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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D R Feb 10. 2022

'최'고로 '애'정하는

중환자실에서의 두 달

*본 글에서 나오는 이름의 머릿글자는 임의로 정한 것임을 밝힙니다.


인턴 때 소아과를 돌면서 소아과 회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소아종양혈액파트 회식이었는데 한 교수님께서 이런 얘기를 하셨다. 본인께서 소아과를 선택할 때 소아과 선배 전공의 선생님이 해줬던 얘기인데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병동에 가면 적어도 한 명은 꼭 본인을 웃게 해주는 아이가 있어서 소아과를 선택했다고.


소아심장외과를 돌다가 그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게 됐다.

중환자실을 보는 과들은 대부분 그렇겠지만 당직자가 중환자실에 상주하게 된다. 흉부외과의 경우에는 주 3일 밤을 소아중환자실에서 당직을 서면서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것이다.

소아심장외과는 특성상 병동보다 중환자실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많다.

수술 직후 인공호흡기를 떼기까지 오래 고생하다가 병동에 올라갈 수 있는 상태가 되고 나면 퇴원까지는 비교적 시간이 덜 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중환자실 당직을 서다 보면 보통은 특히 더 귀엽고 마음이 가는 아이들이 있다.


ㅂㅇ이는 정말 말 그대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중환자실에 2달간 있었던 아이였다.

양대혈관 우심실기시 및 심실중격결손 이라는 진단을 받은 아이였고 양심실로 완전교정술을 할 지 단심실로 결정해야 할지를 소아심장 컨퍼런스에서 심장 3D모델까지 만들어서 상의한 후 양심실 완전교정을 받기로 하고 수술 전날 병동에 입원을 했다.

그런데 하필 입원실 건너편 환아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본원 첫 코로나 확진 환아 케이스였다) 밀접접촉자로 분류된 ㅂㅇ이와 부모님은 2주간 격리가 되었다.

외과계열 소아 병동은 폐쇄됐고 수술은 미뤄졌다.

그렇게 1인실에서 부모님과 ㅂㅇ이 셋이서 2주를 꼬박 격리되어 보내고 격리가 풀리는 바로 다음날로 수술 일정이 잡혔다.


수술 전날 수술동의서 작성을 위해 4종 보호구를 하고 병실로 들어갔는데 그렇게 만난 ㅂㅇ이는 너무나 밝고 해맑은 아이였다.

정말 귀여워서 심각한 얘기를 많이 하는 수술 설명 중에도 ㅂㅇ덕분에 분위기 환기가 됐다.

그런데.

다음날 진행된 ㅂㅇ의 수술에 문제가 생겼다.

양심실교정을 하고 나서 체외순환기 이탈이 되지 않는 것이다. 즉 ㅂㅇ의 심장이 제대로 뛰지 않는 것이다.

결국 체외순환기를 떼지 못하고 체외막산화기로 교체한 채 중환자실로 나왔다. ㅂㅇ의 가슴은 열린 채로. (소아의 경우 혈관이 작기 때문에 체외막산화기를 중심혈관으로 돌리게 되면 가슴을 연 상태로 수술을 종료하게 된다.)

심장 수술을 위해 체외순환기를 돌리면서 심장을 멈췄던 것 때문에 일시적으로 심장 기능이 떨어지는 경우에는 며칠 체외막산화기로 심장을 도와주면 심장 기능이 회복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4일 정도 지나고 체외막산화기를 서서히 줄이면서 이탈을 시도했다. 성공하지 못했다.

가슴이 열려 있으면 이틀에 한 번씩 세척을 해줘야 해서 그 시기에 맞춰 그 뒤로도 몇 번 더 체외막산화기 이탈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심장 기능이 회복될 가능성은 떨어지고 체외막산화기에 의존적이게 되면 결국 심장이식이나 심실보조장치의 도움을 받아야만 체외막산화기를 뗄 수 있게 되는데, 심장이식의 경우 특히 소아는 기증자가 언제 나올지 기약이 없고 기다리는 동안 체외막산화기의 합병증, 출혈이나 감염, 간이나 신장 기능 부전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체외막산화기 이탈을 실패할 때마다 마음이 너무 착잡했다.

수술 전에 그렇게 눈이 똘망똘망하고 예쁜 아이였는데. 그 눈 뜬 모습을 다시 못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3주가 지나고 결국 집도의 교수님께서 양심실로 교정해놓았던 심장을 단심실 쪽으로 바꾸기로 결정하셨다.

정말 다행히도 체외순환기 이탈에 성공했고 4일 후에는 거의 한 달 동안 열려 있던 가슴도 닫았다.

이후로는 인공호흡기와의 싸움이었다. 오랫동안 가슴이 열려있어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자고 있었기 때문에 인공호흡기를 줄이는 게 쉽지 않았다.

또 다시 한 달에 걸쳐 조금조금씩 인공호흡기를 줄여서 떼고 고유량산소카테터를 달았다가 떼는 동안 ㅂㅇ는 붓기도 빠지고 점점 수술 전의 귀여움을 되찾았다.

그 한 달 동안 ㅂㅇ는 내 최애로 소아중환자실 당직의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중환자실에서 근무를 하면서 틈만 나면 ㅂㅇ를 보러 ㅂㅇ의 침대 앞으로 갔다.

시간마다 중환자실 아이들을 둘러보는데 ㅂㅇ 앞에 갈 때면 신이 나고 행복했다.

자면서 혼자 손짓발짓 하는 것도, 동요 유튜브를 보면서 딸랑이를 흔들며 노는 것도 너무너무 사랑스러웠다. 나중에 기분 좋을 때는 웃어주기도 했는데 정말 내 심장에 해로울 정도였다.

너무 ㅂㅇ를 예뻐하니까 중환자실 담당교수님, 간호사선생님들도 다 아시고 담당간호사선생님들은 ㅂㅇ에게 한 번씩 우유를 먹일 수 있게 해주시기도 했다ㅋㅋ


드디어 병동 전동이 결정되고 2달만에 엄마 품에 안긴 ㅂㅇ이를 보니 뭉클하면서도 벅찬 기분이었다.

이후 병동에서의 재원 기간은 길지 않아서 ㅂㅇ이는 비교적 빠르게 잘 퇴원했다.


그렇게 3년차 첫 2달 소아심장외과 턴을 ㅂㅇ이와 함께 보내고 다른 파트로 간 후에도 힘들 때마다 개인소장하고 있던 ㅂㅇ이의 동영상을 보며 힐링하곤 했는데 4년차가 시작된 후 선천성심장병센터 전담간호사선생님께서 외래에 온 ㅂㅇ이의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셨다.

사진만으로도 너무 마음이 따뜻했다. 행복하게 잘 자라고 있는 모습에 괜히 내가 뭉클하면서 감사했다.

그렇게 ㅂㅇ이는 전공의 기간 통틀어 내가 가장 많은 애정을 쏟은 '최애' 아이로 꼽힌다.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부터 건강하게 태어나고 자라서 어른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님을, 셀 수 없이 너무나 많은 가능성의 순간들이 그 아이를 지켜주어야 하는 것임을, 그 모든 섭리가 허락되어야 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의료진의 최선과, 환자의 회복력과, 그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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