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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ea Oct 09. 2024

쌍둥이불꽃이 전생에 헤어진 이유는8

3.둘을 지켜주었던 스승 같은 존재의 이야기



3.둘을 지켜주었던 스승 같은 존재의 이야기 


 나는 그 둘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주욱 지켜봐 온 존재이다. 때론 스승같기도, 때론 수호신처럼 그들을 지켜봐왔지만 그들의 선택에 어떤 개입을 한 적은 없다. 사실 모든 존재에게는 스승이나 수호해주는 존재들이 다 있다. 인간들은 알게모르게 그들과 소통하고 있으며, 사실은 자기 자신의 영혼과 소통하는 때가 가장 많을 것이다. 다만 그 감각은 지구 생활과는 적합하지 않는 때가 많아 잠궈 두는 때도 아주 많다.


 어쨌거나...그들의 역사를 안 나로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이별은 그들의 온전한 선택이었다’고. 물론 그들의 헤어짐은 각자에게 굉장히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 상흔은 계속 남아 그들이 선택한 인간적인 삶에 반복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그 상처를 완벽히 극복하고 완전히 새로운 페이지로 넘어가려고 하는 길목인 것이다. 


 그들이 더없이 행복하게 지냈던 한 때를 기억한다. 그들이, ‘더 큰 사랑의 존재’가 되어보겠다며 헤어지게 된 그 때도 기억하고 있다. 느닷없이, 왜 ‘더 큰’사랑의 존재를 꿈꾸었는지 알 수 없으나, 사실 필연이기도 하다. 만남과 동시에 이별은 예정되어있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니 말이다.  


 사실 더 큰 사랑의 존재가 된다 함은, 이 영혼적인 성장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들에게는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던 때가 있었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는 한계를 느낀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이 우주는 무한하기 때문이다. 


 성장을 위해서 대부분의 존재들이 택하는 방식은 많은 경험을 쌓는 일이다. 먼저 떨어져나간 한쪽은 성장에 대한 욕심과 의욕이 대단했기 때문에, 거의 우주의 끝과 끝을 경험한다 한 만큼 수많은 세월과 수많은 것들을 모조리 겪었다. 


 그러나 이 무한한 우주 속에서, 경험만으로 어떤 성장을 해 나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광활한 우주만큼이나 그녀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은 점점 크게 느껴졌다.그러나 어느 순간 느꼈을 것이다. 경험만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무엇을 배우는데 한계였다.사실 성장에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좀더 새로운 차원의 성장이라 함은 결국 누군가를 품고, 아우르는 힘을 키워나가는 것이었다. 세상의 어머니들이 그렇기에 찬사를 받으며, 지구에 존재했던 예수,석가등도 그래서 추앙받으며 현재까지도 지구에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왜 다시 조우하였는가, 그리고 왜 인간들이 말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았는가, 여기에 이 영혼들이 가야 할 길이 있다. 그들은 수 생을 윤회하였으나, 실질적으로 진정한 의미로, 그들 쌍둥이불꽃을 뛰어넘는 정도의 사랑을 해 본적도, 표현한 적도 없었다. 쌍둥이불꽃은 그들 세상의 전부였기에, 그 전의 사랑을 뛰어넘는 사랑을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하나 만들어내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며, 새로운 차원의 사랑의 존재로 거듭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들이 잠시 잠깐 조우했다가 헤어진 것은 그들 영혼이 현재 목표로 하는 지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들이, 알 수 없는 끌림이 있으나 다시금 연인으로 이어지지 않는데는, 그들의 강력한 목표성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왜냐하면 그들의 사랑은 기준점이 너무도 명확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이다’라고 믿었던 모든 기준점들을 뛰어넘을수 있겠는가...거기에 이 영혼들의 어려운 지점이 있다. 그들이 사랑이라 믿었던 기준들을  허물고 사랑의 역사를 새로이 써 갈 때, 그들은 자신이 사랑이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어떤 상황에까지도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마다 그들은 ‘이건 사랑이 아냐’하고 절망했으며, 그들이 원래 사랑이라 믿었던 그 온전하고 충만한 감각을 그리워만 하다가, 그 누구와 그 어떤 의미 있는 사랑을 하지 못하고-겉핥기 식의 사랑은 수없이 했다- 죽은 생이 여러번 있다. 


한편 이에 앞서, 서로가 서로에게 가지게 된, 그들이 찢어지게 될 때 입혔던 상처들, 또 이별의 배신감 같은 것들이 그들에게 굉장히 근원적인 공포와 두려움으로 남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사실상 그 때문에 새로운 차원의 사랑을 다시금 해 보는 것에 대해서도 계속되는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각자가 가진 근원적인 두려움에 대해서 온전히 해석하는 것 역시 그들이 풀어야 할 숙제가 될 것이다. 


 사실 먼저 떨어져나간 한쪽은, 그 자신의 광폭함으로 인해 나머지 한 쪽에 손상을 입혔고, 그것이 그 상대에 삶에 현재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에서 크나큰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어찌보면 그 죄책감으로, 성장에 목숨을 바치며 이날 이때까지 인간적 삶을 반복한 부분도 크다.


좀 일반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모든 존재들은 사실 서로 에너지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마치 인간의 뉴런처럼 말이다.  특히 밀접한 관계성의 존재들끼리는, 인간적으로는 잘 모를 수 있으나 영혼적으로는 굉장히 밀접하게 에너지를 주고받게 될 수 있다.영혼적으로 아주 긴밀하다면 물리적으로 연결점이 없어도, 이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에너지로 영향력을 주고 받고 있다. 또 물리적으로 밀접하게 생활하는, 이를테면 가족이나 그에 준하게 인간으로서의 연을 맺고 있는 존재들은 에너지적으로도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자주 놓치는 것은 인간적으로 어떤 관계성이 없더라도, 혹은 우주의 이쪽과 저쪽에 있더라도, 시간과 공간과 차원을 넘어 에너지적으로 모든 존재는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들도 그들이 서로를 인간적으로 인식하기 전부터 이미 연결이 되어 있었으며, 각자의 인간적 삶을 살았으나 어느 시점, 어느 때에 만나 그들의 과제를 다시금 인지하기로 어느 정도 약속이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 자신이, 그녀 자신이 나아가야 하는 길- 새로운 사랑을 키워나가고 표현해보는 것- 이 곧 그녀의 성장이며, 그녀의 성장이 곧 그녀 쌍둥이불꽃의 성장임을 그녀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그녀가 놓친 중요한 사실은, 사실 그 마저도, 그 상처받음 마저도 상대방의 온전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며,이제는 그 죄책감에서 그녀 역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죄책감의 에너지는 삶에서 계속해서 죄를 지으며 그것을 속죄하는 식으로 발현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 것에 앞서 내가 이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가장 근본적인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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