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딸에게 성교육하기
주일 오후가 되면
남편은 한적한 시골길 같은 곳으로 가족과 함께 드라이브하기를 좋아한다.
며칠 전 그날도 그랬다. 날씨도 좋고 해서 우리는 드라이브하며 여유 있는 오후를 만끽하고 있었다.
작은 딸은 낮잠 자느라 뒷좌석에 곯아떨어져 있고, 큰 딸도 곧 낮잠 들어줄 태세라
남편이랑 분위기 잡으며 차 안의 오디오를 통해 나오는 음악을 감상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큰 애가
"엄마! 우리 목욕탕 가자~" 그런다.
"으잉? 갑자기 웬 목욕탕? 그런데 오늘은 안 되겠는데? 미안~"
"왜 안돼? 엄마가 가고 싶은 날만 가야 돼?"
"엄마 몸이 좀 안 좋아서..."
"(이제까지 멀쩡하시구먼 갑자기) 왜???"
"엄마 컨디션이 좀 안 좋다고~"
엄마 가고 싶은 날에만 가는 것이 불만인지 의자 깊숙이 몸을 묻으며 씩씩거린다.
그때 드는 생각, '솔직하게 말할까? 어쩌면 지금의 상황도 자연스럽겠다.
엄마가 마술에 걸린 날이란 걸 설명해줘야겠다 싶었다.
얼마 전에 성교육은 했었지만 이야기가 길어져 아이를 재워야 하기도 했고,
또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하면 두려워할까 봐
(더구나 여자의 마술 부분은 딸의 성격 상 걱정을 만들어주는 일 같아서)
이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뤄놓고 있던 참이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말이야... 엄마가 지금 마술에 걸렸거든."
"마술?"
딸에게 한 달에 한 번 걸리는 여자의 마술에 대해 알아들을 수 있는 만큼만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아빠도 함께 있는 자리라 딸이 불편해하거나 놀라지 않게 해 주느라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그날 또 한 번의 산을 넘으니 이제는 딸이 원하던 그 책을 사줘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날 약속을 했다. 그 책 당장 사주마!
저녁에 퇴근하는 길에 마트에 들러 시장도 보고
서점으로 가서 딸이 그토록 원하던 Why 시리즈 중 '사춘기와 성' 책을 샀다.
집에 돌아와 책을 내미니 좋아라 한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엄마! 사실은 나도 이거 봤었다!"
"엥? 어디서???"
"지난번에 하은 언니네서 잤을 때 봤어."
"그런데 왜 그렇게 사 달라고 졸랐어?"
"나도 내 책으로 읽고 싶어서 그랬지~"
아이고,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혹시나 애가 책 보고 충격받을까 봐 조심스럽게 접근하려 했던 건데
이미 딸은 엄마의 생각보다 앞서 이미 이 책을 다 읽어버렸던 거다.
이틀 동안 반복해서 읽고 또 읽는다.
누가 왔다 갔다 해도 전혀 아랑곳 않고 거실 한가운데 앉아 열심히 읽는다.
최근 이렇게 딸에게 성교육을 시키게 되면서 나 나름대로 느끼는 바가 있다.
성교육도 공개입양과 마찬가지로 되도록이면 어릴 때 이야기해 주는 것이
부모나 아이나 덜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진다.
입양을 비밀로 하다가 어느 정도 아이가 크면 이야기하지 뭐, 하다가
어느새 아이들이 불쑥 자라 조심스러운 대화를 나누기 어려워지면 그만 시기를 놓치게 되고
결국 부모나 아이들이 나중에 더 큰 상처를 받는 가족들이 있는 것처럼
성교육 또한 아이들이 커버린 걸 느낀 어느 날 갑자기 대화 나누기가 어려운 게 또 성교육이 아닌가 싶다.
비유가 적당한지는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1학년 딸에게 성교육을 시킨 것이 마치
영양가 높은 음식을 성의 있게 만들어 자식에게 먹인 느낌이다.
그 음식을 받아먹는 아이를 보며 흡족해하는 나는 엄마다.
내가 '엄마'라는 게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