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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less May 12. 2021

보헤미아의 나날

중세 모습을 간직한 체코의 소도시 체스키 크룸로프

'보헤미안 랩소디'의 보헤미아는 체코의 서부와 중부 지역의 이름이다. 그리고, 체스키 크룸로프(Česky Krumlov)는 보헤미아 지방 남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이 도시는 18세기 이후 거의 변하지 않았는데,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이 혼재된 아기자기한 빨간 지붕과 언덕 위의 성, 도시를 휘감아 흐르는 블타바 강이 마치 동화속 마을을 연상케한다. 1992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사진 찍기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체코 여행 중 머문 기간은 3일이었는데, 작은 도시라고 해서 그 정도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30분이면 도시를 걸어서 횡단할 수 있다) 하지만, 아기자기한 상점들과 공예품점, 여기저기 숨어있는 보석같은 풍경들은 3일 정도로 볼 수 있는게 아니었다.

프라하로부터 편도 3시간, 하루 여덟 번 운행하는 고속버스를 타고 도착한 도시는, 중세의 건물들로 가득했다. 건물들에는 여전히 주민들이 살고, 대부분 민박을 하고 있었다.

구시가 광장 한 구석에 자리한 호텔 Zlaty anděl에 머물렀다. Golden Angel이라는 이름처럼 예쁜 호텔은 18세기 건물을 이용하다보니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덕분에 5층까지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올라가야했다. (벨보이도 없었다) 

짐을 넣어두고 호텔 뒤로 돌아가보니, 프라하와 체코의 상징인 블타바강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호수처럼 풍경을 비추는 강 위로 카누를 탄 사람들이 지나쳐갔다.

도시 곳곳에는 블타바 강의 지류가 수로가 되어 흐르고 있었다. 수로 양쪽으로 늘어선 라운지가 너무 좋아보여서, 호텔을 옮길까 생각까지 들었다. 라운지에 앉은 관광객들은 커피와 담배를 즐기고 있었다.

블타바강 옆으로는 에곤 실레(Egon Schiele) 아트센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에곤 실레는 1911년 체스키에 머물렀는데, 그때의 작업들과 자료들이 남아있다. 오리지널 스케치와 크로키를 볼 수 있고, 품질 좋은 그림엽서도 판다. 체코 애니메이션 작가들의 특별 전시도 열리고 있었다. 

체스키 크룸로프성에서는 다양한 투어가 운영 중이었는데, 모두 가이드를 동행하는 코스였다.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줄 알고 늑장을 부리다가 일부 밖에 보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루벤스의 태피스트리를 볼 수 있었다는 정도다.

체스키 크룸로프 성은 '곰 해자'로 둘러싸여있다. 물로 가득한 해자가 아니라 곰 네마리가 지키는 해자라니, 신기해서 들여다보자 곰 두마리가 어슬렁 지나갔다. 곰은 성을 지배했던 가문의 상징이라고 했다.

다시 에곤 실레 아트센터를 지나 상점가를 찾아갔다. 자기로 만든 장식들과 작은 종, 단추와 예쁜 물건들이 너무 많아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이것저것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다가, 깨먹지 않고 한국으로 가져가기는 어려울거라 생각하며 간신히 가게를 떠났다. 마지막 날 결국 쯔비벨무스터 세트를 잔뜩 사고 말았지만. 

상점을 나와 중세의 골목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중세를 간직한 풍경과는 별도로, 골목안 곳곳에는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숨어있었다. 대부분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전통 공예품과 작품들인 것 같았는데, 도시와 잘 어울렸다.

몇년 식일까요,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빨간 비틀을 들여다보다, 길의 끝에 있는 에겐베르크 레스토랑(Restaurace Eggenberg)을 찾아냈다. 이곳은 양조장 직영 펍이다. 

점원은 한번도 웃지 않았는데, 안주는 시키던 말던 관심 없고 오로지 손님들의 잔에만 관심을 보였다. 절대로 비게 두지 않겠다는 듯이, 끊임 없이 더 마실거냐고 물어왔다. 양조장 직영답게 흑맥주와 라거를 진짜 생맥주로 맛볼 수 있고, 굴라시(Goulash)와 꼴레노(Koleno)도 제법 잘하는게 맘에 들었다. 결국 저녁마다 찾아가는 참사가 벌어졌다.

성 위에서 바라본 체스키 크룸로프.

부데요비체(Budějovice) 문은 체스키 크룸로프의 북쪽 출입구로, 슈피차크(Špičak) 정류장에서 내리면 이쪽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프라하로 돌아오던 풍경.

곧 다시 가게 될 줄 알았던 체코는, 너무도 먼 곳이 되어버렸다.

언제쯤 다시 보헤미아의 풍경을 볼 수 있을지. 흐린 날이면 체스키 크룸로프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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