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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랑드르의 한별 Aug 01. 2024

문 트리오, 대성당에 울려퍼지는 사랑의 소리

Moon Trio, "Paris, toi et moi", Lille

릴에는 아주 현대적인 파사드와 신고딕형식의 나머지 건축물의 부조화로 유명한 대성당이 있다. 노토르담 드 라 트레이 Notre-dame de la Treille 대성당은 그 독특한 외관에 부합하듯 종교기관에서는 보기 어려운 색다른 문화 프로그램을 선사하기도 한다. 아트 갤러리에나 있을 법한 현대 조각예술이나 엘렉트로 음악을 경건한 공간에서 마주했을 때의 놀라움을 상상해 보라.


몇 년 전부터 라 트레이 대성당은 Estivales 이란 제목을 달고 여름 방학 동안 다양한 무료 콘서트를 열고 있다. 코리아넷에서 기자로 일하는 친구가 자기가 잘 아는 문 트리오 Moon Trio 라는 그룹이 여기서 공연을 한다며 나에게 동행을 요청했다. 몇 달 전 릴에서 아주 멀지 않은 봉뒤 Bondue에서 열린 이 그룹의 콘서트를 놓치고 아쉬워하던 중이라 반갑게 수락했다.


7월 13일 토요일, 공연 시작 1 시간 전에 미리 도착해 자리를 잡았다. 공연의 제목은 '파리, 너와 나 Paris, toi et moi'로, 팜플렛에 에펠 탑과 한 연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대성당의 중앙홀 끝에서 파사드까지 좌석이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보니 꽤 많은 관객이 올 예정인 듯 하다. 그리고 내진 근처에서 마지막 리허설을 끝낸 문 트리오 Moon Trio 가 보였다.


문 트리오는 바리톤 색소폰 연주자 뱅자맹 샬라 Benjamin Chalat 씨, 알토 색소폰 연주자 피에트로 안젤릴로 Pietro Angelillo 씨 그리고 소프라노 김 보배씨 세 명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한불 그룹이다. 특히 김 보배 씨는 파리 시립음악원 성악과를 졸업 후 유럽 각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성악가로 아주 유명하기에, 가까이서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문 트리오와 인연이 있는 친구 덕에 공연 시작 전에 세 분께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다시 자리에 앉아서 떠들다 보니 여섯 시 반이다.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연설에 넓은 중앙 홀이 조용해진다. 도입부를 위해 피에트로 안젤릴로 씨가 알토 색소폰을 들고 내진 앞으로 홀로 나오신다. 나는 색소폰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재즈의 선율을 떠올린다. 내가 본 모든 공연에서 색소폰은 주로 현대적인 프리즘을 거쳐 소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젤릴로 씨의 색소폰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들리는 음은 우리가 아는 서양 고전 음악의 관악기처럼 우아하고 부드러운데, 복잡하고 걷잡을 수 없는 음율은 자연의 소리와 더 닮아있어 개울처럼 굽이쳐 흐르다가 호수처럼 잔잔해진다. 전혀 몰랐던 색소폰의 색감에 매료돼 초장부터 완벽히 빠져든다.

문 트리오는 다른 아티스트와도 줄곧 협업을 한다고 한다. 본격적인 첫 곡을 부르기 위해 두 색소폰 연주자인 뱅자맹 샬라씨와 피에트로 안젤릴로 씨 앞으로 이번 콘서트의 두 번째 성악가인 플로리앙 비스부르크 Florian Bisbrouck 씨가 나타나셨다. 이 바리톤은 프랑스 뮤지컬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들어보셨을 '노트르담 드 파리'의 '대성당의 시대'를 우아하고 장식적인 목소리로 불러냈다. 대성당에 울리는 유려한 '대성당의 시대'는 각별히 웅장했다.


