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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대의 벼룩시장, 릴의 브라드리

La Grande Braderie de Lille

by 플랑드르의 한별

릴의 브라드리


La Grande Braderie de Lille


이전에 포스타입에 썼던 글을 2차로 재구성했습니다.


9월의 첫째 주말인 지난주 토요일에 제가 일 년 중 가장 사랑하는 축제가 열렸습니다. 방학이 끝난 시기에도 릴에 관광객이 몰리는 주원인인,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실외 벼룩시장인 브라드리 braderie입니다. 주말 내내 온 도심이 시장이 되어 차도 들어올 수 없고, 무거운 가구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보이며, 여기저기에서 맥주와 홍합 냄새가 음악과 함께 흐르는 아주 특별한 날입니다.

첫날 토요일 아침이 밝으면 미리 준비를 마친 주민들과 상인들이 구매자를 기다립니다. 전부 모아 늘어놓으면 100 km를 넘는 가판대의 모습은 가지각색입니다. 깔끔하게 탁상을 가져와 나름 멋지게 진열해 놓는 사람도 있고, 방수 천이나 낡은 커튼 위에 물건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어요. 판매하는 물건의 종류도 안 쓰는 케이블에서 19세기 나폴레옹 3세 시기의 가구까지 아주 다양합니다.


브라드리는 12세기부터 매년 성모승천일 후인 8월 중순에 열리던 프랑슈 포아르 Franche-foire라는 장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간단히 '릴 장 foire de Lille'이라고 불리던 이 장날에는 외지인과 외국인도 세금을 떼지 않고(=franc) 거래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탈리아,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 온 유럽인들이 릴을 찾아왔습니다. '브라드리'라는 이름의 유래는 확실치 않으나, 1446년 두 플랑드르 출신 상인이 장터에서 닭고기구이를 판매할 허가를 받은 후로 닭이나 해산물 구이를 파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굽다'라는 뜻의 플랑드르어 "브라든 braaden"에서 따 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프랑소와 와토, 릴의 브라드리, 1801년, 릴, 오스피스 꽁떼스 박물관

16세기부터 장날 마지막 주말에 용돈이 필요한 사용인이 고용인의 허락을 받고 주인집에서 버리는 옷과 물건들을 가져와 판매하기 시작하며 릴 장날은 본격적으로 '벼룩시장'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오늘날도 이 기간에 맞춰 할인을 하는 몇몇 일반 상점이나 슈퍼마켓, 전문 골동품상을 제외하면 집에서 안 쓰는 물건을 사고팔기 위한 일반 주민이 이 이틀을 이끌어갑니다. 장터가 금요일부터 열리던 이전 세대까지만 해도 브라드리는 지역 특수 공휴일로 여겨져, 릴과 그 주변의 모든 사업장은 금요일도 유급휴일로 처리했다고 합니다. 브라드리 금요일이란 아름다운 전통은 지금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이 축제가 얼마나 시민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큰 축제에는 먹을 게 빠질 수 없죠. 큰 골목을 돌 때마다 보이는 맷돌만 한 누가 Nougat나 말린 소시지를 파는 매대가 눈길을 끌지만, 그래도 브라드리의 상징은 뭐니 뭐니 해도 감자튀김을 곁들인 홍합찜인 "물 프릿 moule-frite"입니다. 홍합 자체는 꽤 오래전부터 브라드리 기간에 먹었다고 알려졌지만, 처음엔 찜이 아닌 구이로 소비됐다네요. 감자튀김을 추가한 메뉴는 20세기 극초반에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처음 출시됐지만 릴이 워낙 벨기에 옆이다 보니 이 조합이 자연스레 들어와 브라드리에서 불티나게 팔렸나 봐요.

(C)France bleu

홍합찜이 브라드리의 주 메뉴가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홍합의 주 생산지인 네덜란드나 덩케르크가 릴에서 멀지 않아 싼 값에 신선한 제품을 빨리 조달할 수 있고, 몇 분이면 조리가 완료된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죠. 들어가는 재료에 비해 푸짐한 모양새와 해산물과 백포도주가 주는 감칠맛 덕에 고객의 만족도도 높고요. 매 해 브라드리에서 500톤이 넘는 홍합이 소비되고, 릴 시내에는 홍합 껍데기로 산을 쌓은 컨테이너들이 식당 옆에 즐비하게 나타납니다. 이 홍합껍데기는 모두 모아 분쇄해 공원의 벤치나 기타 물건을 만드는 데 재활용하고 있습니다.


Quai du Wault

도시의 3분의 1이 장터이니 어디를 갈 것인지를 정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엄청난 인파를 보고 싶으시다면 릴의 대광장인 그랑플라스 (제네랄 드 골 광장) 쪽으로 가면 되지만, 사람이 미어지는 속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면 그 주변의 샛길을 이용하면 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역은 옛 항구인 께 드 보 quai de Wault입니다. 아기자기한 엔틱들이 자주 발견되는 이곳에선 특히 예쁜 빈티지 도자기나 컵을 찾을 수 있어요. 분위기도 조금 차분하고, 뒤로는 운하요 앞으로는 공원인 탁 트인 공간이라 걸을 맛이 나요.

