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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랑드르의 한별 Dec 05. 2024

베프루아 1호 : 두에, 가장 아름다운 종탑?

Beffroi de Douai : le plus beau de tous?

두에를 빼면 아라스 이북의 프랑스는 놀랍도록 진부하다. 두에에 여태껏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베프루아가 없었더라면, 이 도시도 똑같이 평범하다 했을 것이다.

«  Douai excepté, la France depuis Arras est d’une rare platitude. Je  n’excepterais même pas Douai s’il n’y avait pas là le plus joli beffroi   de ville que j’aie encore vu. »

'빅토르 위고 전집, 여행기 2권, 프랑스와 벨기에' 중 발췌



바캉스를 떠난 주변인들을 따라 훌쩍 떠나고 싶어지는 7월 말, 친구 둘과 함께 기차로 릴에서 삼십 분 정도 떨어진 두에 Douai라는 도시에 들렀다. 다들 긴 여름휴가를 즐기러 떠났는지 기차역 주변은 주중인데도 무서울 정도로 한산했다. 덕분에 깔끔하고 멋들어진 시내를 한적하게 구경할 수 있었으니 우리에겐 잘 된 일이었다.

릴, 아라스, 발랑시엔 등 오 드 프랑스 지역의 주요 시와 근접해 있는 두에는 옛 플랑드르 백국의 최남단에 위치한 역사적인 도시다. 19세기 중후반에 릴이 상승세를 타고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두에는 문화와 경제의 요지로 프랑스 북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다. 지금은 주변 도시에 밀려 과거의 영광을 되찾지 못했지만, 고즈넉한 매력의 도심이 옛날의 웅장함을 상기시키고 있다.

대광장의 카페에서 아침 카페인 충전을 하고 곧바로 옆에 있는 두에지 Douaisis (두에와 그 주변 지역) 관광청으로 향했다. 셋 다 아날로그 인간인지라 지도를 하나 얻고, 오후에 할만한 활동을 찾다가 베프루아 가이드가 있기에 오후 세 시 티켓을 끊었다.

그전까지 샤르트뢰즈 박물관 Musée des Chartreuses을 짧게 감상하고 나와, 주민 사이에서도 맛집으로 불리는 유명한 수제버거 집에서 느긋하게 점심을 먹기로 했다. 소화도 시킬 겸 식당 주변 공원에서 쉬다 보니 얼추 시간이 되었길래 대광장 방향으로 돌아갔다.

대광장 바로 오른편으로 가면 석회 부조가 모두 장미덩굴처럼 뾰족하고 화려해서 '불꽃 양식'이라 이름 붙은 후기 고딕 양식의 정석을 보여주는 시청이 나타난다. 두에의 시청은 1380년에 처음 시공해 구조물의 대부분은 1475년에 윤곽이 잡혔으나, 잦은 화재와 여러 번의 증축으로 인해 19세기나 되어서야 완공이 된 문화재다. 이 건물의 중심에 바로 이제부터 올라가 볼 베프루아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 가이드 분께서 관람객을 대기실로 데려가시는데, 분명 우리 셋만 있을 거라는 오만한 예상을 비웃듯 최대 정원인 열다섯 명 꽉 채워서 투어가 시작됐다.

종탑의 1층은 대략적인 두에의 역사와 베프루아가 지어진 경위를 설명하는 서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 14세기에 이미 두에는 밀과 직물 수출로 큰 부를 축적했고, 물품 입시세나 시장세 등 각종 세금을 걷어 시의 예산을 늘린다. 이 기금으로 프랑스 왕국으로부터 종을 달 권리를 매입하며 베프루아의 초석을 닦은 것이다. 종의 권리 droit aux cloches는 종교권과 영주권을 뛰어넘어, 시민의 삶을 시에서 자체적으로 책임지겠다는 약속과 같다. 시가 종의 권리를 돈을 주고 영주에게서 얻어내면 그 시립 종을 방클로크 bancloque라 부르며, 그 종이 자리하는 건물이 베프루아가 된다.


1390년에서 1392년 사이에 종탑의 몸체와 작은 망루까지 완성되고, 그 이후로도 크고 작은 수리와 증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다른 플랑드르 자치시처럼 두에 시는 소수의 판사 magistrats와 여러 명의 보좌판사 échevins가 지휘했는데, 판사와 보좌판사에게 자선의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베프루아의 일층은 가난한 이를 위한 공간으로 열어두었다 한다. 요새로 말하면 시청의 고위 공무원인 이 인력의 사비로 따뜻한 음식을 만들 재료와 땔감을 조달했고, 벽난로에 항상 불이 꺼지지 않게 조심했다고 한다.

이층의 수비대실 salle des gardes은 이름 그대로 수비대가 쉬는 공간으로, 이 층의 천장에는 지금은 잘 보이지 않지만 원래 뚜껑처럼 열리는 문이 설치됐었다 한다. 종탑의 창문보다 작은 보통 크기의 종이라면 곧바로 위에서 도르래를 써서 올리면 됐지만, 거대한 종은 밖에서 창으로 들여올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층 바닥마다 구멍을 뚫어 종을 위로 올렸다고 한다.

