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망설였던 이유
세상 흐름에 맞춰 살기로 마음먹은 후 디지털 세상으로의 입문을 위해 제일 먼저 시작해 보기로 한 일은
인스타그램을 만드는 거였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정보를 제공하며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하는 SNS와 같은 공간을 그동안
내가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니다. 몇 년 전에 아주 잠시 카카오스토리에 글과 사진을 올려본 경험이 있다.
타국에 와서 내가 속해있던 공동체 사정으로 인해 그것을 멈춰야만 했다. 마음 풀 공간이 없어진 허전함은
꽤 오래갔지만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법이라 나도 점점 무뎌지고 게을러지더니 결국에는 글을 쓰지 않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다시 SNS 세상으로 들어와 글을 쓰기로 작정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진심으로 글을 쓰고 싶어서이고,
또 한 가지는 앞으로 점점 더 세상은 디지털화될 텐데 나 혼자 저만치에 뒤쳐져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며칠 전 그렇게 인스타그램 계정만 덩그러니 만들어 놓고는 아직도 한 개의 게시물도 올리지 못 한 채
들어갔다 나왔다 반복하며 주춤거리고만 있다. 초보이다 보니 사용하는 방법을 몰라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인스타그램에는 정말 다양하고 예쁜 이야기들이 많다. 다른 사람들이 활력을 받기도 하고 서로 좋은 정보도
공유할 수 있고, 거기다가 재미까지 따라오니 사람들이 모일 만한 곳이다. 그런 곳에 내가 인스타그램에 딱히
올릴만한 글이 있을까? 내 삶의 흔적들을 다른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곳에 자신 있게 펼쳐 놓을 수 있을까?
겁이 덜컥 났다. SNS부터 배워보겠다는 사람이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두려워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 왜 그렇게 나는 망설이며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 하고 그러고 있는 걸까?
목구멍 안 쪽에서 날마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내 이야기들을 실컷 풀고 싶은데 그게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나의 이야기를 기록하다 보면, 내 이웃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열어야 하고, 내 가족 이야기를 열다 보면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꺼내야 하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는 곧 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제일 잘한 일이 우리 두 딸들을 입양한 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첫 아이가
우리 집으로 오기 전부터 나는 그 설레는 마음들을 내 일기에 담기 시작했다.
아이가 우리 가족이 되고 나서, 우리 부부와 같은 마음으로 입양한 부모님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몇 분들이 모임을 만들어 자신의 아이들을 어떻게 잘 키울지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시설에 있는
아이들이 한 명이라도 더 엄마 아빠를 만날 수 있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입양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부모님들도 이미 일기를 쓰고 있었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그분들과 일기를 나누는 일에 합류하게 되었다.
일기는 입양을 망설이는 가정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점점 새로운 입양가족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여주었다.
각자 가정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에 대해 서로 위로하고 칭찬하며 간혹 문제가 생기면 내 일처럼 뛰어가
발 벗고 도와주었다. 기쁨과 슬픔을 나누다 보니 우리는 어지간한 친척보다도 더 가까운 가족들 같았다.
아이들의 커가는 일상이 모두 이야깃거리였고,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소재가 되던 시절이었다.
15년 간 그렇게 꾸준히 쓰던 일기를 어느 순간부터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부터 두 딸들에게 솔직하게
입양 사실을 말해줬고, 아이들도 엄마가 오랫동안 육아일기 써왔던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읽히는 것을 불편해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바로 일기를 멈추었다.
그러고 나서 7~8년이 지났다. 대학생 고등학생이 된 두 딸은 어김없이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내 옆에 있다.
엄마가 블로그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육아일기를 한 곳으로 모으다가 컴퓨터 다루는 솜씨가 부족해서
큰 딸의 도움을 잠시 받았는데 그러다 보니 두 아이들이 오고 가며 엄마가 예전에 써 놓은 자기들의 어릴 적
이야기들과 사진들을 보게 되었다.
"하하하! 정말 재미있다."
"엄마, 계속 쓰지 왜 중간에 멈췄어?"
자기들이 엄마에게 불편하다고 말한 사실을 전혀 기억 못 하겠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상관하지 말고 쓰지
왜 그랬냐고 오히려 엄마 탓을 한다. 그때 내가 지나치게 신중해졌던 바람에 우리 아이들의 소중한 일상들을
놓쳐버린 게 아깝기만 하다. 아이들이 다시 시작해 보라는 말에 망설임 없이 나는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다른 조심스러운 소재들도 많겠지만, 특히나 내 입장에서의 입양 이야기는 약간 살 떨리는 모험 같기도 하다.
예전에도 그러한 일들로 가끔씩 상처를 받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생각이 다 달라서 어떤 이는
우리 집 이야기에 함께 즐거워도 해주고 함께 슬퍼해 주지만, 어떤 이는 아이들 상처되게 뭐하러 이런 글들을
쓰냐고 비난한다. 앞으로 또 그런 일이 반복될 수도 있는데 나 다시 감당할 수 있을까?
"엄마! 어때? 다른 사람들 마음까지 뭘 신경 쓰고 그래? 우리 가족만 괜찮으면 된 거지.
그리고 엄마가 우리 이야기만 쓰는 거 아니잖아? 엄마 쓰고 싶은 이야기 많다며...
그럼 쓰면 되지, 뭐가 문제야? 우리 초상권만 잘 지켜 주시면 됩니다아~"
내가 이 나이가 되고, 아이들이 크고 나니 이제는 나보다 아이들이 똑 부러진 말들을 더 자주 하는 것 같다.
딸들의 응원에 힘입어 다시 용기를 내고 있다.
며칠 고민하다가 인스타그램이 아닌 브런치에다가 글을 쓰기로 했다. 나의 이야기를, 내 일상들을......
그저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의 모습으로, 두 딸들에게 자랑스럽고 당당한 엄마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