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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와가치 Oct 14. 2021

기러기 가족

어쩌다 보니 중년 1

남편과 이산가족이 된 지 어느새 5년이 넘었다. 가족은, 특히 부부는 어떤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한 집에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동안의 내 확고한 지론이었다. 한국에 살 때, 주변의 기러기 아빠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도 그랬고, 같은 하늘 아래에 살면서도 주말부부로 살아가는 분들을 보면 마음이 짠해져서 어지간하면 합쳐서 살지, 혼자서 그랬다. 나는 '절대로' 그렇게 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삶이란 우리 계획대로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경험해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 가족이 베트남에 온 지 2년쯤 되던 2016년 어느 날, 한국에 있는 남편의 사업장에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받았다. 곧 본사에서 남편 사업장의 대리점 간판을 떼라는 조치가 내려질 것 같다는 소식이었다. 남편이 20년 넘게 힘들게 일구어 온 사업장인데 하루아침에 이 무슨 청천병력 같은 소식인지 싶어, 남편은 그날 오후에 비행기 표를 급하게 예약하여 밤에 귀국하는 비행기를 탔다. 일단은 가서 무슨 상황인지 알아보고, 우리 입장에서도 어떤 조치가 필요한 건지 해결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총동원해야 했다. 


이곳에서 우리 부부가 2년 정도 베트남어를 배웠으니, 이제 슬슬 현지에서 사업도 알아보려고 여기저기 둘러보던 참에 일어난 일이라 너무 당황스럽기도 하고 걱정이 되었다. 남편이 우리만 남겨두고 귀국했다는 현실보다는 그저 이곳에 남아 남편의 사업장에 아무 일 없기 만을 기도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며칠 시간이 지나는데도 해결 기미도 안 보이고, 남편에게 물어보아도 자리를 비웠던 2년 간에 일어났던 일을 어찌 설명하기 어렵고 더 알아보는 중이니 기다려 보라는 말만 반복해서 할 뿐이었다. 남편 없는 타국에서 아이들과 1주, 2주, 3주, 한 달 그렇게 피 말리는 시간들을 보냈다.


문제의 윤곽이 드러났다. 우리 가족이 베트남으로 오면서 남편 사업장을 시아주버님께서 도맡아 일해 주시기로 했기에 우리도 마음 편하게 베트남으로 올 수 있었던 거고 실제로도 열심히 일해주신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대기업들이 으레 그렇듯이, 본사에서 경영 상 인원 감축 등의 이유로 명예퇴직 인원이 정해졌는데, 그중에 우리 사업장을 관할하던 지역 주재원이 그 대상에 포함되었던 것이다. 맨 입으로 퇴사 당하긴 억울하니 뭐 하나라도 꿰어 차고 나가려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주인 없는(주재원의 생각으로) 남편 대리점을 타깃으로 삼아 손에 넣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 남편 있을 때 같으면 상상도 못 할 본사에서 대리점에 보낼 보고나 소식 등을, 운영 책임을 맡고 계신 아주버님께 대부분 다 누락시키는 방법으로. 그 바람에 본사와 남편 대리점 간의 소통이 거의 끊어져 버린 지경에 이르렀고, 본사 살림과 대리점의 살림의 장단이 서로 맞지 않으니 본사의 대리점 심사 뿐만 아니라 운영 상태가 점점 악화되었고 최악의 상황까지 전개되어버렸던 것이다. 

남편의 노력으로 결국 본사에서도 모든 상황을 알게 되었다. 조금 구멍 난 틈으로 남을 넘어뜨리고,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욕심 내는 사람들이 그리 가까이에 있었다니... 눈 뜨고 코 베어가는 세상이라는 말을 그때 처음 실감했다.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손이 떨린다.