더 올라가니 거인의 방이라 불리는 층에 도착했다.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의 전통으로, 축제 기간의 행진을 위하여 만들어지는 '거인 géants'은 보통 해당 도시에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을 표방하거나 가톨릭 성인의 기적에서 모티브를 따와 만들어진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거인은 높이는 2에서 10m, 무게는 몇십에서 몇백 kg까지 달하기 때문에, 80kg을 혼자서 거뜬히 들 수 있는 사람 여섯이 들어가야 큰 거인 하나를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

 

두에의 거인 가족은 아버지인 가이양, 어머니 마리 카쥬농, 아들 자코, 피용, 뱅뱅 다섯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이양은 1530년에 두에가 도시를 프랑스 군으로부터 보호한 것을 축하하며 만들어진 거인으로, 세기가 지날수록 그 옆에 가족 구성원이 추가됐다. 1667년에 에스파냐로부터 플랑드르 서부 도시를 군사적으로 탈환한 루이 14세가 프랑스 군의 패배의 역사를 들추는 거인 행진 풍습을 7년 간 금지시켰으나, 두에 시민의 반발과 시위로 인해 결국 7월 5일로 시기만 바꿔 다시 부활시키는 것을 허락했다. 두에의 거인 행진은 가이양 축제 Fête des Gayants라 부르며, 7월 5일 바로 다음에 오는 금, 토, 일에 진행된다. 거인 행진의 풍습은 이 지역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나중에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

이곳의 베프루아가 아주 높은 편이 아니라지만, 무더운 날에 196개의 계단을 오르려니 땀이 등을 타고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몇 분을 더 올라 '카리요뇌르의 방'에 도달했다. 카리요뇌르는 다양한 음을 내는 종으로 이루어진 악기인 카리용의 연주자를 부르는 말이다. 카리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이전 포스트를 참고해주시길 바란다 (https://brunch.co.kr/@f4efdc2e7aae4ab/30).


1998년에 이곳의 서른다섯 번째 카리요뇌르로 임명된 스테파노 콜레티 Stefano Colletti에 이르기까지 몇 세기 동안 연주자의 명맥이 끊기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도시의 자랑이기도 하다. 종과 케이블로 연결된 카리용 건반은 피아노의 건반과 비슷하나 주먹으로 내리쳐서 소리를 내기 때문에 상당한 지구력이 요구된다. 우리 중 어린아이 둘이 건반을 살짝 만져보는 영광을 얻었다.


여기서 더 위로 올라가면 '종의 방'이 나타난다. 이 종탑의 카리용은 무려 62개의 종으로 이루어진 카리용을 보유하고 있다. 종이 많으면 많을수록 조합할 수 있는 멜로디가 많아진다. 라 음을 내는 종 주와이유즈 Joyeuse와 도 음을 내는 라 디네 la Disnée가 이 카리용의 가장 큰 종, 이름하야 왕벌이다. 첫 번째 왕벌은 5,5톤이고 두 번째는 2,4톤이라고 한다. 멀리서도 묵직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뒤를 돌면 창문 사이로 두에 시내 전경을 만끽할 수 있다. 이 순간부터 더위와 피로로 인해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져 노트 필기를 전혀 하지 못했다.

한 시간 반의 탐방을 마치고 종탑에서 내려오니 가이드 분께서 포스터 하나를 보여주시며 꼭 우리에게 투표해 달란 말을 남기셨다. 자세히 들어보니 프랑스 공영방송 France 3의 유명 프로그램인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문화재 Le Monument préféré des Français'의 리스트에 두에의 베프루아가 선발됐으니, 최대한 많은 표를 얻어서 우리 지역의 고유한 건축물을 더 많이 알려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가이드 분 덕분에 즐겁게 관람했으니 은혜를 갚는 셈 치고 돌아오는 기차에서 두에에게 투표를 했다.


이 일을 까맣게 있고 나서 몇 주 후,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문화재' 투표 결과가 나왔다는 기사를 봤다. (https://evasion.lenord.fr/fr/le-beffroi-de-douai-2e-monument-prefere-des-francais-en-2024) 아쉽게도 1위는 르망 24시 트랙이 가져갔으나, 두에의 베프루아가 바로 그다음 자리를 차지했다. 노르 지역 문화재가 2위라니, 십 년 전이었으면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을 이 지역도 이제는 자주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이 된다.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은 아마 두에에 사는 분들의 노력일 것이다. 도심 이곳저곳에 붙어있던 투표 독려 포스터와 QR코드가 기억났다.

종소리로 시간을 가늠하지 않는 현재에 와서도 베프루아는 여전히 시민들의 자랑이고 이정표인 듯하다. 두에의 종탑을 향한 뜨거운 격려를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다른 도시의 종탑도 접수해야겠단 야심을 품게 됐다. 해수면보다 낮아서 '평평한 지역 Plat pays'라는 별명이 붙은 곳에서 십 년을 넘게 살았으니 이제는 높은 곳에 오르겠다는 다짐이다. 그럼 다음번 종탑은 어느 도시에 세워져 있을까? 중세의 건축일까? 폭격을 맞은 비운의 상징물일까? 다음번에는 또 색다른 시 종탑으로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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