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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와가치 Sep 02. 2021

배려가 아쉽다

베트남 이야기 3

베트남에는 한국 교민들이 많다. 외국에 나와 있어도 어느 도심에 들어서면 여기가 한국인지 베트남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한국 식당이나 상점들이 많은 한국 타운 같은 곳이 있다. 식사를 하거나 옷을 사려고 한국 상가들을 들어가게 되면 자주 접하게 되는 한국 사장님과 직원들의 대화를 듣게 된다. 좋은 사장님도 참 많다. 그렇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사장님들도 종종 보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이 다치곤 한다.



짧은 커트 머리를 하고 이 스타일을 고집한 지가 20년이 넘었다. 얼굴 앞으로 쏟아지는 머리카락이 없으면 어떤 일이든 더 집중이 잘 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후로 이 머리 스타일을 계속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단점이 있다. 자신 없는 얼굴일지라도 화장품을 전혀 안 바르고도 외출할 수는 있는데 머리 스타일이 약간이라도 내 기준에서 벗어나면(양쪽 균형이 안 맞다거나, 너무 가라앉았다거나 등) 하루 종일 머리에 신경 쓰인다. 이상하게도 머리 스타일에 쓸데없이 예민한 것이 어째 고쳐지지가 않는다.


베트남으로 오니 미용실을 선택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짧은 커트는 한 달에 한 번 단정하게 다듬어 줘야 하기 때문에 미용실 선택은 내게 중요한 일이었다. 몇 달 동안 미용실을 여러 번 바꾸었다. 베트남 여성들 대부분이 긴 머리를 선호해서 자연 그대로 놔두거나 또는 그 상태에서 약간 자르든지 가벼운 파마를 하는 정도라서 이곳 미용실의 개념은 일주일에 서너 번 가서 머리 감으면서 마사지(약 4~6만 동, 우리 돈으로 2~3천 원) 받는 용도로 더 많이 쓰인다. 요즘에는 나처럼 머리 짧은 중년 여자들도 종종 보인다. 아무튼, 현지 미용실에 오는 외국인 손님의 까다로운 쇼트커트를 마음에 들게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 아는 사람도 없어 어떻게 견뎌 보기는 했지만 결국엔 돈이 좀 더 비싸더라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미용실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몇 군데 다니다가 내 스타일을 감지하고 딱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커트해 준 미용실을 몇 달 만에 찾았다. 굳이 요긴 요렇게 해주고, 여긴 이렇게 해 달라는 잔소리가 필요 없기에 마음이 편했다. 처음엔 그랬다. 처음엔.


젊은 원장이(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가위 놀리는 솜씨도 대단하고 방문한 손님들에게 친절한데 딱 한 가지 흠이 있었다. 그것은 현지 직원들에 대한 말투였다. 내가 방문할 때마다 직원들을 매번 무시하고 짜증을 내는 것이 보였다. 

"야! 정신 좀 차려.", "쟤 왜 저래.", "어이구, 말 되게 못 알아듣네." 등등. 


원장에게 머리를 맡긴 채로 원장과 직원의 대화를 들어봐도 별로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직원들을 비하하며 야단을 쳤다. 원장은 이미 습관 된 것 같았다. 그러다가 다시 손님과 이야기할 땐 급 친절 모드로 돌아오는 거다. 손님에게 베푸는 친절의 반만이라도 직원들에게 돌리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손님 있는 데에서도 저 정도인데 손님 없을 땐 어느 정도로 대화할까, 아니면 손님 앞에서 더 완벽한 방법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포장하여 보여주려는 걸까, 아니면 그냥 허세? 괜히 머리만 복잡하게 혼자 별의별 생각을 다 하고 앉아있다. 내 머리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들어서 받는 스트레스보다도 그 미용실 원장의 베트남 직원들에 대한 태도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 결국 그 미용실도 더 이상 가지 않게 되었다. 



한국 식당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직원들에게 말투가 안 좋은 사람들이 있다. 위의 미용실과 마찬가지로 손님들 있는 데서 현지 직원들을 야단치는 사람들을 여러 번 보았다. 한국이 베트남보다 약간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착각하는 데서 오는 행동들이 아닐까 싶다. 


