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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D R Feb 07. 2022

단심회(單心會) 이야기

희망을 보여주다.

선천성 심장 기형 중에서 기능성단심실 (Functional single ventricle) 이 진단되면 단심실 순환을 완성하기 위해 대개 3번의 수술을 거치게 되는데, 폰탄(Fontan) 수술은 그 단심실 순환을 완성하는 3번째 최종단계다. 


단심회(單心會)는 서울아산병원에서 기능성단심실로 폰탄 수술을 받은 아이들과 부모님께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격려하는 모임이다. 

그 아이들 중에는 자라면서 심장 이식을 받게 되는 아이들이 종종 있어 새심회 (새롭다의 '새'를 붙인 것) 와 함께 일 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모임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서 약 2년 전부터는 모임이 없다 ㅜㅜ)

소소한 축하 공연들과 의료진 소개, 나눔들로 이루어진 1부와, 2부 식사 자리로 이루어진 행사인데 그 때 근무인 전공의들은 다른 일로 바쁘지 않으면 들르게 된다. 

(소아심장외과 병동 전문 간호사 선생님(이자 단심회의 정신적 지주)이신 ㄱㅅㅎ선생님의 열정적인 홍보가 한 몫 한다.) 


폰탄 수술을 받고 나면 보통 유미흉 (chylothorax) 가 많이 발생해서 흉관을 오래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입원을 길게 하는 일이 흔하다. 

자연히 아이와 부모님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게 되는데, 단심회 모임에서 그 아이들과 부모님의 밝은 얼굴을 만나면 참 반갑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구나. 많이 컸네.

확실히 아이들은 퇴원하고 집에 가면 더 예뻐지기도 하고. 


기능성단심실은 평균 수명이 일반인보다 짧고 여러 합병증도 발생할 수 있어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대개 성인이 되어도 심장내과로 가지 않고 소아심장과로 외래 진료를 유지한다. 성인에게 많이 생기는 심장질환과는 기본적인 생리가 다름을 인식하면서 진료해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심회 모임에는 소아심장과, 소아심장외과 교수님들이 함께 참석하신다. 


전공의 저년차 때 참석했던 단심회 행사에서 기능성단심실 수술을 받고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의 일상을 보내고 계신 분의 경험담을 들었는데, 둘째도 낳고 싶지만 임신을 하게 되면 심박출량이 증가해야 해서 심장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산부인과, 소아심장과 교수님께서 걱정을 표하고 계신다는 얘기와 함께 단란한 가족의 얘기를 나눠주셨다. 

평범한 가족의 일상 얘기가 왜 그렇게 감동이 됐는지 모르겠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아직 어린 기능성단심실 수술을 받은 자녀들을 가진 부모님들께는 그 평범한 얘기가 얼마나 큰 희망과 용기였을까.


그리고 그 행사를 사진으로 남기고 있는 사진사 분이 계셨는데 처음에는 못 알아봤다. 

그런데 그 사진사 분이 몇 달 전에 폰탄 재수술을 받아서 내가 수술 동의서를 받고 흉관도 뽑아주었던 ㅇㅎ이라는 걸 알아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사진 찍는 자세를 보고 전문 사진사이신 줄 알았는데. 너무나 능숙하게 진행하는 모습이 정말 취미 이상으로 보였다. 

마지막에 단체사진을 찍는데 나를 기억하고 "제 흉관 뽑아주셨던 여자 선생님, 얼굴 안 보입니다." 라고 하는데 다들 웃으면서 내 쪽을 쳐다보셔서 얼굴이 빨개졌다. 


내가 보는 아이들은 언제나 환자복을 입고 중환자실, 병실에서 내 처치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입장이지만 이렇게 병원 밖에서의 이 아이들의 삶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굉장히 뭉클했다. 

소아심장외과에 입원해서 수술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 아이들이 얼마나 멋지게 자랄지, 어떤 새로운 삶이 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을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과 기쁨을 주고 받을지. 가슴이 벅찼다. 

그동안 한 번도 아이들의 퇴원 이후의 삶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선천성심장병은 환자 수가 적고 그 종류가 워낙 다양한 데다 산전진찰부터 출산까지의 산부인과, 신생아중환자실과 수술 이후 진료의 소아청소년과, 수술과 소아중환자실의 흉부외과가 긴밀한 협력을 이루어야 해서 갖춰야 할 인력과 시스템이 많기 때문에 주목받는 분야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선천성심장병 수술을 하는 병원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당연히 흉부외과 내에서도 소아심장을 전공하는 분들은 많지 않다. 

보이는 데서, 그리고 보이지 않는 데서 이루어지는 그 분들의 노력으로 한 가정에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해 줄 수 없는 행복을 가져다주시는 것이다. 

나는 단지 전공의로서 그 큰 일의 아주아주 적은 일부분에 참여하고 있을 뿐이지만 이 아이들을 보면서 이런 게 보람이구나 싶은데 단심회 모임에 참석하신 교수님들은 얼마나 뿌듯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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