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때리며 마구 글쓰기
브런치에 접속하지 않은지 몇 주가 됐다. 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머리가 멍해진다. 멍해지는 기분은 나쁜 현상은 아니다. 정말 '멍'을 머릿속에 가져오려면 주변의 잡음을 없애야 한다. 거의 백색소음처럼 틀어놓곤 하는 최애 영상을 일시정지시키고 나서야 타자가 쳐진다. 생각을 하는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다. 누군가는 소리를 들으면 색을 보고, 누군가는 이미지를 본다. 나는 글과 발상을 무조건 머릿속의 소리로 변환시켜야 이해하는 타입이다. 이번엔 반대로 자유롭게 머릿속의 소리를 글로 적어 내려 보자.
한국에서 1월을 즐겁게 보내고 나서 돌아온 프랑스에는 돌봐야 할 것들이 많았다. 작년 말부터 상태가 별로였던 식물은 하얗게 죽어있었고, 한 달 넘게 하지 않은 가이드 내용은 가물가물했으며, 두 달 안으로 이사가 다가왔다. 마지막 사안이 이번 해의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됐지만 개의치 않으려 애쓰며 다시 일을 하고, 그동안 못 본 친구들을 초대하고, 공인 가이드 협회에 가입해 지역 가이드 동지들을 만나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창작은 잊었다. 이사와 관련된 서류 작업을 이번 주에 겨우 끝내고 드디어 이삿짐이니 집 보수니 이것저것 생각을 해보려는 순간, 무언가가 길을 막았다. 바로 A형 독감이다.
오늘 점심부터 목이 간질간질하며 몸이 으슬으슬했으나 전날에 찬바람을 맞으며 일한 후 (도시 가이드의 비애다) 오래간만에 운동을 하러 가서 그렇다고만 생각했다. 기관지 알레르기가 있으니 의심할 만한 요소는 많았다. 몇 달 만에 보는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문득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생각이 들어, 그와 헤어지자마자 코로나와 독감 신속항원검사가 가능한 약국을 찾아 예약을 했다. 약사는 뭔가 탐탁잖은 말투로 '여기까지 오셨으니 해드리지만, 원래는 증상이 있고 48시간 정도 기다려야 검사가 가능해요.'라고 하셨다. 그 발언을 비웃듯 약국을 나서자마자 A형 독감 양성이 떴다고 문자가 왔다. 당연하지, 내 독감은 매번 이런 식으로 빠르고 갑작스럽게 왔다.
결과를 통보받자마자 급하게 다음날 아침 릴 투어가이드를 해줄 대타를 찾기 위해 관광청 코디네이터에게 전화를 했다. 금요일 오후 5시 8분, 막 퇴근하려는 사람에겐 정말 미안하게 됐다. 어렵사리 대타를 찾은 후 안심하고 집에 들어와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컴퓨터를 열어 비디오 제공 플랫폼에서 말하는 앵무새 영상과 HEMA (Historical European Martial Arts 유럽 전통 무술) 관련 영상, 크리피 파스타(인터넷 괴담) 모음집, 좋아하는 아일랜드 코미디 그룹의 영상을 무한정 보기 시작했다. 두 시간 반이 지나도 잠이 오지 않아 결국 지금은 침대에 전기장판을 켜고 앉아 글을 쓰고 있다.
릴에 돌아와 거의 삼주 동안 글을 써야 한다고만 생각하고 한 줄도 쓰지 못했다. 머릿속에 너무 많은 지령이 떠다녔다. '유통기한 지난 요구르트를 처리해', '제대로 요리를 해 먹어', '방청소를 해', '새 가이드 시연이 내일인데, 준비 다 했어?', '이 영화 이번 주 지나면 극장에서 내려갈 거야', '이삿짐 상자는 여전히 못 구했네'... 너무 엉켜서 풀 수 없는 털실처럼, 한 달 동안 잊고 있던 일상에 대한 부담이 시간을 휘감고 발목을 잡는다. 일의 진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소음을 독감이 잠재운다.
https://youtu.be/-SYbAOq40p4?si=Mm8_-HG5bElUz15q
목이 아프고 머리가 웅웅 거리며 숨이 안 쉬어지는 이 순간 지난 몇 주 보다 네 배는 많은 글자를 썼다. 2년 전에 생전 처음 병가를 냈을 땐 짧은 영상도 만들었다. 몸을 잠식하지 않을 정도의 고통은 창작을 위한 기회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런 생각을 말하면 주위의 친구들은 '효율주의 시각에 오염되어 인간을 착취하는 끔찍한 발상'이라며 욕할 것이다. 아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맞다. 아플 땐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건 현대사회에서 그렇게 나쁜 상황은 아니다. 마치 '멍' 때리는 게 나쁘지 않은 현상인 것처럼. 그러나 독감에도 타자를 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행복한 일이니, 며칠의 칩거기간 동안 보관함의 미완성 글에 손을 댈 수 있길 조심스레 바란다. 결국 글을 쓰는 건 머릿속을 짓누르는 잡음을 손에 잡히는 곳에 내려놓는 과정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