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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증후군 아들의 일상 - 4편

와우 보청기 수술 불가 판정

by 박종흠

이비인후과 교수님이 청력검사 결과를 보고 이야기 하신다. 청력이 전혀 없는 상태 입니다. 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다니 ~~ 낙담하고 있는 우리에게 교수님은 한줄기 희망의 빛을 주신다. 와우 보청기 수술을 하면 청력을 되찾을 수도 있습니다. 기쁨도 잠깐 수술비용이 3~4천만원 수준 이라고 하니 그것도 걱정이다. 병원에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환우를 돕기 위한 단체의 사무실이 있으니 가서 의논을 해 보라고 하신다. 사무실을 찾아서 상담을 하니 우리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천만 다행이다. 오늘은 지옥 과 천당 두 곳을 모두 다녀온 기분이다.


다시 이비인후과에 와서 와우 보청기 수술일정을 조율해서 확정하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드디어 수술 일정이 되었다. 하루 전에 입원을 해서 검사를 시작했다. 머리부분 MRI 검사까지 하고 검사가 종료 되었다. 검사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하여 이비인후과에 들렀다. 교수님은 MRI 검사 결과가 좀 불명확 해서 다시 검사를 해야 합니다. 하시며 다시 MRI 검사를 지시했다. 그렇게 진행된 검사는 그날 늦게까지 진행이 되었다. 검사를 2번 3번 반복해서 실시를 했다. 다음날 오늘은 수술이 예정된 날이다. 오전에 교수님을 만나서 검사결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번에는 청천벽력 과도 같은 이야기를 또 들어야 했다. “ 대뇌 에서 귀까지 연결된 청각 신경이 없습니다. 그래서 와우 보청기 수술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어제 반복해서 실시했던 MRI 검사 결과를 아무리 보아도 대뇌 에서 나온 청각 신경이 안보여서 수술이 안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대뇌에 신경을 연결하면서 수술을 하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수술은 매우 위험하다고 한다. 대뇌 에는 많은 신경이 모여 있기 때문에 수술 하는 중에 다른 신경을 건드리게 되면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즉 청력을 살리겠다고 수술을 하다가 시력을 잃을 수도 있고, 손, 발의 기능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런 수술은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희망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제 작은애의 청력을 살리는 치료는 여기서 접어야 한다. 더 이상 해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우리의 사정을 알고 있는 지인들은 서울의 병원 에라도 한번 가 봐야 하는 것 아니냐 하고 이야기를 하지만 우리는 이비인후과 교수님의 판단을 믿기로 했다. 청각 신경이 없다는 것은 팩트다. 무슨 가정을 해서 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MRI 검사 장치의 신뢰성 문제도 아니고, 팩트에 대해서 왈가왈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슴이 미어지는 상황이지만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 팩트 앞에서 절망했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지만 여기서 접기로 했다. 이비인후과 검사만 3개월 이상의 기간이 소요 되었다. 지적장애 와 청각 장애가 동시에 와서 작은애는 장애1급 판정을 받아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잦은 병치레를 할 때마다 대학병원을 찾아가는 일은 한 동안 계속되었다. 링거를 맞을 때도 투입되는 주사액의 양을 아주 미세하게 조정해야 하는 약제이다 보니 근처의 작은 병원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내용은 우리 애의 의학적 특성을 모른 상태로 주사 약제를 잘못 적용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 의사 선생님 들도 자신이 없어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의사 와 부모인 우리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어느 정도 자라서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쯤 대학병원 주치의 선생님께 대학병원 내 원의 어려움을 말씀드리고 방법이 없는지를 여쭈었더니 “ 이제는 일반병원에서 치료해도 되겠습니다” 라 고 하시며 병의 상세내용을 기록한 기록지를 주셨다.


그 다음부터 우리가 사는 소도시에서 좀 크다고 하는 병원에 가서 대학병원에서 받아온 병의 상세내용 기록지를 보여드리고 치료를 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근처 병원에서 링거 처방은 한동안 계속이 되었다. 언제부터 병원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되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작은애는 주사를 맞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별로 없다, 원체 많이 맞아본 경험 탓일 것이다. 그리고 아파도 절대로 소리 내어 울지도 않는다. 울어야 할 일이 있으면 그냥 눈물만 흘리고 있는 정도 이다.


또한 음식물 소화능력이 부족해서 일반 분유는 소화를 해내지 못하여 특수 분유를 먹여야만 했다. 특수 분유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판매하는 곳이 많지 않아서 우리가 사는 김해에서는 부산 동구 범일동에 있는 판매처가 가장 가까운 곳이라 분유를 사기 위해서는 매번 그곳을 방문해야만 했다. 한번 가면 분유를 10통 정도를 구매해서 오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자라서 초등학교 입학 이후부터는 밥을 많이 먹고 해서 제법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다. 대부분의 장애아들이 식탐이 많아 너무 많이 먹어서 문제가 되곤 했지만, 오히려 우리 애는 식탐으로 인해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바탕이 되어서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었다. 밥을 먹을 때는 항상 밥상에 올라있는 모든 반찬을 철저하게 하나씩 돌아가며 골고루 먹는 습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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