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완료형 11
아기의 기분 좋은지, 놀고 싶은지, 졸린지, 짜증이 났는지 등의 느낌을 이제는 어느 정도 표정만 봐도 알겠는데 아직도 내가 모르겠고 조절이 안 되는 게 있다. 우유의 양을 맞추는 일이다. 개월 수에 맞게 분유를 타서 주는데 우유를 다 먹은 것을 확인하고 입에서 젖병을 빼려고 하면 몸부림을 치며 서럽게 운다. 혹시나 우리 아기에게는 개월 수에 맞는 표준 양이라는 것이 다른 아기들과는 다를 수도 있겠다 싶어 최근에 양을 늘려 줬는데도 젖병을 뺄 때마다 통곡을 한다.
또 우유를 먹는 속도도 지나치게 빠르다. 150ml를 먹이는데 3분도 안 걸리는 것 같다. 그러고는 우유를 더 달라고 투정할 때 50ml를 더 타서 먹이면 마치 우유를 아예 먹지 않은 아기처럼 1분 만에 먹어치운다. 우유 먹다가 배 터진 아기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설마 그런 일이야 없겠지만 나는 걱정이 된다. 그래도 여전히 다 먹고 난 젖병을 빼는 일은 아기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면서 재빠르게 공갈 젖꼭지로 갈아 끼우는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눈치 빠른 아기가 우유가 나오지 않는 공갈 젖꼭지임을 알아차리고 반항할 때 엄마가 제 눈앞에서 갖은 서커스와 목소리 묘기를 부리다 보면 마음이 풀어지는가 본데, 아마도 그때는 저도 그제야 배가 차오르는 것을 느끼는 시점 아닐까, 싶다.
오전마다 한 번 보던 응가도 최근 들어서는 오전과 오후 두 번씩 본다. 많이 먹으니 많이 나온다. 혹시나 응가에서 안 좋은 냄새가 나는 건 아닐까 얼굴을 바짝 들이밀어 냄새를 맡아본다. 흐흐, 구수하기만 하다. 예전에 아기 없을 때는, 자기 아기 응가 기저귀 갈면서 바로 안 치우는 엄마들 보게 되면 냄새에 무딘 엄마인가, 어째 저러고 있는가, 이해를 못 했었는데 이제야 그 엄마들 심정을 알겠다.
암튼 우리 딸이 식성도 좋고, 소화력도 좋은 것 같아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아기가 분유를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것에 대해서 걱정이 가시질 않아 선배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의견이 두 갈래다. 어떤 분들은 아기가 충분히 포만감을 느껴야 하므로 우유 다 먹었다는 신호로 아기가 우유병을 혀로 밀어낼 때까지 먹여야 성격이 안 나빠진다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아기가 원하는 대로 우유를 먹이다 보면 뱃고래가 커져서 안되니 아기가 울어도 절제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다. 아, 어쩌란 말인가. 이 초보 엄마 헷갈린다.
아기가 잘 먹으니 그만큼 무게도 많이 나간다. 잠시 10분만 업거나 안고 있어도 팔과 다리가 아프다. 최근에는 오른쪽 발목부터 발 뒤꿈치까지 후끈거리며 쑤시고 아프기 시작했는데 아기를 안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나 혼자 걸어도 발을 절뚝거리며 걸어야 했다. 옛날에 7남매 8남매 키우던 엄마들은 애들을 어떻게 그렇게 길렀을까? 거기에다 이미 산고의 고통이 있었지 않은가. 나는 상상도 못하겠다. 다시 생각해 봐도 존경스러운 부모님 세대다.
결국 엊그제 한의원에서 가서 침을 맞았다. 그 바람에 남편은 일찍 퇴근해서 아기를 안고 한의원의 안과 밖을 서성거려야 했다. 안에서 침을 맞고 누워있으니 밖에서 아기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마음이 불안하니 주책스럽게도 자꾸만 나가고 싶었다.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얼마나 키웠다고 벌써 이리 빌빌대냐 말이다. 의사는 2주일간 꼬박 와서 침을 맞아야 한다고 하는데 걱정이다.
요 며칠, 아기를 키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구나 생각하며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엄마 마음을 눈치챘는지 어제 오늘 혼자서도 뒹굴뒹굴 잘 놀아준다. 그래서 또 예쁘다. 몸이 힘들기는 해도 이런 와중에 아기가 너무 예쁘기만 하니 이 맛에 엄마들이 아기를 키우는 것 같다. 나도 그런 엄마가 되어 있군.
저녁에 누워있는 아기에게 젖병을 들려주니 혼자서 두 손으로 잡아서 잡고 먹는다. 벌써 이렇게 혼자 우유도 먹는 걸 보니 많이(?) 컸다 싶다. 많이 먹는 건 좀 걱정되지만 그래도 우리딸이 잘 먹고 그저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내 몸이 힘드니 편법을 쓰고 있다. 미안해, 아가...^^;;;
2001년 6월 9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