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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붙는 것

Ceux qui persistent

by 플랑드르의 한별

봄이나 가을의 오후 세 시의 햇살이 들어오는 시간, 나는 두 명이 살아도 좋을만한 넓이의 소박한 아파트에 있었다. 아마도 이 구역에는 수두룩한 1930년대의 집의 각 층을 개조한 원룸이나 투룸 같았다. 나는 그 집을 내 아파트라고 단정 짓고 이리저리 돌아다닌 후,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사는 층은 마지막 층인 삼층이었다. 1930년대 공장 노동자의 집이 이레 그렇듯, 내려가는 계단은 좁고 가파르다. 조심스레 내려가자 2층 집의 문이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티브이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후드티를 입은 어머니가 품에 골판지 상자 여러 개를 들고 힘겹게 나왔다. 인기척에 곧바로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며 무어라 하셨다. 지금으로선 이제 일어났냐고 하신 건지, 언제 들어왔냐고 하신 건지 알 수 없다. 오랜만에 보는 어머니에 기분이 좋아져서 짧게 몇 마디를 더 주고받았다. 아버지가 장을 보고 곧 돌아올 거라고 하신 건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분주해 보였다. 대화 도중 내 사고회로는 느리게 '어머니와 아버지가 왜 릴에 있는지'에 대한 답을 도출하려 했다. 그래, 동생이 지금 워킹 홀리데이로 한국에 없다. 그래서 오신 걸 거다. 동생이 항상 챙겨드리고 있으니까, 이번에는 나랑 같이 있으시는 거지. 물론 두 분 다 우리 없이 독립적으로 잘 생활하시는 분이지만. 근데 둘 다 프랑스어를 못하는데, OFII에 가서 출입국 신고를 하려면 내가 같이 동석해야 하나? 아니지, 관광 목적이면 세 달은 비자 없이 지내실 수 있다. 살러 오신 게 아니니 OFII까지 갈 이유는 없다. 여기 음식 좋아하시지 않는데 내가 뭘 만들어드려야 하지? 나 없이 장을 보러 가신 아버지는 괜찮을까?

그리곤 왜 어머니가 상자를 품 안 가득 들고 있었는지 떠올렸다. 나는 다음 달이면 지금 사는 아파트를 떠난다. 이삿집을 싸야 하는데 박스가 없어 칭얼거린 걸 들으셨나 보다. 그 아파트의 계단은 지금 내가 서 있는 계단보다 훨씬 넓고 올라가기 편하게 되어 있다. 나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연립 아파트의 4층에서 친구들과 산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계단은 내가 학창 시절에 살았던, 2016년에 떠났던 원룸의 것이다. 두리뭉실했던 의문점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나타나자 계단과, 문과, 어머니는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꿈에서 깼다.


뇌가 특별히 창의적이지 않은 덕에, 내 심상이 만드는 콜라주의 근원은 아주 찾기 쉽다. 지금의 아파트가 아닌 이전 원룸이 나온 이유는, 내 가족은 지금 사는 아파트는 모르지만 학창 시절 원룸에는 십 년 전에 와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게 좁은 공간에서 네 명이 끼어서 잤었지. 며칠 전에는 친구끼리 책을 넣을만한 박스가 없으니 가게나 우체국에 찾으러 가야 한다는 이야길 했었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서 프랑스로 돌아올 때면 한 달 이상은 한국에 두고 온 가족을 꿈에서 본다.


비행기에서 내려 으레 하는 멀미처럼, 매번 이맘때 즈음엔 내 꿈의 라이트모티프 leitmotiv는 우리 가족이다. 함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상을 보내기도 하고, 자기 부상열차가 다니고 비밀스러운 아시아타운이 있는 벨기에 안트웨르펜과 지중해에 둘러싸인 베를린을 여행하기도 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다채로운 색상의 풍경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어느 순간 내가 이들이 여기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이번에 프랑스로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는 전혀 스위스를 닮지 않는 스위스의 호수에서 즐겁게 휴식을 취하는 꿈을 꿨었다. 보트 타기를 끝내고 캠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딱 네 명이 들어갈 법한 렌터카에 오르려 했는데, 차문을 잡고 있던 동생이 의아하다는 듯 '언니는 여기 타면 안 되지 않아?'라고 했다. 그런 말을 할 아이가 아닌데, 무슨 연유로 그러는지 물어보기도 전에 그가 '프랑스로 가야 하잖아.'라고 덧붙였다. 어두컴컴한 기내에서 악몽을 꾼 사람처럼 일어났을 땐 이미 마스크가 눈물로 젖어있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기로 결정했다 하더라도, 내가 큰 실수를 했다는 느낌은 불시에 찾아와 정신의 문을 두드린다. 오늘은 흔치 않은 노는 주말이라 친구 몇몇과 카페에서 늦게나마 내 생일을 축하했으며, 오래간만에 운동을 했고, 동생이 재밌게 봤다고 한 제시 아이젠버그의 영화 '리얼 페인'까지 봤다. 정말 좋은 영화를 봤다는 생각에 들뜬 기분으로 영화관을 나왔는데, 귀가하는 지하철에 오르는 순간 존재하지 않는 원룸의 계단 난간이 떠올랐다. 구토하지 않는다면 진정되지 않을 슬픔을 동반하며, 외로움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몸집을 불린다. 가끔은 그 거인을 피해 가기도 하지만, 맞부딛히는게 더 빠르다면 그대로 얻어맞기를 자처하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놈의 정체를 많은 사람에게 까발렸으니, 오늘 밤에 그리운 얼굴이 나와 눈물 흘릴 때도 조금은 덜 외로울 것이다. 심연 위에 비치는 이미지가 무엇이든, 잠든 자는 깨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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