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면서 서로를 존재하게 해 준다.
이렇게 우리 우주에는 하나가 생겨나면 동시에 다른 것도 생성되는 것이 많다.
만남이 시작된 순간 이별은 예견되어 있다.
선이라는 '관념'을 만들면 그것이 아닌 것들은 동시에 악으로 간주된다.
'내편'을 만들면 '내편 아닌 것'이 동시에 생긴다.
'정의'를 정의하면 동시에 '불의'도 생성된다. 정의가 아닌 것들 말이다.
지구에서도 예외없이 이런것들은 계속되어왔다.
그리고 그것들은 빛과 어둠처럼 우주를 이루면서,
서로를 깊이있게 만들어주기보다는
첨예하게 대립되는 양상으로 발전되었다.
양쪽은 점점 더 극단성으로 서로를 밀어내다가
결국 한쪽이 죽거나 둘다 죽는다.
우리는 지구가 끝장날뻔한 경험도 이미 겪었다.
우리 인류가, 그런 패턴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있었을까?
우리가 그 안에서 어떤 새로움을 찾았던 적이 있었나?
앞서 말한 것들을 타파할만한 자못 새로운것처럼 보이는 듯한 시스템이 나왔더라도,
형태만 바꾸어 예전의 것들을 반복하고 있다.
절대선은 동시에 절대악을 만든다.
절대악은 반대로 절대선에 대한 더욱더 고도의 기준을 높여가게 만든다.
그 기준 하에서 절대 악도 늘어만 간다.
서로 못봐줄 것만 늘어나는 거다.
둘은 그렇게 점점 더 절대 가까워질수 없는 경계를 만들어 첨예하게 대립한다.
때로 뉴스를 보며, 정의를 부르짖는 듯 하면서
본질적으로는 첨예한 갈등을 계속해서 창조하는 것은
과거와 마찬가지이지 않나 느껴질때가 있다.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 손상입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아픔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런 기억들로 우리가 똑같은 굴레에 다시금 빠진다면
그 아픔은 또다시 반복되기가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다.
영혼의 상처는 비슷한 일을 반복하게 만들기가 쉽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져야 할 시야는 그것 아닐까.
그것이 선이든, 악이든, 정의의든 불의의든
어떤 개념이 먼저 생성되면
그에 반동되는 개념도 반드시 동시에 생성된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고도로 그것들에 대한 기준과 경계를 높여만 간다면
반동적으로 더 촘촘한 반대의 것들이 창조될 것이라는 것.
그 안에서 계속 오락가락 하면서 살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그것들을 통합할수 있는 시야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더이상 오락가락 하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