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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 한 작품] 7. 물에서 태어나는 웨누스

J.A.D Ingres, Vénus Anadyomène

by 플랑드르의 한별
장 오귀스트 도미닉 앵그르, 물에서 태어나는 웨누스, 1808년-1848년, 샹티이, 콩데 박물관 소장


해돋이가 시작되는 시간, 아직은 어두운 바다 한복판에 거품이 일고 있다. 그 거품을 밟고 있는 이는 바닷물에서 방금 전 솟아오른 듯, 젖은 머리를 아주 불편한 자세로 넘기고 있는 여성이다. 금색으로 빛나는 머리카락엔 진주가 물방울처럼 붙어있다. 발 밑으론 앳된 얼굴의 날개 달린 정령이 그를 환영하는 중이다. 이 군상 뒤로 희미하게 다른 인형이 보인다. 상체와 하체를 교차시킨 포즈를 취한 이 주인공은 우리가 그리스 식으로 아프로디테라 부르고 로마식으론 웨누스 혹은 베누스라 부르는 미와 사랑의 신이다.


[한 주, 한 작품] 7. 물에서 태어나는 웨누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는 프랑스 혁명 시작 전에 태어나 혼란스러운 19세기를 살아온 프랑스의 화가로, 정통성과 균형미를 중시하는 '신고전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다. 위의 작품은 앵그르가 젊었을 시절 '로마 아카데미 드 프랑스'라는 기관에서 주최한 레지던시에 참석해 로마에 있을 당시 그리기 시작했다.오랫동안 미완성 상태로 간직하고 있다가 1848년에야 뱅자맹 들르세르 Benjamin Delessert라는 학자이자 정치가에게 팔기 위해 마무리를 했다고 한다. 이후 다른 이에게 팔렸다가 1879년에 오말의 백작 오를레앙의 앙리에게 사들여진 후 그 이후로 지금까지 그의 거처이자 거대한 유산이었던 샹티이 성의 콩데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콩데 미술관의 내부. '물에서 나오는 웨누스' 좌측으로 앵그르의 자화상이 보인다.

이 회화작품의 프랑스어 제목은 Vénus anadyomène으로, 아나디오멘 anadyomène은 옛 그리스어인 ἀναδυομένη에서 유래한 '물에서 나오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단어이다. 사랑의 신의 발을 둘러싼 뽀얀 물거품 그리스 신화의 농경의 신인 크로노스가 하늘의 남신이자 자신의 아버지인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잘라 바다에 던졌을 때 일어난 거품이라고 전해진다.

출처 : 위키피디아

좌) 조개 위에 앉은 아프로디테, 코린트 지방, 기원전 4세기, 아테네, 아테네 국립 고고학 소장

우) 박물관 물에서 태어나는 아프로디테, 아프로디지아스, 4세기말에서 5세기,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웨누스의 탄생은 이미 기원전부터 흔하게 볼 수 있던 소재로, 시대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곤 한다. 그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모티브는 조개 위에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웨누스와, 물에서 나오며 머리를 단장하는 웨누스이다. 전자는 신의 등장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으로, 이미 산드로 보티첼리가 1485년에 템페라(피렌체 우피치 갤러리 소장)로 구현하며 이탈리아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바 있다. '머리단장' 모티브의 경우는 웅장함이나 역동감보다는 조금 더 내적이고 은밀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 다뤄졌다.

티치아노, 물에서 태어나는 웨누스, 1525년, 에든버러, 스코틀랜드 국립 박물관 소장


앵그르의 웨누스는 이 고전적인 도상을 훌륭한 기교로 재해석했다는 평을 받았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교차되어 생기는 '콘트라포스토'와 팔이 만드는 곡선은 고요함을 유지하면서도 움직임을 만들며 동시대의 젊은 작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웨누스는 테오도르 샤세리오의 작품에서처럼 사색적이고 절제된 공간에서 홀로 몸 단장을 하는가 하면, 윌리엄 부그로가 그린 것처럼 찬란한 햇빛 속에서 수많은 정령과 신의 환호를 받으며 자태를 뽐내기도 한다. 비슷한 작품을 들여다보면 설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주인공이 하나같이 '19세기의 신사와 고위층이 바라는 완벽한 여인의 모습'을 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테오도르 샤세리오, 1838년 윌리엄 부그로, 1879년

이 포즈는 앵그르의 다른 명작에서 다시 등장한다. 파리의 오르세 박물관에 전시된 '샘 (1856년 작)'의 주인공인 샘의 님프, 혹은 샘의 의인화가 웨누스와 거의 동일한 동작으로항아리를 왼쪽 어깨에 메고 다른 팔을 뻗어 샘이 쏟아지도록 돕고 있다. 그의 발밑에도 비슷한 거품 동산이 보인다. 실질적인 자연스러움보단 조형미를 추구하는 앵그르의 작품답게 보고 있으면 꿈꾸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살아있는 사람보단 내가 보지 않을 때만 움직이는 석상을 마주하고 있다는 미묘한 기분을 남기며...

Jean_Auguste_Dominique_Ingres_-_The_Spring_-_Google_Art_Project_2.jpg 장 바티스트 도미닉 앵그르, 샘, 1856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동시대 사람들에게 큰 인상을 준 앵그르의 웨누스는 지금은 콩데 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가 되어 여전히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고전주의의 재생을 축하하는 정제된 구성과 밀도 높은 붓질로 완성되는 조형미로 각광을 받는 이 작품은 그 엄숙함 뒤에 작가가 그 틀에서 최대한으로 표출할 수 있는 과장과 비현실성 또한 담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이 그림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내 솔직한 대답은 '앵그르 작품 중 좋아하는 것은 한 점도 없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프랑스 신고전주의 회화는 대부분 내 입맛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이 회화와 오래된 친분이 있어, 코로나 기간에 이를 소장하고 있는 콩데 미술관에 들러 글 한편을 썼다. 취향과는 상관없이, 명작은 가끔 여행을 떠나도록 나를 유혹한다. 아주 먼바다에서 솟아오르는 파도가 일렁이며 만드는 거품처럼.

샹티이 성의 콩데 박물관



한 주, 한 작품은 '프랑스 뮤제로의 산책 : 오 드 프랑스 편' 발간을 축하하며, 책에 소개된 열네 곳의 뮤제의 독특한 전시물 하나를 소개하는 시리즈입니다. 이 책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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