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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와가치 Feb 09. 2022

자유로워지다

과거완료형 12

거의 한 달 가까이 우리집에 머무르시던 어머님께서 시댁으로 올라가셨다. 무게 좀 나가는 울 아기 키우느라 발병이 나서 고생하는 며느리 도와주시러 시어머니께서 와 계셨던 상태였다. 틈틈이 시댁 일이나 어머님 일 보시기 위해 왔다갔다 하시면서 아픈 며느리 뒷바라지 해주시느라 고생이 많으셨다. 말이 며느리 뒷바라지지 부지런하고 손 빠른 어머니가 내 살림 다 해주시고 아기 케어까지 거의 다 해주시는 바람에 모처럼 쉼다운 쉼을 갖는 시간이었다. 이제는 내 발 상태가 많이 좋아지기도 했고, 어머님도 바쁜 시간인데도 와주셨던데다 더이상 시간이 허락되지 않으므로 오늘 가신 것인데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동안 그저 감사하다는 생각 뿐이다. 


처음에는 발 때문에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아기를 본가에 며칠이라도 데려다 놓으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다. 어머님도 아기 돌봐주시면서 어머니 일을 하실 수 있고, 너도 쉬어라,는 뜻이었는데 나는 단번에 안 되겠다고 말씀 드렸다. "어머니, 저 이제 우리 아기 없이 못 살아요.ㅎㅎ" 정말 그랬다. 이제는 내게 아기 없는 날은 상상할 수도 없다. 아기는 옆에 두고 보고 싶고, 몸은 힘드니 어머님이 우리집으로 오셔서 도와주실 수 있는지를 묻는 내 방식의 대답이었다. 이미 며느리 뜻대로 해주실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입양 전, 우리가 오랫동안 아기 없이 살 때 시부모님께서는 며느리인 내게 재촉도 스트레스도 주지 않으셨다. 오히려 친척이나 주변 분들의 질문에 스트레스가 쌓이곤 했다. 친정엄마의 성화도 심했다. 딸을 가진 친정엄마로서 그러실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때는 그것조차도 힘들었다. 

다시 시부모님 이야기로 돌아와서, 보통의 시부모님들이라면 "아직 소식 없냐?"고 하셨을텐데 두 분은 그러지 않으셨다. 묵묵히 기다려 주셨고 며느리인 내게 불편한 질문을 하지 않으셨다. 딱 한 번 아들에게 "너희들 계획이 따로 있니?"라고 물으시더라는 것을 남편을 통해서 들었을 때 내 눈에서 눈물이 나온 기억이 난다. 


우리의 결혼을 허락하실 때 어머니는 "너희 둘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거 맞지? 그리고 둘이 앞으로 신앙생활 잘할 수 있지? 그 두 가지면 나는 다른 거 바라는 거 하나도 없다." 말이 없으신 시아버님과는 달리 대장부 성격인 어머니의 그 말씀에 나는 시어머니께 홀딱 반했고, 시집 와서 실제로 그 말씀을 지키고 계시는 어머님을 보았다. 그런 시어머니와 어린 시절부터 신앙을 지켜온 남편 덕에 나도 그때부터 믿음이라는 걸 갖게 되었다.


아기가 있기 전에 어머님은 우리집에 오셔서 두 시간 이상 계시질 않으셨었다. 하긴, 아기 없는 며느리 집에 뭐 그리 오래 계실 일이 있으셨겠나. 어머님은 우리집에 오셨다가 물을 드시려다가도 냉장고를 열지 않고 내게 부탁을 하셨다. 내 살림살이에 대해 함부로 열어보시지도 않고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 한번 안 하셨다.

가끔 형님께는 혼내시기도 하고 살림도 열어보시는 것 같던데... 그래서 어머님과 형님은 더 친해 보였고 그러므로 해서 어머니와 거리감도 좀 느끼고, 소외감까지도 느껴지곤 했었다. 아기 없는 며느리에게 무척 조심하고 계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더군다나 시댁에는 제사가 없고 시댁 친척들도 많지 않아 대소사라 할 것이 없는 시댁은 늘 밥 얻어 먹고 조금 쉬었다가 내려오는 정도이다 보니 나는 시댁에 가도 늘 손님 같았다. 


그런데 아기가 오고 난 후 확실히 어머님께서 내게 하시는 행동이 달라지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살림에 관해 충고와 조언도 해주시고 살림 못하는 나를 야단도 치시고 설겆이나 빨래도 밀리지 않게 하라는 잔소리까지 하시는데 이제야 어머님도 나를 편하게 대해주시는 걸 느꼈다. 나의 게으름을 야단 치시거나 내 부족함을 그대로 인정해 주시고 철없는 며느리를 다독거려 주시는 지금의 이 관계가 나는 좋다. 손주가 생기고 나서야 자연스런 관계가 된 것이다. 아기 덕에 어머니와 더 가까워졌다. 


암튼, 거의 한달 동안 몸과 마음이 편했고, 우리 아기와도 떨어지지 않고 마음껏 바라보면서 이기적이게도 나만 누리고 싶은 걸 다 누렸네. 친정엄마는 아기 키우느라 딸이 아프니 시어머니가 시댁으로 데려오라고 하실 때 데려다 놓지 그랬냐, 네 몸이 최우선이다, 하시는데 여전히 딸 마음을 이해 못 해주시는 친정엄마께 섭섭함이 밀려왔다.

 


  초등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한다. 시골 우리 옆집에 새댁 아줌마가 아기를 낳았다. '주현'이라는 그 여자 아기가 얼마나 예쁘던지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가방을 대청마루 한복판에 휙 집어던지고는 옆집으로 가서 아기와 놀았다. 숙제도 안 해놓고 저녁 해질 무렵까지 놀다가 엄마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릴 즈음에야 정신이 퍼뜩 나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거의 하루도 안 빠지고 날마다 거기 가서 살다시피 하니 엄마한테 매번 꾸중을 듣곤 했다. 아기 냄새가 좋았고, 보드라운 아기의 피부가 사랑스러웠고, 아기가 웃어주는 미소에 빠져 시간이 어찌 가는지 모르곤 했다. 아기로 인해 그 집 전체에서 풍겨 나오는 모든 냄새(밀크 초코렛 향보다 더 진한)가 좋았고 그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지금 우리집에서 그 냄새가 난다. 어려서부터도 그렇게 아기를 예뻐하던 나였는데, 결혼을 하고 나서 정작 나에게는 아기가 생기지 않으니 아무리 명랑코드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우울의 늪으로 빠져들곤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완전 달라졌다.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엄마가 되고 나서부터. 예전의 명랑함을 다시 회복했다. 아기 덕이다.


우리 부부가 입양한 것을 친척이나 주변분들에게 숨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진행했으므로 이미 백 리도 넘게 소문이 났겠지만, 남들이 우리 부부에게 어떤 시선을 보내든 별로 신경쓰지 않을만큼 당당해지고 자유로워졌다. 내 마음이 이렇게 자유로워진 것도 모두 우리 아기 덕이다.




2001년 7월 14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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