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일지라도

내 멋대로 쓰는 글

by 나와가치

다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아이들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래전에 엄마가 양육일기를 쓸 때처럼,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는 엄마의 글쓰기에도 저희들 이야기가 들어갈 것이 뻔하다고 생각할 것이니 나로서도 그 부분이 먼저 해결되어야만 시작할 수 있었던 거다. 염려와는 달리 아이들이 쿨하게 반응해 준 것이 고맙기만 하다.


오래전, 큰 아이와 작은 아이를 특별한 방법으로 만나 아이들을 키우며 일어난 자잘한 일상들을 기록했던 글들과 시간이 흘러 이십 년이 지난 지금 아이들과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들을 동시에 정리하고 기록하는 일이 내겐 매우 의미 있고 즐겁다.


엄마가 글쓰기를 시작했다는데 도대체 어떤 글을 쓰는지 궁금한가 보다. 전보다도 더 안방을 들락거리며 엄마가 지금 뭐하나 관심이 많아졌다. 지금 쓰는 일기도 다시 이십 년이 지나서 보게 되면 좋을 듯한데 말이다. 입양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쓰는 엄마의 의도를 아이들에게도 알려주면 좋을 것 같아서 말해주었다. 긴 설교를 싫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최대한 간단히 설명해 줬지만 이곳에 글을 옮기면서는 내 생각을 제대로 써보련다.




예전부터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매년 떨어진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걱정스러운 부분이었다. 능력도 없는 사람이 주제넘게 출산율 걱정을 하고 있다. 그래도 자녀들 여럿 가진 부모님들을 보면 존경스러운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애국자라고 하는 말을 결코 농담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본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작년 출생아가 처음으로 20만 명대로 내려앉았다는 기사가 나왔다. 한 가정 당 평균 0.84명 꼴이라니 내 마음도 내려앉았다. 지금 오십 줄을 걷고 있으니 내가 태어나던 해 즈음에는 거의 100만 명 대의 아기들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으로 안다. 그 아기들이 성장하며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는데 큰 일조를 했고, 그들이 나라의 기둥으로서 참여한 일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나라의 힘은 사람이다. 그 나라에 사람이 적어지면 나라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이 없으면 더더욱.


한국어 강사로 있다 보니 베트남 상황을 코 앞에서 볼 수 있다. 지금이야 코로나로 잠시 대부분의 한국어 센터들이 문을 닫거나 온라인 수업으로 근근이 유지를 하고 있지만, 코로나 상황이 점점 길어지니 요즘에는 학생 개인의 온라인 수업 문의가 제법 들어오기 시작한다. 코로나 전에도 넘쳐 났지만 코로나가 잠잠해지기 시작하면 학생들은 다시 한국어를 공부할 것이다. 한국으로 유학 가보고 싶고, 한국 회사에 다니고 싶고,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는 것이 학생들의 소망이다. 물론 독일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로 가길 원하는 학생들도 꽤 있다.


동남아 사람들에게 한국은 꿈의 나라다. 이 나라에서 7년 넘게 살아보니 그 마음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가문(가정의 백그라운드)이 좋고 가방 끈마저도 길어서 돈을 따라오게 만드는 상위 층 사람들이나 외국 기업(한국의 삼성 등)에 다니는 사람들을 빼고는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대략 500만 동(우리 돈으로 약 25만 원) 전후를 월급으로 받고 생활한다. 한국어를 조금만 할 줄 알아도 1,000만 동(약 50만 원) 선에서 조정된다.


이야기가 다른 데로 더 새기 전에,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외국에서 살다 보니 애국자가 되어서 그런가? 한국이 정말 좋은 나라구나, 알 수 있다. 미국도 여전히 해결 중인 의료보험 혜택, 동남아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안전한 물, 질서 등등. 우리나라 사람들이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해외에서 유입된 사람들에게 점점 다 뺏기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 아이들의 설 자리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고 나라도 점점 힘을 잃어가겠지 싶다.


비싼 교육비, 감당 못하는 비싼 집값들로 인해 젊은이들의 결혼율도 낮아지고 있고, 결혼하더라도 아기를 낳지 않으려는 신혼부부들도 많다고 한다. 그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관심이 다른 데에 있다. 분명히 그들 중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기를 원하지만 내가 원한다고 해서 그게 본인들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이 시간에도 고민하고 있을 나와 같은 그 한 사람 말이다.


한편에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낙태되어 소리 없이 사라지는 아기가 있고, 낙태를 겨우 면하여 살아났지만 태어나자마자 친생부모와 이별을 해야 하는 아기들도 계속 생겨난다. 그 아기들은 또 해외로 입양될 것인지 국내에 남아 있을 것인지 본인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는 상태로 외로움에 울고 있는 중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불임으로 내가 눈물 흘릴 때 내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부모를 기다리는 아기들이 그렇게나 많이 있다는 사실을 더 빨리 알았더라면(물론 내가 관심을 못 가진 것이 문제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 힘들어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입양이라는 방법도 가족이 되는 방법 중에 한 가지라고 누군가 말해 줬더라면 나는 좀 더 빨리 용기를 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분명히 나와 같은 사람이 지금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자라야 하고, 태어난 나라에서 자라야 한다. 국내에 젊은이들은 줄어들고 나라의 힘은 점점 빠져 가고 있는데 어린 아기들은 여전히 해외 입양을 보낸다는 건 가슴 아프고도 답답한 일이다. 아기를 원하는 부부라면 이 문제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내가 쓰는 이야기들 중에 입양에 관한 글도 있는 것이고 용기를 낸 것이다. 내 글 솜씨가 별로라 하더라도 내 진심을 알아줄 단 한 사람만 있어도 내 이야기를 기꺼이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얘들아! 엄마, 오지랖 넓지?"

내가 먼저 찔려서 자수했더니 딸들이 차례대로 그런다.

"아니야. 엄마 생각이 맞는 것 같아. 더 열심히 써야겠네."

"울 엄마, 응원합니다. 파이팅!"


엄마에게 등 두드려 주는 딸들의 응원에 힙입어 다시 충전받은 힘으로

오늘도 나는 열심히 글을 쓴다.


2021년 8월 31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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