리 잘라줘."

"응? 엄마 한 번도 머리 잘라본 적 없어~"

"괜찮아, 어차피 밖에 나가지도 못 하니까 상관없어."

"그래도..."

"깔끔하게 단발로 잘라주면 돼. 끝이 너무 갈라져서 더 이상 안 되겠고 머리 색도 많이 지저분해서..."


아무리 외출할 일이 없대도 그렇지, 한참 멋 부릴 여대생이 완전 초보 엄마에게? 

또 말이야 쉽지, 미용실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머리숱이 많아서 단발머리는 더더욱 자신 없는데... 

걱정은 하면서도 딸이 원하니까 몸은 자동으로 준비를 하고 있다.


우선 유튜브를 검색하니 도움 될만한 영상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서 간단하게 앞머리만 자를 용도로 예전에 사다 놓았던 가위 두 개 꺼내고 

보자기는 없어서 세탁소에서 주는 옷 보관용 비닐을 조끼처럼 목과 양 팔에 구멍을 내고 딸에게 입혔다. 


우선 머리 3분의 2 정도를 잘라냈다. 숱이 많아서 싹둑싹둑 소리가 오래도록 났다. 

딸이 엄마도 이 소리가 좋지 않느냐고 묻는다. 맞다, 이 소리 나도 좋다. 

머리가 가벼워졌다며 기분 좋아하는 딸을 보니 이왕이면 더 예쁘게 해주고 싶어서 욕심이 생겼다. 


"엄마가 샤기 컷으로 해볼까?"

"그거 힘들 텐데... 알아서 해줘."


용감하게 숱 치는 가위로 솜씨를 내고 있자니 딸이 긴장하기 시작한다. 그만해도 될 것 같다는 말만 반복한다. 아냐, 여기가 제일 중요해. 조금만 더 기다려 봐. 의욕과는 달리 땀이 비오 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쪽을 손댈 때마다 양 쪽 길이가 점점 짧아지니 딸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다. 결국 딸은 스톱을 외치고 일어났다. 


"조금만 더 다듬으면 괜찮겠는데 왜 일어나? 잠깐만 더 앉아 있어 봐."

"엄마! 괜찮다고요. 여기서 더 자르면 진짜 안 된다고요."


딸이 존댓말을 한다는 것은 지금 자기 절제 중이라는 거다. 성격 좋아서 엄마에게 머리를 맡겼지만 

이제 더 이상은 안 된다는 강력한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아... 조금만 더 다듬으면 완벽하겠구먼... 

조금만 더 하면 나름대로 괜찮을 것도 같은데... 

이미 욕실을 탈출한 딸을 다시 불러들이기엔 늦었다. 

내 온몸은 땀투성이가 되었지만 미련은 계속 남는다. 

그냥 깔끔하게 단발로 잘라줄걸 괜히 욕심냈나? 딸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잠시 후, 딸이 들어와서

"엄마! 자꾸 보니까 괜찮네. 걱정하지 마. 이 정도면 됐어. 어디 나갈 것도 아니고... 머리도 가벼워졌고 좋아."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말,                                  

"봉쇄 풀리면 머리 다듬으러 미용실 갈게. 괜찮지?"                   


겁 없이 초보 엄마에게 머리 맡기는 딸이나, 

경험 한 번 없으면서 샤기 컷을 해본다고 

덤벼든 엄마나... 똑같다.


엄마 첫 작품을 기념으로 사진 남기자고 하니 

뒷모습을 내준다. 

엄마보다 성격이 좋다.^^


2021년 8월 29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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