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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와가치 Aug 27. 2021

입양을 결정하다

과거 완료형 1

오랫동안 망설였다. 

입양을 실천할 시기를 정하는 것도 그랬지만, 입양에 대한 나의 생각들, 앞으로 진행될 일들, 

그에 따른 삶의 변화들, 그 모든 일들을 세세하게 기록하는 것에 대한 내 안에 작은 갈등이 있었다.


입양이라는 문제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는 그리 오래 걸린 것은 아니다. 

남편이 결혼 전부터 입양에 관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결혼하면 낳은 아이의 숫자와 관계없이 

입양을 하고 싶다는 말을 나에게 여러 번 해왔던 터라 그 선한 마음에 익숙해진 나도 입양이라는 단어에

별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 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불임이라는 아픔은 나를 오랫동안 깜깜하고 막막한 터널을 걷게 했다.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지고, 여자인 내게는 자존감이 떨어지고 자제할 수 없는 우울함이 나를 괴롭히곤 했다.

남편의 생각을 미리 알고 있던 터라 나도 입양에 대해 생각해 보기는 했어도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었다.

내게 아이가 하나라도 있는 상태에서 아이를 입양하는 것과 내 아이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하는 입양은 

느낌도 다르고 자존심도 상하는 일이었다. 그동안 남편이 입양에 대해 말할 때 나도 덩달아 맞장구친 것은 

분수도 모르는 행동이었던 거다.


남편은 좀 달랐다. 

우리에게 아이가 안 생기자 그도 역시 잠시 힘들어 하긴 했지만 자기 마음을 수습한 후로는 나를 달래며

오히려 우리가 입양할 이유가 더욱 뚜렷해진 것에 대해 감사하자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양에 대해

긍정적이긴 해도 막상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 마음이 변해서가 아니라 요즘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다 보면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쳐 입양을 적극 추진하는 게 어렵기 때문일 거라고 했다. 이 문제에 대해

좀 생각해 보겠다고 남편에게 말했고 남편은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어느 날 내가 남편에게 제안을 했다. 입양을 하긴 하되 우리가 조금 더 경제적으로 넉넉해지면 하자, 

아이 하나 데려와서 괜히 고생시킬 것 뭐냐고. 남편도 동조하며 우리에게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결혼 생활 7년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넉넉한 날'은 없었다.

돈이라는 게 있으면 있는 대로 그 형편에 따라 아쉽고, 없으면 없는 대로 쪼들려서 내가 기대했던 경제적으로

안정된 날이란 오지 않았다. 우리 부부가 그렇게 그냥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참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다. 결혼 전에도 집안에 여자가 귀한 집이라 어른들이 다 귀여워해 주셨고,

결혼해서는 자상한 남편으로부터 받은 사랑, 거기다가 모든 여성들의 숙제인 고부간의 갈등조차 내겐 없었다.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지금까지의 내 삶을 평안하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이제는 내가 어른이 되어야 할 때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동안 받기만 했던 사랑을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주고 싶은데 그건 다름 아닌 자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어린애처럼 철없이 받고만 살 것인가. 이제 나도 내 아이에게 주고 싶다. 엄마가 되고 싶다.

엄마 되기를 내가 간절히 원하게 될 때까지 기다려 주던 남편도 나름 아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 느껴졌다.



마음을 결단한 우리 부부는 한 입양기관을 찾아가 입양 신청을 했고, 현재 그에 맞는 절차들을 진행 중이다.

은근히 까다로운 것도 많지만, 부모가 되는 일을 그동안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싶다.

남들처럼 사랑하고 결혼하면 당연히 아이는 생기는 줄 알았고, 그저 우리는 아이 몇 명을 낳아 기를 것인지,

아이가 생기면 어떻게 키우고 교육할 것인지 그런 고민을 하며 살게 될 줄 알았다. 


사람들은 각자 삶의 모양이 다 달라서 누구에게든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가족 문제든, 

건강 문제든, 경제적인 문제든, 그 외에도 나열할 수 없이 많은 어떤 문제들이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숙제일 것이다. '나에게만 왜 이런 일이?'이라고 따지지 말자. 그렇게 많은 문제들 가운데 

나에게는 자녀를 낳을 수 없다는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을 뿐이다. 아픔의 크기는 재지 말자. 


막상 아기를 입양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나니 조급해진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그냥 진행할걸 그랬나 싶다.


2001년 2월 12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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