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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와가치 Nov 14. 2021

"꼭 너 닮은 딸 낳아서 키워 봐."

현재 진행형 5

매거진 북에 올라온 어느 브런치 작가님의 글을 읽다가, 나는 벌떡 일어나 두 딸이 있는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두 딸에게 느닷없기는 했지만 진심이 담긴 사과를 했다.  

"그동안 엄마가 너희들에게 '꼭 너 닮은 딸 낳아서 키워 봐!'라고 했던 말 미안해. 엄마가 처음에는 긍정적으로 시작한 말이었는데 너희들이 큰 후로는 가끔 안 좋은 뜻을 담아서 말한 적도 있었어."


두 딸들이 눈이 동그래져가지고는 엄마가 갑자기 방에서 툭 튀어나오더니 왜 저러나 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나는 방금 전의 내 진실함이 식기 전에 여전히 내 속에 남아있는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브런치에 올라온 글을 읽다가 반성하게 되었어. '너도 너 같은 거 하나 낳아 봐. 매일매일 이뻐서 까무러칠걸'이라는 대목인데 작가는 친정 엄마가 그 말을 자신에게 해줄 때 감사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고 고백하는 거야. 엄마도 그 작가의 엄마 같은 마음인데, 너희들이 간혹 삐딱하게 행동할 때 엄마가 그 말을 사용하고 있더라고..."




그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들에게 시작한 '나중에 커서 꼭 너 닮은 딸 낳아 보라'는 축복의 말이 점점 변질되기 시작한 건 아이들과 의견이 부딪치기 시작하고, 부모의 마음을 몰라주니 속상해서 사용한 말이기도 했다. 가족이기 때문에 그런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고 스토리는 많지만 한 가지 예를 들어 본다면 다음과 같은 상황들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거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신세 한탄하듯 한숨을 푹푹 쉬기 시작하면 내 마음이 답답해지곤 한다. 한 넘만 그러는 게 아니고 둘 다 거울만 들여다보면 습관처럼 그런다.

"내 얼굴은 왜 이렇게 못 생겼을까?" 

"으... 급 우울해진다." 등등...


그 정도면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미모들이니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타이르면 쌀쌀맞은 대답이 되돌아온다.

"엄마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지. 세상 사람들에게 다 물어봐. 자기 딸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하지."

"언니 말이 맞아. 엄마는 우리 마음을 이해 못 해. 이렇게 생겼는데 예쁘다고 맨날 거짓말해..."


이렇게까지 자신들에 대해 자신감이 없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저 예쁜 얼굴들로 좀 밝게 웃고, 더 씩씩하고 자신 있게 세상을 향해 전진했으면 좋겠구먼 거울 앞에만 서면 들려오는 소리,

"정말 못 생겼다..." 

"나도... 진짜 마음에 안 든다..."


아이들이 저렇게 말을 하면 그냥 나도 에구 또 시작이군, 하면서 그러려니 내버려 두면 되는데 엄마 입장에서 두 딸 모두 매일 신세한탄하듯 그러고 있으니 마음이 답답하다. 상대방에게 거부감을 줄 정도만 아니라도 감사하며 살 텐데, 객관적으로 뜯어봐도 그 정도면 양호한 얼굴들인데 왜들 저럴까. 물론 나도 청소년 시절에는 어느 정도 그런 증상이 있었다만 딸들처럼 저렇게 심각하게 그러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의 양육 방식에 문제가 있어서 아이들이 자신들에 대해 자존감이 낮은 걸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얘들아, 감사한 마음 가지고 살아. 그 정도면 너희들은 미인에 속한다니까?"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두 개, 아니 네 개의 강한 광선이 내 얼굴로 꽂힌다. 믿지 못하겠는 말은 제발 하지 말라는 신호의 화가 난 눈들이다. 나도 그러면 그쯤에서 마무리하면 되는 거고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을 봐서라도 멈춰야 되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자꾸만 말이 길어지면서 너희 자신들 스스로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좀 살라고 억지로 다그친다. 그러면 예상되어 오는 답변,

"엄마, 1절만 하세요!"

"언니 말이 맞아. 엄마는 왜 그렇게 우릴 자꾸 설득시키려고 해? 짜증 나!"



이렇듯 종종 서로의 의견이 다를 때마다 내 속이 터지기 시작하고, 좋게 타일렀는데도 결론이 나지 않으니 마무리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흘러가곤 한다.

"엄마한테 왜 그렇게 버릇없어? 그건 엄마한테 쓰는 말투가 아니잖아. 안 그래?"


아이코, 이번에 또 질 것 같다. 싸움할 때는 질문하는 게 아니라는데 나는 왜 매번 그걸 까먹을까...

"응! 안 그래!  엄마도 딸들 마음 모르면서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지."



그렇다고 해서 엄마인 내가 딸들에게 '그래, 얼굴이 마음에 안 들어서 고민되는구나. 엄마는 너희들 마음 이해해.' 그렇게 대답한다면 아이들은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점점 더 자신 없는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 아닌가. 그러니 엄마인 나는 딸들의 마음가짐을 최대한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꿔주고 싶은 것인데 도무지 엄마의 말을 믿지 않고 심지어 무시하는 느낌마저 들으니 화가 날 수밖에.


이쯤에서 나오는 말이 딱 이거다. 예쁜 얼굴과 함께  도통 안 고쳐지는 성질머리 두 가지 상황을 다 떠올리며 

"꼭 너 닮은 딸 낳아서 키워봐라~"





세상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이 나도 우리 두 딸들이 정말 예쁘고 사랑스럽다. 항상 고맙고 누군가에게 늘 자랑하고 싶은 딸들이다. 큰딸은 대학교 성적도 좋지만, 야무지고 똘똘한 데다가 요리도 잘하고, 매사에 낭비가 없고 나보다 더 알뜰하다. 어디에 내놔도 걱정이 안 될 만큼 의젓한 딸이다. 또 작은딸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품어온 꿈(노래와 댄스)을 한 번도 바꾼 일이 없을 정도로 추진력이 뛰어나서 고등학교 2학년인 지금까지도 열심히 스스로를 갈고닦고 있는 데다가 우리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자기 몸매와 체력 관리를 확실하게 하니 부러움의 대상이고, 생활하는 데 있어서 정리정돈이 항상 몸에 밴 멋진 딸이다.


당연히 두 딸들에게도 모난 성격이나 고쳤으면 하는 단점들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머리가 커지니 이제는 부모의 옳은 소리나 충고를 그저 반복되는 잔소리 정도로 종종 무시하고, 짜증을 내거나, 심지어 가족 중 누군가와 대화 도중 의견이 안 맞으면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이후 집안 분위기가 살벌하게 변할 때도 있다. 


부모로서의 충고이자 잔소리일 수 있는 양면성을 가진 그런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대략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른다. 부모는 자식들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도움이 될만한 조언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기도 하고, 세상을 좀 더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눈을 길러야 스스로도 피곤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숙제인 사람들과의 유연한 관계도 맺으며 둥글둥글하게 사는 것이 자신에게 좋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을 뿐이다.

 

물론 어른이 된 내가 지난날을 돌아볼 때 매우 잘 살아왔다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지금 생각하니 그 옛날 내 엄마가 나에게 하셨던 말도 똑같았네.

"너 같은 딸 키워봐야 네가 엄마 마음 알지..."


그러고 보니 다행이다. 돌아가신 친정엄마의 뜻과 다르게 지금 나는 나 같지 않은 두 딸들을 키우고 있으니.



2021년 11월 13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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