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첫째 주 토요일
오래전부터 관심만 갖고 있다가 호기롭게 도전한 성우학원에 처음 가는 날이었다.
주말 오전 10시까지 강남으로 가야 했기에 적어도 8시 반에는 집을 나서야 했다.
다 큰 어른들이 합법적으로 늘어지게 잘 수 있는 주말 오전에 일찍 일어나는 일은 여간 쉽지 않은 법이다.
누가 시켜서 이 시간에 일어나야 했다면, 휴대폰 알람을 3번은 끄고 나서 마음속으로 1부터 60까지 센 후에서야 눈도 뜨지 않은 채로 침대를 벗어났을 것이다. 이미 늦었으므로 화장은 최소한으로 하고, 손에 잡히는 아무 옷이나 대충 걸쳐 입고 집을 나서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저절로 번쩍 떠졌다. 온전한 나의 선택이 끔찍한 주말의 이른 기상마저도 전혀 두렵지 않은 존재로 만들어준 것이 놀라웠다. 아침을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적이 언제였지? 적어도 최근 몇 년간 없지 않았을까? 그동안 나의 의지대로 선택한 일이 없던 걸까? 잠깐의 의문과 회의감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 기분에 더 매몰되기 전에 지금의 설레는 느낌에 더 집중하는 편을 택했다.
수지타산을 따지지 않은 순수한 선택이 주는 만족감은 값으로 환산이 불가하지만 분명 내 의지가 아닌 일을 하면서 벌어들이는 그 어떤 대가보다 크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3월 초의 날씨는 따뜻하지도, 그리 춥지도 않았다.
무슨 계절인지 모를 날씨에 무얼 입을지 고민하다 밤색 플리스와 검은색 슬랙스 바지에 손이 갔다.
플리스에는 금박 단추가 달려 나름 격식이 있으면서도 딱딱해 보이지 않는 적당한 느낌이 났다.
너무 튀지도 않고, 그렇다고 신경을 안 쓴 것도 아닌 듯한 평범보다는 살짝 그 위 어딘가에 속하는 그 느낌을 좋아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평범함 그 위 어딘가의 모습을 완성하기 위해 수행되었던 철저한 계산의 수고로움이 무색하지 않도록 처음 만날 사람들에게 좋은 첫인상이 남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1시간 반 정도 걸려서 도착한 학원은 촌스러움이 묻어났다. 위치가 강남이라는 사실이 새삼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외관과 인테리어였다. 초등학생 시절 다녔던 동네 학원에서 나는 정겨움이 느껴진다고, 진정한 맛집은 허름한 자태를 취하고 있는 법이라고 좋게 포장할 수도 있겠다. 어린 시절로 돌아온 것 같아 그리움과 안도감이 마음속에서 잠시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이 하나 둘 교실에 들어와 약속이라도 한 듯 맨 앞자리는 비워두고 서로 간 최대한 간격을 두고 앉으며 점점 채워갔다. 어색한 공기가 감도는 가운데 교실이 다 찰 즈음 주변을 둘러보니 나 혼자 여자였다. 의도치 않게 홍일점이 되어버려 살짝 당황했지만, 덕분에 강사님의 관심을 받고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좋은 느낌이었다. 새로운 장소와 낯선 사람들이 모여 형성된 긴장감 속에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 제1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