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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국어는 배우면 배울수록 더 어려운 것 같아."
고등학교 2학년인 작은 딸이 안방으로 들어와 '국어 수행평가' 용지를 내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하소연을 한다. 독후감을 작성하는 중이었나 보다. 결론을 내야 하는데 도무지 문장이 이어지지 않고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면서 엄마의 도움을 받으러 들어온 것이다. 언니와 달리 그동안 공부하는 것에 별 취미도 없고 성적이 한참 저 아래로 겸손하게 나와도 태평해 보이던(엄마 눈에는)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더니(그것도 2학년이 되면서) 뒤늦게서야 불이 붙어 열심을 내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 뭘 모르면 궁금할 것도 별로 없지만 적극적으로 뭔가를 배우려고 할 때는 자신이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알고 싶은 것들이 많아지는 것이 당연해지는 법이라, 올해 들어 작은 딸의 폭풍 같은 질문들을 온몸으로 받아내느라 요즘 자주 긴장하곤 한다. 책 내용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좀 나눈 후, 이미 써 놓은 글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게 하면서 글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엄마도 그래. 한국어가 너무 어려워. 배울수록 더 어려워."
"에이~ 한국어 선생님이 한국어가 뭐가 어려워?"
딸은 엄마가 저를 위로해 주는 소리라고 생각했는지 다음 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볼 일 끝난 제 과제만 홱 집어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아, 사실인데...
베트남에 와서, 현지 학생들이 해달란다고 겁도 없이 한국어를 가르치다가, 이 일이 한국 사람이라고 해서 누구나 가르칠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깨닫고는 늦은 나이에 한국어 강사 자격증을 땄다. 뭘 모르고 가르칠 때는 마음 편하게 가르쳤는데 한국어에 대해 깊이 공부할수록 오히려 더 어려웠다. 그래서 딸의 마음을 잘 안다.
낮에 두 딸과 거실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밥 먹을 때 TV 예능도 같이 보자면서 큰 딸이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채널을 맞춰 놓은 것이 '놀면 뭐하니?'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우리 집에 한국 TV가 연결되어 있지 않아 나는 유튜브에서 짧은 동영상으로 한두 번 본 적이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유재석을 비롯한 몇 명의 연예인들이 깜짝 맞춤법 퀴즈에 나온 헷갈리는 한국어를 맞추는 시간이 있었다. 딸들과 함께 그 문제들을 풀면서 나는 많이 맞출 거라고 생각했다. 헷갈리기는 했어도 나름 자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어이가 없었다.
"하하! 엄마는 한국어 선생님인데도 많이 틀리네."
"그러네, 엄마도 잘못 알고 있는 게 많네..."
얼굴이 빨개지는 순간이었다. 점심을 다 먹고 나서 네이버에 검색하여 그 프로그램에 나왔던 단어들을 다시 찾아보았다. 이왕에 본 것이니 다음부터는 절대 틀리지 말아야 하니까.
금새 금세 희한하다 희안하다 성공율 성공률 어쭙잖게 어줍잖게 컨닝 커닝
닥달하다 닦달하다 쩨쩨하게 째째하게 커텐 커튼 해코지 해꼬지 머리끄덩이 머리끄뎅이
베게 베개 뒤치다꺼리 뒤치닥거리 우겨넣었다 욱여넣었다 웬지 왠지 쑥쓰럽다 쑥스럽다
이파리 잎파리 웃어른 윗어른 스낵 스넥 햇갈린다 헷갈린다 화병 홧병
북어국 북엇국 시푸드 씨푸드 엉큼하다 응큼하다 헬슥하다 핼쑥하다
늦은 밤, 자기 전에 브런치 내 서랍장에 써 놓은 글을 발행하고 자야겠다 생각하고 마무리하면서 끝으로
'맞춤법 검사'를 눌렀다. 어, 그런데 컴퓨터가 이상하다. '당췌'라는 단어를 '당최'로 수정해 버리는 것이다.
이건 분명히 내가 맞는데? 컴퓨터도 실수하는군. 내 멋대로 '당췌'라고 자신 있게 수정한 후 발행을 눌렀다.
그런데 찜찜했다. 바로 '국어사전'을 열었다. 헐~ '당최'라고 알려주던 컴퓨터가 맞은 거였다. 나는 지금까지 이 단어를 자신 있게 사용해 왔다.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이 없었다. 맥은 빠졌지만 겸손히 단어를 수정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자신 있게 착각한 일들은 얼마나 많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옳다고 우기며 살았을까? 얼굴이 뜨거워진다. 더 많이 공부하고 겸손해져야겠다.
2021년 9월 6일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