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일방적일 수 있을까.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그 소식을 들은 그 순간부터 지금껏 한시도 아빠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모든 물건과 장소를 통해 아빠를 추억하고 지금껏 내내 마주하는 모든 것이 아빠로 연결되었다.
아빠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그날부터 며칠 동안은 집안 구석구석 아빠의 흔적을 살폈다. 제일 먼저 그동안 펼쳐보지 않았던 오랜 앨범을 꺼내 펼치고는 아빠의 젊은 시절을 며칠간 유심히 쳐다보았다. 지금 나보다 어린 아빠의 모습들. 밝고 환하게 웃는 아빠의 사진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이제야 궁금해진다. ‘진작에 아빠와 함께 사진들을 구경할걸.’ 후회와 함께 앞으로도 영영 진실을 알지 못할 아빠의 젊은 날들을 상상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모든 데이터를 동원하여 아빠를 추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최대한 모으려고 애썼다. 나와 아빠, 그리고 가족들의 핸드폰에 있는 아빠의 사진들과. 오랜 싸이월드와 네이버 밴드에서 찾은 옛 사진들. 아빠와 내가 주고받은 이메일과 카카오톡 메세지. 그리고 카카오스토리에 쓰여진 아빠의 글 들. 급하게 뒤죽박죽 모아 머리에 쑤셔 넣다 보니 막상 가장 최근의 아빠가 흐려지는 부작용도 있었다.
아빠를 잃은 엄마는 처음에는 이상하게 괜찮아 보였지만, 중간중간 어두워지셨다. 엄마가 지켜야 할 네 딸이 있어 강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어떤 부분에서 아빠 얘기를 꺼내면 표정이 굳어지시고는 한참을 말이 없어지셨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아빠 얘기를 하는 것에 조심스러웠고, 대신 언니들과 동생에게 끊임없이 아빠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빠와 얽힌 에피소드에서 고마움, 미안함, 사랑, 추억, 안타까움 등 여러 가지 감정을 토로했다. 같은 딸의 입장으로써 우리 네 딸은 밤낮 할 것 없이 아빠를 그려갔고, 아빠를 추억하는 동안은 아빠가 살아계신 마냥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었다.
아빠가 살아계시는 동안 나는 늘 철이 없고 아빠에게 잘 삐지는 못난 딸이었다. 속도 참 많이 썩이고 걱정도 많이 시키는 뾰족뾰족한 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안 좋은 기억보다는 아빠와 즐거웠던 기억들만 떠올랐다. 참 뻔뻔하게도 정말 깊은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 행복하고 좋았던 기억들만 쏙쏙 잘 끄집어내었다. 그러다가 한 번씩 나의 철없던 행동들이 불현듯 떠오르면, 영원히 전하지 못할 이 미안한 마음과 더 이상 해소할 수 없는 어떤 안타까움에 토할듯한 답답함에 목이 꽉 막혔다.
내가 살면서 아빠를 이렇게나 크게 생각했던 적이 있던가. 이렇게나 누군가를 향한 애틋하고 가슴 아픈 마음을 가진 적이 있던가.
이렇게 이어질 수 없는 지독한 짝사랑이 또 있을까. 한 번은 우리 아빠가 아무리 사랑을 주어도 느끼지 못하는 철없는 딸에게 일방의 사랑을. 그리고 이제 아빠가 돌아가신 뒤에야 그 마음과 정성을 깨닫고 조금이라도 닿으려고 애쓰는 딸의 사랑이 너무 일방향이다.
나는 아빠가 평생 내 곁에서 철없는 나를 지켜주고 이해해주고, 나는 평생 아빠에게 그런 무한한 사랑을 당연하게 받을 줄만 알았지.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그리고 이렇게 빠르게 이별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부모의 마음은 살아생전 이해할 수 없다고. 그런 흔한 말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살아 계실 때 잘할걸, 이라는 그 흔한 말을 내가 이렇게 격하게 되뇌고 되뇔 줄은 전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