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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랑드르의 한별 Nov 23. 2024

[한 주, 한 작품] 5. 델프트 블루 타일벽

릴의 오스피스 콩테스 박물관

17세기 초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설립되며 네덜란드의 인도와 동남아시아 진출이 활발해지자, 덩달아 좀 더 먼 동아시아의 문물도 유럽으로 대거 들어오게 된다. 그중에서도 16세기부터 많은 유럽인을 매료하던 청화백자의 수요는 더욱 높아지자 네덜란드 상업도시 델프트에서 명나라의 도기를 모방하는 도공이 늘어났다. 그래서 중국 도자기 질감을 내기 위해 유약을 바른 청화 백자를 '델프트 도기'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며, 코발트로 낸 '델프트 블루'라는 색이 전 유럽에 유행하게 됐다.

네덜란드에서 멀지 않은 릴도 이 유행에 편승한다. 릴에는 델프트 스타일을 모방하는 릴 사람도, 릴에 직접 정착한 네덜란드 인도 있었다. 그중에서 1740년대에 릴에 작업장을 연 장 바티스트 왕 Jean-Baptiste Wamps은 '홀란드 식 타일'을 제조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후에 왕-마클리에 Wamps-Masquelier 아틀리에라고 불리게 되는 이곳에서는 도기 타일을 주로 제조했는데, 릴의 오스피스 콩테스 박물관에 이 타일로 장식된 공간이 있다.

13세기에 창립한 구제원이었지만 현재는 릴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박물관인 오스피스 콩테스 박물관 musée de l'Hospice comtesse에는 15세기에서 17세기에 지어진 '수녀회의 집'이라는 건물이 있다. 구제원에 입원한 환자의 간호를 책임지던 아우구스티누스 수녀회 공동 생활공간이다. 1960년대에 상당 부분이 개조됐지만 17세기와 18세기 릴 집안 내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끔 그 시대의 가구와 작품으로 장식했다. 부엌은 그중에서 원래의 모습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다.

스무 명에서 쉰 명에 이르는 환자와 불우한 이에게 질 좋은 식사를 제공하는 것은 수녀회의 사명 중 하나로, 위생을 위해 부엌은 완벽하게 정비되어있었다. 왕 마클리에 아틀리에에서 제조된 타일로 도장된 벽은 외부의 습기를 차단하고 그을음이나 기름때가 묻어도 쉽게 닦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거기에 매끈한 표면이 들어오는 햇빛을 반사해 내부를 더 밝게 만들어주니, 매번 많은 양의 음식을 조리해야 했던 수녀와 외부 요리사에겐 무조건적으로 필요한 장치였으리라. 거기에 손그림으로 장식된 각 타일은 선박과 풍차가 있는 플랑드르와 홀란드의 풍경, 바다 괴수, 여가 시간 등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는 이 그림들을 보다 보면 십 분은 금세 지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디테일은 양치기가 있는 목가적 풍경에 숨어있다. 좁은 타일 안에 많은 요소를 그려 넣어야 했기에 선은 단순해지고 사물은 도식화된다. 그러다 보니 양치기 옆의 양은 검고 하얀 동그라미로 구성된 달팽이 같은 모양이 되어버렸다. 나는 이 양들을 정말 좋아한다. 가끔은 어린 왕자가 내게 양을 그려달라고 부탁하면 저렇게 그리고 반응을 보는 상상을 한다. 내가 관람객에게 꼭 보여주는 요소 중 하나다. 이 외에도 굴렁쇠를 굴리는 몇 백 년 전의 어린 아이나 씨름을 하는 어른의 모습이 궁금하시다면 릴에 들리실 때 이 독특한 부엌도 찾아보시는 것을 추천한다.



한 주, 한 작품은 '프랑스 뮤제로의 산책 : 오 드 프랑스 편' 발간을 축하하며, 책에 소개된 열네 곳의 뮤제의 독특한 전시물 하나를 소개하는 시리즈입니다. 이 책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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