사장님이 손님한테 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친절하고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을 보게 되면 나는 음식 맛과 상관없이(아니, 그런 식당들이 확실히 맛있다) 한 번이라도 더 그 식당을 찾게 되고 누군가와 식사 약속을 잡게 되면 마음 편했던 그곳으로 내가 먼저 예약을 잡게 된다. 



해외에 나와 있으니 각종 단톡방들이 많다. 아파트 입주민 단톡 방부터 한국 물건 단톡방, 중고거래 단톡방, 베트남 어느 지역에서 올라오는 믿을만한 특산품 단톡방 등 다양한 단톡방들이 있다. 물건을 사고파는 단톡방들은 물건 판매하는 내용만 올라오니 괜찮은데 아파트 입주민 단톡방이라는 곳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위 집이나 옆 집의 소음 문제, 단전 단수, 쓰레기, 주차 문제, 그리고 각종 사고 등 여러 가지 이유들로 서로 간에 시비가 벌어지기도 하고 어느새 또 화해 무드가 펼쳐지기도 한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문자들이 올라오니 탈퇴할까 싶다가도 그래도 이곳에서 여차 필요한 새로운 정보들을 많이 알게 되니 해외 생활에서의 입주민 단톡방은 불편하면서도 탈출하지 못하는(않는) 얕은 늪 같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베트남 아파트에서 현지 사람들과 살다 보면 때로 한국인의 정서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럴 때, 하나의 글을 올려도 예의를 갖춰서 신중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글을 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현지인에 대한 비하를 서슴없이 내뱉기도 한다. 한국인들의 단톡방이라 해도 한베 가정들이 있기 때문에 그 글을 본 베트남 아내들의 '좋게 말씀해 주세요. 베트남 사람들이 다 그렇지 않아요.'와 같은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내가 미안해진다.


한국 사람들도 현지인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서너 달 전쯤인가, 새벽 1시가 넘었는데 어디선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거다. 뭔 큰일이 났나 싶어 베란다로 나가 내려다보니 한국인 남성 하나가 술에 잔뜩 취해 온 아파트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의 한국어로 된 욕 종류는 다 나오고 있었다. 옆에 아무도 없고 혼자서 그렇게 허공에 대고 악을 쓰는 중이었다.


두 가지 마음이 들었다. 저분 사는 게 고달프신가 보다, 마음 아프다, 이런 감정과 외국에 와서 왜 저렇게 남들에게 민폐 끼치면서 살지? 하는 마음. 내 안에서 두 마음이 서로 부딪치고 있을 때 2명의 아파트 경비원이 그 남성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 사람이 남의 나라 한국에 살면서 아파트 1층에서 저렇게 고래고래 소리 지를 수 있을까? 저분은 왜 남의 나라 베트남에 살면서 그렇게 악을 쓰며 욕을 해댔을까?



아주 오래전에 보던 TV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제목은 생각나지 않는다. 몇 명의 일반인 청춘 남녀가 출연하여 서로에 대해 알아보고 관심을 갖다가 맨 나중에는 호감이 가는 상대방 번호의 버튼을 눌러 화살표로 교제하고 싶다는 마음을 표시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어떤 날은 양쪽의 화살표가 서로에게 향해져 모두 짝을 이루는가 하면, 어떤 날은 한 팀만 정해지기도 하고, 어떤 날은 화살표의 방향이 제각각 흩어져 아무도 성공하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베트남에 살다 보니 가끔 그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한국 사람들과 베트남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서 각각의 화살표들이 중구난방 흩어지는 모습. 이 프로그램은 끝나지 않고 계속 진행 중이다.


나는 내 나라 한국 사람이 이국 땅에 와서 욕먹는 것도 마음 아프고, 내 나라 한국 사람이 이국 땅에 와서 현지 사람들을 비하하고 함부로 대하다가 현지인들에게 안 좋은 인식을 심어주는 것도 마음 아프다. 서로에게 좀 더 배려하고 좀 더 예의를 지켜 말하면 서로가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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