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살 때의 아쉬움
외국에서 살면서 좋은 점도 많지만 안 좋을 때도 꽤 있다. 그중 하나는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의 대소사를 챙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족들과 명절을 함께 보낸 지도, 생일을 함께 축하한 것도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친척이나 친구들의 결혼식은 물론이고, 가끔씩 들려오는 부고소식에도 달려가서 위로해 줄 수가 없다. 전화를 하거나 카톡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친구들 통장으로 송금을 해서 축의금이나 조위금을 보내는 것이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아직은 그래도 젊다고 생각하는 나이라 조위금보다는 축의금을 보내는 경우가 많지만, 조위금을 내가 직접 전달할 수 없을 때는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뿐이다. 그리고 내가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는 것만큼 나의 부모님들도 조금씩 나이를 드신다. 사실 내가 한 살 한 살 나이가 드는 것과 부모님이 1년 1년 나이가 들어가시는 모습은 같은 1년이지만 다르게 느껴진다. 아직은 그래도 두 분 다 건강하시다 생각하고 언니와 동생이 근처에 살고 있으니 나하나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더 큰 것도 사실이긴 했다.
몇 달 전 엄마가 언니랑 조카와 부산을 셋이서 여행 갔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엄마, 언니에게 오는 카톡 사진을 보며 재밌게 여행하시라고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언니랑 여행을 갔으니 혼자 계실 아빠가 생각이 나서였다.
혼자 계시는 거 같아서 전화했다며 아빠와 통화를 하는데, 한참 통화를 하다가 아빠가 "아빠 수술하는 거 들었지?"라고 하셨다. 처음 듣는 소리에 놀라 여쭤보니, 계속 코피가 나서 이비인후과를 가보니 대학병원 가서 검사를 해보라고 해서 검사를 했고, 부비동염이라고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큰 수술은 아니고 염증을 제거하는 거라 하루만 입원하면 되지만, 움직이면 안 되기에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떼어낸 염증은 혹시 모르니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별거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이리저리 찾아보고, 하루 입원이라는 소리와 평소에 워낙 건강하신 분이니 크게 걱정을 하진 않았다. 그리고 수술날은 다가왔다. 집에 가는 길에 아빠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빠는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을 계속하셨고, 별거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크게 걱정하시지 않는구나 생각하며 전화를 끊었는데, 며칠 뒤 언니에게 아빠가 처음으로 수술을 하시는 거라 많이 걱정하신다는 문자가 왔다.
물리적으로 멀리 살고, 전화로만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을 때면 나는 집안일에서 한발 물러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까이 있었다면 들어냈을 속내를 여기선 알 길이 없다. 사실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지도 않고, 내가 반대의 경우였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힘들거나 걱정이 되는 일이 있어도, 멀리 있는 가족한테까지 힘들다고, 걱정된다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가까이 산다고 해서 모든 걸 표현하면서 사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 힘든 일이 있어도 지나고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쩔 땐 힘들수록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철저하게 숨기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가까이에 있었다면 알 수 있었을 것을 나만 모를 때면 속상한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다행히 아빠의 수술은 잘 되었다고 연락을 받았다. 또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엄마아빠가 하루하루 나이가 드시는 걸 볼 때면 생각이 많아진다. 한국에 들어갔다 다시 미국으로 나올 때마다 무게감이 달라진다. 10년 전 룰루랄라 미국으로 나오던 때와는 사뭇 다르다. 나는 아직까지는 한국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미국에서 조금 더 오래 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더 큰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면 한 번씩 한국으로 들어가는 걸 고민하게 된다.
아빠는 예전에 미국으로 여행을 오셨을 때 남편이 "자주 못 뵈어서 아쉽다"는 말을 하자 "한국에 살아도 자주 못 보는 사람은 자주 못 봐"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의 짐을 덜어주시긴 했었다. 그 말도 맞지만, 어떤 일이 있을 때 바로 달려갈 수 있는 거리에 사는 것과 그렇지 못한 거리에 사는 것이 다르다는 걸 알기에 결론 나지 않는 고민거리를 가지고 끙끙거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