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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oNB May 03. 2022

브랜드 마케터의 포지션이란

그 브랜드의 핵심, 사업 전략팀이다.

 국내 화장품 브랜드에서 브랜드 마케팅 5년.

8년 차 전문가가 봤을 때, 에게? 겨우 5년이라고 할 수 있지만,

40명도 안 되는 스타트업에서 300명 이상의 중견기업으로 성장,

향수 코스메틱 브랜드로 세계 향수 브랜드 순위에 10위에 안착하는 과정, 대기업으로의 이직, 브랜드 컨설팅 2년을 겪었다면

절대 짧은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입사 초반 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11시 퇴근이 기본이고 새벽 2~3시에 퇴근했다. 매일...

사실 야근하는 시간만 줄어들었을 뿐, 파트장이 되었을 때도 야근은 매일 했던 것 같다.

대기업으로 이직한 후에도 이직한 회사에서 주말 없이 야근했다...

나 일 열심히 했다고 알아줘달라는 것보다 그냥 끔찍했다는 넋두리이다.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 야근 안 하나? 아니. 그때만큼 일하고 야근한다.

그냥 내가 봤을 때는 야근하는 패턴의 어느 정도는 본인 성격과도 관련 있는 것 같다.


 프리랜서든,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브랜드 마케터의 포지션을 갖고 있다면,

다른 부서보다 해야 할 게 더 많다는 것은 사실이다. 정확히 말하면 업무량이 많다기보다는 전반적으로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마케팅 트렌드, 회사의 사업 방향, 브랜드 방향, 브랜드 콘셉트, 브랜드 전략, 인플루언서 협찬, 블로거 협찬, 인스타그램 관리, 브랜드 매니징, 제품 기획, 브랜드 서비스, 브랜드 컬러, 매출 압박, 광고 기획, 인사이트, 소비자들 반응, 이벤트 기획, 상세페이지, 배송 등등...


 브랜드에 앞장서서 적토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야 하지만, 옆에 말도, 뒤에 말도 챙겨야 하는 게

브랜드 마케터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브랜드 매니저라고 부른다. 결국 그 회사의 사업 전략팀이나 다름없다.


감독이 되어서 다른 팀의 기술들을 빌려 브랜드를 어떻게든 굴러가게 하고 성장시키고 있다.

내 동기, 후배들이랑 하는 얘기가 있다. '브랜드 마케터로 있으면, 어디를 가든 일이 많고 힘들다.' 여러 부서와 소통해야 하고 다 두루두루 신경 써야 하며, 타 부서 업무여도 마케팅팀 피드백이나 컨펌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디 회사에 가도 일이 많은 것은 똑같다.


 대학교 시절 내가 상상했던 열정 있고 화려하고 패기 넘치는 아이디어 기획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매일매일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팍팍한 세상 속에서도 우리 브랜드는 어떻게든 굴러가게 만들어야 하는 다람쥐이다.


 그런데도 이 직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첫째, 이게 전문성이 엄청나게 필요한 직업이라기보다는 감각적인 직업이라 마케팅 직무가 아니면 딱히 할 줄 아는 게 없다. 코딩을 하겠어, 아니면 회사 변호를 하겠어. 이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둘째, 트렌드에 그 어떤 부서보다도 빠삭하다. 사실 트렌드는 마케터들이 만드는 게 아니다. (이걸 회사에 와서 느꼈다) 트렌드는 소비자들이 만들어 나가고 우린 그걸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그래서 다른 부서보다 트렌드를 읽는 눈이 많이 발달되어 있다. 또는 트렌드의 변화를 빨리 캐치하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내 주변에 있는 마케터들은 남들보다 조금 더 위트 있고 재치 있다. 난 그런 사람들과 동료인 것이 기분이 좋고 같이 일하는 과정이 즐겁다.


셋째, 브랜드의 전반적인 것을 다루기 때문에 창업해도 브랜드 전략을 세우는 것만큼은 자신 있다. 요즘 잘나가는 스타트업들 보면, 디자이너 출신이나 마케터 출신들이 많다. 앞서 말한 것처럼 트렌드 읽는 감이 좋고 브랜드 전략을 짜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지금 창업 준비를 하는 나도 제품이 아직 나와 있지도 않은데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어필할지 브랜드 전략은 이미 머릿속으로 다 세워놨다. 그래서 브랜드 론칭, 성장시키는데 조금 덜 힘들게 하지 않을까 싶다.


넷째, 1년 중 364일 정도는 죽을 것 같은데 2일 정도 단물처럼 기분 좋을 때가 있다.

내 예상대로 들어맞아서 마케팅 전략이 통했을 때, 당일날과 그다음 날까지 기분 좋다. 그다음부터는 또 어떻게 전략을 짜야할지 고민되면서 스트레스가 시작된다. 문제는 그 2일 달달한 기분에 중독되어서 또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도박 같은 거라고나 할까? 언제 또 타격감이 좋아질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좋아지겠지 하며 열심히 공을 날린다. 그래서 아직 못 빠져나오고 있다.

다섯째.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한데... 내 성격이 워낙 별나고 형식에 얽매이는 것을 극혐한다. 근데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별난 성격을 어느 정도 용인해주는 것이 크리에이티브 적인 업무, 브랜드 마케팅 부서인 것 같다. 난 자유라는 것 자체가 직장을 다님에 있어 가장 중요했다. 회사에 온갖 반항을 다하고 규율이란 규율은 다 어기고 다녔다. 회사 안에서 상사들 눈치 안보고 하고싶은대로 하고(원래 윗사람들 눈치 안본다) 아이디어가 잘 안되면 온갖 장난을 생각해서 팀원들이랑 장난치고 놀았다. 어딜가도 유별난 성격이 튀었다. 그런데도 승진할 건 다 하고 연봉 올릴 건 다 올렸다. 매출 내고 실적 내면 또 확실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 브랜드 마케팅이란 직무인 것 같다. 또 다르게 보면, 그 회사가 나한테 참 잘 맞고 착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더 번뜩이는 활동을 잘 해왔던 것 같다.


이번에 브랜드 마케팅 자문 활동을 하면서 '참... 내가 가진 무기가 힘들긴 한데 꽤 괜찮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빠른 트렌드 변화 때문에 공부해도 끝이 없고 어떤 마케팅 전략을 짜도 타사 브랜드 마케팅 따라 하는 것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나름 브랜드와 회사의 중심이고, 트렌드의 중심 근처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다는 게 나쁘지 않다.


브랜드 마케터라는 게 엄청난 위압감이 있지만, 또 이렇게 내 위상도 높여주고, 날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는 걸 깨닫게 해 줘서 난 내 직업에 꽤 만족한다. 그래서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자면, 브랜드 마케터는 그 브랜드의 핵심이고 중심축이고 감독이자 그 회사의 사업 전략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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