남편이 사업장의 문제들을 다 해결하는데도 일 년이 넘게 걸렸다. 그 주재원 때문에 발생할 일뿐만 아니라, 그동안 아주버님께서 열심히 운영해 주셨대도 오너(남편)가 비었던 자리가 표시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나 보다. 정상적인 사업장으로 다시 일어서는데 거의 2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었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으니 이제는 우리 가족이 다시 만나야 되겠다고 서로 이야기를 나눌 즈음,  본사에서 부담스러운 요구를 해왔다. 지금 있는 대리점이 비좁으니 창고 확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욕심 내지 않고 남의 땅에서 아담하게 운영해 오던 사업장이었는데 본사의 요구로 일이 커지니 남편의 고민도 깊어졌다. 그러나 남편 사업장이 개인 사업이기도 하지만 본사의 이미지 문제와도 관련되는 일이니 우리가 시치미 떼고 거절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일이 다시 커졌다. 남편이 은행 융자를 끼고 땅을 매입하게 되었고, 대리점 건물을 신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많은 일들(2년이 20년 같이 느껴지던)이 일어났다. 경험도 없이 건축이라는 걸 처음 시작한 남편은 마음고생을 너무 심하게 하여 거의 2년 동안 죽다 살아났다. (처음 건축이라는 걸 해보는 사람은 지인이 아닌, 오히려 아예 생판 모르는 건축 업자에게 일을 맡겨야 한다는 교훈을 얻음) 점점 피폐해져 가는 남편을 살려 달라고 나는 매일 울면서 기도했다. 이건 내 남편이 책으로 써야 될 것 같다. 다시 떠올리기 싫을 수도 있지만.


사업장의 건축도 끝나고 완전히 안정되어서 남편이 베트남과 한국을 몇 차례 오고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아... 갑자기 또 나타난 복병, 이 눔의 코로나... 베트남의 지나치게 발 빠른 조치에 따라 베트남은 특별 입국기 외에 모든 비행기가 멈추었고, 새로운 비자를 허락해 주지 않는 바람에 남편은 더 이상 베트남으로 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또 이렇게 2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베트남에 올 때 중학생, 초등학생이던 두 딸은 이곳에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지금은 대학생, 고등학생이 되었다. 아이들 학교를 옮기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그 당시 상황에서는 우리가 한국으로 갈 수도 없었지만, 사실 남편 없이 이곳에 있기도 불안한 상황이라 '이 또한 지나 가리라' 나를 위로하면서 지내온 시간들이었다.


나보다 먼저 베트남을 더 좋아했고, 우리 가족 다 같이 베트남으로 가자고 한 것도 남편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베트남을 그리워하는 남편이지만 오고 싶다고 해서 올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한국에서 시어머님과 함께 지내니 아침저녁 식사 문제는 다 해결되어 다행이지만, 그래도 내 가족이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인지라 남편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화상 전화를 한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나는 그런대로 괜찮은데 혼자 떨어져 있는 남편은 힘들어 하는 게 역력하다. 안쓰럽다. 예전처럼 자유롭게 한국과 베트남을 오고 갈 수 있는 상태에서 우리 사정으로 못 만나는 것과,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자유롭게 두 나라를 오고 가지 못해서 못 만나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계획에 없이 오랜 시간 기러기 아빠가 되어버린 남편, 여전히 베트남어 공부도 하고, 취미 생활도 누려보려고 하지만 재미가 없다고 한다. 그래도 그 가운데서 굳이 감사함을 찾자면, 오십 중반을 넘어가고 있는 우리 부부가 이 나이에 권태기 대신에 서로에게 너무 애틋해진 것이고, 가족의 소중함을 날마다 깨닫고 있다는 것이다. 밤마다, 딸들과 다함께 통화하며 그날 우리 가족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서로 보고하느라 한 시간도 넘게 통화하는 일도 하루 중의 일과가 되었다. 


가족은 함께 있어야 한다. 할 수 있다면, 자녀들의 모든 시절을 부부가 함께 지켜봐야 한다. 특별히, 나는 둘째 딸의 사춘기를 겪으며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경험했는데, 그 시각 남편은 사업장 건축 일을 놓고 인생의 쓴맛을 맛보고 있을 때라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뼈아픈 경험을 하며 마음이 자랐다.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지만 각자 마음 고생한 것을 알기에 다독거리고 위로하며 이겨낼 수 있었다.


부부는 함께 밥을 먹고 날마다 생각을 나누어야 한다. 사소한 일일지라도 함께 기뻐하고 위로해야 한다. 서로의 신앙 상태를 점검해 줘야 하고, 아이들을 잘 양육하기 위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나눠야 한다. 어제보다 더 세어진 머리카락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건강한 노후를 어떻게 보낼지 대화해야 한다.각자 지친 어깨를 기대고 쉴 수 있어야 하며, 멋지게 저물어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그렇게 나이 들어가고 늙어가고 싶다. 

  

예전에 기러기 가족으로 살아가는 다른 사람의 처지도 모르고 함부로 그들의 방식에 왈가왈부했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내가 이 상황이 되어 보니 알겠다. 삶이란 사람의 계획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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