결합 개신교 교회 앞

와젬 Wazemmes 구역 역시 릴 중심가에선 살짝 떨어져 있으나 볼 것이 많고 가격이 대체적으로 싸며, 솔페리노 극장 Théâtre Solférino 주변에도 부스가 많습니다. 옛 화물열차 역이던 생 소뵈르 역 Gare Saint-Sauveur에선 어린이들에 의한,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이 브라드리'가 열립니다. 그리고 성당, 유태교회당, 모스크 등 다양한 예배당에서 이웃 혹은 전쟁난민을 돕기위한 장을 내부에서 기획하기 때문에 큰 예배당이 있으면 무조건 들어가봅니다.

이번 해만 이백오십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은 브라드리는 빈티지를 좋아하시고 중고매매를 즐기시는 분에게 매혹적인 이벤트입니다. 낯선 사람의 역사가 담긴 물건을 보며 그의 발자취를, 그리고 나는 나의 공간에서 그 물건을 어떻게 쓸 수 있을지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각양각색의 물건처럼, 이 대규모의 장터에선 전 세계의 다양한 언어와 사람을 만날 수 있지요. 혹시 릴 메트로폴에서 오래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다면, 9월 내내 릴 주변 위성도시에서 좀 더 작은 규모로 개최되는 '마을 브라드리'에 들러보세요.

밑으로 릴 브라드리를 경험하고 싶으신 분들을 위한 소소한 팁입니다.


1. 아침 일찍 가세요. 7시에 도착한다면 완벽하지만, 그게 안된다면 적어도 9시에 이미 도심에 도착해 있는 것이 좋습니다. 이번에 늦장 부리다 10시에 도착했더니 사람은 너무 많고 물건은 없었습니다.

2. 언제 어떻게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볼지 모르니까 가방에 장바구니 두 개는 가지고 가세요.

3. 무거운 책은 가장 나중에 사는 게 좋습니다. 만화를 좋아하신다면 릴 미술궁 Palais des Beaux-arts나 릴 시청 근처에 '만화책 구역'이 따로 있어요.

4. 리베르떼 가 Boulevard de la Liberté, 에스플라나드 가 Esplanade 같은 길에 위치한 전문 골동품 상인 구역엔 사람이 많고 같은 물건이어도 가격이 훨씬 비쌉니다. 구경하기엔 좋습니다.

5. 리우르 Rihour 역, 레퓌블리끄 보자르 République - Beaux-arts 역 근처는 언제나 사람이 꽉 차있으니 다음 역인 강베타 Gambetta에서 내려서 레옹 강베타 Léon Gambetta 길을 쭈욱 내려오시면 됩니다.

6. 릴엔 공중화장실이 거의 없습니다. 카페나 식당 화장실을 이용하시거나, 프랭땅 Printemps 백화점을 이용하시길 바랍니다.

7. 식당에서 점심을 드실 예정이라면 점심시간을 앞당시기거나 아예 오후 두 시 이후로 드세요. 도심의 모든 레스토랑이 붐비고, 일식집과 베트남 쌀국숫집에서도 홍합찜만 파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해산물을 못 드신다면 발품을 조금 파셔야 합니다. 일요일 오후에는 장이 거의 파하기 때문에, 오후 한 시부터는 대부분의 식당에서 물 프릿을 훨씬 싸게 팝니다. 토요일에 14유로 정도였다면 10유로 정도까지 싸게 파는 곳도 봤습니다.

8. 해당 구역 여기저기에 릴 메트로폴 관광청 부스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공짜 지도를 얻어오시면 GPS보다 훨씬 편합니다.

9. 저는 거의 해본 적이 없긴 하지만, 일반 시장과는 달리 흥정이 가능합니다. 너무 무례하지 않은 선에서 흥정을 해보세요. 일요일 오후는 끝물이라 판매자들이 훨씬 쉽게 가격을 낮춥니다.

10. 잔돈을 꼭 가져오세요! 판매자의 대부분은 일반 주민이기 때문에 카드를 받지 않습니다. 전날에 미리 우체국에서 동전으로 바꿔오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날의 지출을 미리 정해두는 것도 좋습니다. 싸다고 계속 사다간 나중에 후회하실 수 있으니까요.

이 지붕 없는 벼룩시장을 미리 맛보고 싶으신 분을 위해 꾸준히 브이로그로 브라드리의 조각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2025년 브이로그 : 곧 올라옵니다...

2024년 브이로그 : https://youtu.be/4TGRjDj4y6w?si=sMIoadj5oNQu2Wxg

2023년 브이로그 : https://youtu.be/3FurIaROvXI?si=_I49wL4FeXgxXu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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