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아빠가 돌아가신 그날, 왠지 '운수 좋은 날'이 생각났다.

by YOOJAE

칠월의 마지막 한주는 날이 이상하게 예쁘고 밝았다.


칠월 이십 삼일. 친정에 꽤 오래가지 않아 아빠가 안부 인사겸 전화가 왔었다. 곧 내 생일이었는데, 아빠가 내 생일이 있으니 용인에 오라고 하셨다. 평소 같으면 대충 대답하던 나였을 텐데, 그날따라 아빠와 참 기분 좋게 통화를 했다.

그리고 삼일 뒤, 친정에 가게 되었다. 사실은 전날부터 친정에 간다 안 간다 하며 계획을 번복하고 있었는데, 십 년 가까이 만나지 못한 막내 이모가 집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준비하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이모는 만나지 못했지만 친정에 잘 도착했고 덕분에 아빠와 함께하는 마지막 생일을 보낼 수 있었다.


월요일에 남편이 친정에 데려다주고, 월부터 일요일까지 11개월 된 우리 딸과 함께 친정에 머물렀다. 거진 한 달 만에 친정에 왔나 보다. 그 사이에 우리 딸도 부쩍 커서 친척 언니 오빠들과 잘 어울리게 되었고 그 모습이 참 신기했다. 그날 6시쯤 아빠가 퇴근하시고 집에 오셨는데, 연락 없이 찾아갔던 우리 모녀를 보고서는 정말 환하게 웃으시며 좋아하셨다. 나의 두 언니와 여동생, 그리고 다섯 조카와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 즐거운 한 주를 보냈다. 엄마와 드라이브를 갈 때에도 이상하게 들떠있었는데, 그날따라 햇빛이 참 반짝거리고 따듯해서 꽤 많은 얘기를 하며 갔던 것 같다. 모든 게 완벽했던 칠월 마지막 주였다.


칠월의 마지막 날인 31일에는 아빠를 모시고 바지를 사러 갔다. 남편과 같이 집 앞에 남성복 가게에 모시고 가서 바지를 사 드렸다. 사실 엄마가 우리를 내보내셨다. 내일 당장 울산 여행을 가야 해서 아빠가 바지가 필요한데 본인이 아무리 가자고 해도 안 나가신다며 우리더러 모셔가라고 했다. 아기는 집에서 잠을 자고, 아빠를 모시고 남편과 셋이 나란히 걸어갔다. 아빠와 함께 바지를 고르면서 '그동안 참 아빠 옷을 안 골라 봤구나' 생각이 들면서 속으로 반성하고 있었다. 36이라는 아빠 사이즈를 듣고는 머릿속으로 '36 36 36' 되새겼다. 다음에 선물해 드려야지. 밝은 체크무늬 바지를 고르셨다. 입어보시고는 한 단 줄였고, 돌아오는 금요일에 찾으러 오라고 했다. 내가 계산을 했고, 아빠 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작년 겨울에 못 드린 아빠 생신 선물이라며 장난기 섞어 말했다. 아빠가 기분 좋아하셨다. 딸 노릇 한 것 같아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는 짐을 정리해서 기분 좋은 일주일을 마무리하고 광명으로 돌아왔다. 특히 이번 주 중에서도 아빠께 깜짝 선물 사드린 오늘이 제일 기분이 좋았다. 돌아오는 내내 우리가 아빠께 선물 참 잘한 것 같다며 남편이랑 기분 좋은 대화를 했다.


광명으로 돌아가자마자 시댁에 들렀고, 그곳에서 잠을 잤다. 잠이 들기 전 갑작스러운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를 보고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어제와 참 상반되는 날씨다라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비가 그치지 않고 추적추적 내리던 그날 새벽, 우리 아빠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떨리는 그때 그 새벽의 그 장면은, 뭐랄까. 너무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남편이 전화를 받았다. 한참을 심각하게 전화를 받은 뒤 끊고서는. 아주 천천히 들어보지 못했던 진중하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대."


우리 아빠는 돌아가시기에는 너무 젊고 또 너무 좋은 사람인데.

우리 아빠는 돌아가시기에는 너무 건강한데.

믿을 수 없는 시간들이 흐르고, 결국 우리 아빠가 돌아가신 것은 사실이었다.


장례식장에 서있는 내내 너무 밝고 아름다웠던 지난주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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