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 Fautrier, Portrait de ma concierge
회색 건물 벽 앞에 희끗희끗한 머리를 틀어 올리고 무채색으로 깔끔하게 차려입은 누군가가 서있다. 우리를 바라보는 대신 눈을 내리 깔고 입을 굳건히 다문 채 고요를 견디는 모습이다. 두터운 눈두덩이가 도드러진 얼굴은 초록색으로, 체구에 비해 눈에 띄게 큰 손은 얼굴의 보색인 보라색으로 칠해져 있다. 뚜르꼬앙 시립 미술관인 뮈바MUba의 소장품인 장 포트리에Jean Fautrier의 건물 관리인의 초상(1922년 작)이다.
1922년에 제작된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프랑스-아일랜드 계 화가 장 포트리에가 살던 연립주택의 관리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포트리에는 몽마르트르 구역에 작업실을 구했다. 작품이 완성될 당시 포트리에는 스물넷의 젊은 작가였다. 그는 1920년대 초반에 야수파를 연상케 하는 초록과 보라라는 색의 사용과 과장된 인체, 어두운 분위기의 초상화로 예술계에 소소한 충격을 주었다.
얼핏 보면 엉성해 보이는 이 생소한 미감 안에 차갑고 날카로운 현실이 스며들어 있다. 갈 곳 잃은 시선과 불편한 듯 맞잡은 두 손은 직접 초상화를 의뢰할 정도의 지위와 부를 가진 고전적인 모델의 당당한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인물의 이목구비만큼이나 세밀하게 묘사된 두 손엔 마디와 힘줄의 굴곡이 산맥과 강을 이루고 있다. 이 손만으로도 우리는 그의 일상을 예측할 수 있다. 체력 소모가 극심하고, 나이를 먹어도 끊을 수 없는 노동 중 하나인 집안일, 허드렛일. 20세기 초의 건물의 경비원이나 관리인은 매일 타인의 편의를 위해 힘써야 하는, 대표적인 고강도 저소득 노동자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이 그림의 제목만 알아도 주변에서 비슷한 직업을 가진 노인분을 떠올리게 된다.
눈에 띄게 어두운 분위기의 미묘한 초상은 모든 관람객의 시선을 잡아끄는 뮈바의 독보적인 걸작이다. 액자 앞에 서서 수많은 주름을 관찰하며, 화가의 캔버스 앞에 서기 위해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왔을 노년의 모델의 삶을 상상해 본다. 그리곤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이 관리인에게 모델이 되어달라 했을지도 상상해 본다. 어렸을 적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 포트리에는 자신의 할머니를 무척이나 존경하고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다. 자신의 건물에서 고되게 일하는 할머니 뻘의 관리인을 보며 그의 굴곡있는 삶을 우리에게 넌지시 보여주고 싶었을까? 아님 혼돈스러운 시대를 사는 한 젊은이가 세상에 실망하고 그려낸, 잔인한 세월을 향한 냉소일까?
이 질문에 있어 나는 전자를 택하겠다. 1925년까지 화가는 파리의 가난하거나 검소하게 사는 파리의 시민을 화폭에 담았다. 세간에선 그의 활동을 동시대의 독일의 오토 딕스 Otto Dix나 벨기에의 콩스탕 페르메케Constant Permeke의 '사회적 현실주의'에 비교했다. 이들의 작품에선 한 번의 세계대전을 겪은 가난한 노동자가 주인공이 된다. 물론 이들의 작품에서 냉소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차갑고 우울한 표면 뒤에서 모델이 겪고 있는 사회의 불공평함을 간접적으로 고발하는 것이 목표라고 할 수 있다.
1940년대부터 포트리에가 기존의 표현주의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추상의 서정성을 강조하는 앵포르멜 예술 art informel (비정형 예술) 운동의 중심이 되면서, 더 이상 그의 캔버스 안에서 현실에 차여사는 시민을 직관적으로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사회고발적 예술은 추상화가 예술계의 주류였던 시기에도 사라지지 않았으며, 70년대나 2000년대처럼 현실이 어려울수록 더욱 두드러지게 표면으로 나왔다. 현재 SNS에 들어갈 때마다 다양한 국적의 웹 아티스트가 각기 다른 매체로 그려낸 고통받는 시민의 초상을 마주한다. 가끔은 이들의 크고 작은 승리를 축하하는 작품이 게시될 때도 있다. 작품 속의 주인공은 언제나 그대와 나를 닮은 이름 없는 시민이다. 마치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포트리에의 나이 든 관리인처럼.
지금 이 글을 읽는 그대의 머릿속엔 어떤 초상이 떠올랐는가? 글이어도, 노래여도, 그림이어도, 영상이어도 좋다. 한 시대를 반영하는 '건물 관리인의 초상'처럼, 거창한 무대와 대사가 없더라도 평범한 사람의 삶이 예술을 통해 가시화 되는 것은 후대를 위해서도 아주 중요하다. 아무리 여리고 약한 개인일지라도 그 안에는 지켜내야 하는 존엄과 양심이 있기에, 혼란스러운 오늘을 살아낸 나와 그대의 초상이 언젠가 캔버스에 담기는 것을 머릿속에 그려 본다. 우리의 얼굴이 모여 언젠가 미술관 하나가 지어질 때까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든 세상에서 잊혀지지 않기를 바란다.
웹 참고문헌
Evelyne-Dorothée Allemand, TU SAIS CE QU’ELLE TE DIT… MA CONCIERGE ?! 특별전 보도자료.
URL: https://webmuseo.com/ws/musenor/app/collection/record/33228
Guitemie Maldonado, Jean Fautrier : vers l’art informel, Connaissance des arts, 2018년 3월 8일
URL: https://www.connaissancedesarts.com/arts-expositions/jean-fautrier-vers-lart-informel-1189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