성악가가 두 분이 계시기 때문에 오페라나 고전 음악을 다룰 거라고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파리, 너와 나'의 선곡에는 프랑스어 가곡 뿐만이 아니라 뮤지컬 넘버, 유행가가 조화롭게 섞여 있다. 곡 선정만 봐도 딱딱한 음악회와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곡 리스트에 한국어 곡이 두 곡이나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또 신선했던 부분은 오케스트라를 무리 없이 대체하는 뱅자맹 샬라 씨와 피에트로 안젤릴로 씨의 두 색소폰이다. 바이올린처럼 들리기도 하고, 오르간처럼 울리기도 하며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우는 이 악기는 모든 곡에 어울릴 정도로 고전적이고 현대적인 면모를 모두 가지고 있다. 연주하는 모든 곡을 바리톤 색소폰의 뱅자맹 씨가 직접 편곡한다고 하신다.

다음 곡으로 넘어가기 전에 중앙 홀을 붉은 드레스를 입으신 김 보배씨께서 우아하게 걸어오신다. 마치 관객이 있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신 듯, 조용한 저녁의 정원을 거닐듯 움직이시다 세 명의 아티스트가 있는 내진 쪽으로 발을 옮겨 다음 곡을 부르신다.


김 보배 씨의 목소리에는 서사가 있다. 물처럼 흐르는 선율에 깊은 목소리가 만나니 공연에 또 다른 활기가 생긴다. 보배 씨와 플로리앙 씨는 솔로 곡과 듀엣 곡으로 일련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셨다. 우리가 언어를 전혀 모르더라도 이 둘이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며 연인이 되는 사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두 분 다 성악가이시다보니 자크 오펜바흐의 '파리의 듀오 Duo de la mouche'처럼 유머러스한 곡에서는 재치있는 상황극이 일품이었다.

그러나 공연이 이어질수록 이 두 연인은 헤어짐이란 벽에 막혀 괴로워한다. 이때 보배씨가 절절하고 강렬한 목소리로 세르주 라마가 1973년에 발표한 'Je suis malade'라는 곡을 부르신다. 앵콜곡으로 완성되는 이 러브 스토리는 여러분이 직접 보실 수 있도록 발설하지 않겠다.


문 트리오의 근본적 방향은 프랑스와 한국의 전통 음악과 현대 음악을 조화롭게 섞어, 음악이라는 매개체로 두 나라에 서로의 문화를 알리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두 나라를 활봘히 오가며 콘서트를 연다. 릴 대성당에서 먼저 선보인 열 세 곡의 레퍼토리도 이번 여름 한국 관객을 위해 연구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첫 곡을 '대성당의 시대'로 정하신 것은 탁월하다고 하겠다.

프랑스와 한국을 음악으로 잇겠다는 포부처럼, 공연 안에서도 두 문화의 교류는 끊임없이 일어난다. 보배 씨가 (앵콜곡을 제외하면) 한 곡 이외에는 모두 프랑스어로 부르시는 것처럼, 플로리앙 씨는 한국 가곡을 완벽하게 불러내셨다. 원래 한국어 화자가 아니시기 때문에 보배 씨의 도움을 받아 철저하게 연습했다고 하셨다. 주변 친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본 사람으로서 단시간에 한국어 발음을 마스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알기에, 완벽을 향한 플로리앙 씨와 보배 씨의 노력에 경외심을 느꼈다.

한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다채롭고 매력적인 콘서트였다. 음악으로 프랑스를 여행하고 싶으신 분, 프랑스 샹송을 좋아하시는 분, 이 독특한 세 명의 조합이 궁금하신 분이라면 제 34회 거창국제 연극제에 초대된 문 트리오의 프린지 공연 (관객과 소통하는 무료공연)에 참석해 주시면 된다. 연극제 일정표는 밑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다 (경연참가공연 및 프린지공연 란 참조).

https://www.kift.or.kr/bbs/page.php?hid=theater_01


문 트리오 맴버들에 대한 더 자세한 사항은 문 트리오의 사이트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다.

https://benjaminchalat.wordpress.com/korean-presentation/

https://www.youtube.com/@moontrio

+ 문 트리오 공식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search/top?q=moon%20trio


++ 이 글은 문 트리오 측의 허락을 받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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