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라’는 말이 유독 어려워지는 순간들에 대하여
'나를 사랑하라’는 말이 유독 마음에서 겉도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일을 깜빡 잊었을 때,
소중한 사람에게 괜히 날이 선 말을 내뱉었을 때,
이미 여러 번 반복했던 실수를 또 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이런 순간들을 마주하고도
'그래도 나는 나를 사랑해'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난 왜 이럴까?’, ‘나는 이래서 문제야’ 같은 자책이 앞서죠.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 가장 가혹해지는 순간은 대개 비슷합니다.
실패를 겪을 때, 나의 부족함이 드러날 때,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 사이의 간극이 크게 느껴질 때입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다독이기보다
오히려 더 몰아붙입니다.
'난 왜 이것도 못하지?'
'이것도 못하면서 뭘 하겠다고'
심리학 연구들은 이런 반응을
단순한 성격 문제나 자존감 부족이 아니라
학습된 자기 방어 반응으로 설명합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잘했을 때는 인정받고, 못했을 때는 지적받는 환경에 익숙해졌고,
그래서 실수하거나 부족함이 드러나는 순간
타인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먼저 나를 비난하는 방식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익숙해진 비난의 말투와 기준을
스스로에게 그대로 재현하게 된 것이죠.
즉, 자기혐오는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오래된 생존 전략으로,
성격적 결함이 아니라 학습되고 강화된 패턴에 가깝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가혹해진 상태에서
우리는 곧바로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그래도 스스로를 사랑해야지.”
하지만 실패하고, 실망하고,
아직 납득도 용서도 되지 않은 자신을 마주한 순간에
그 말은 쉽게 와닿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일은
생각보다 조건적입니다.
일이 잘 풀릴 때,
괜찮은 선택을 했다고 느낄 때,
남들보다 조금 나은 모습일 때는
자기 자신을 비교적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수했을 때,
미성숙하게 행동했을 때,
스스로 부끄럽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오면
그 긍정은 아주 쉽게 무너집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라’는 말이
때로는 현실과 동떨어진 구호처럼 들리는 겁니다.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Kristin Neff)는 이에 대해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는,
‘긍정'과 '사랑’에 앞서
'자기 연민(self-compassion)'이 필요할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잘잘못을 가리는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기 전,
나를 먼저 보듬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보통 타인에게는
이런 태도를 비교적 자연스럽게 적용합니다.
친한 친구가 실수했을 때,
그 잘못은 짚어줄지언정
그 사람 전체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잘못이야”라고 말하더라도
“그래도 너라는 사람이 무가치한 건 아니지”라는
선을 마음속에 남겨둡니다.
자기 연민이란, 바로 그 따뜻한 선을 나에게도 똑같이 그어주는 일입니다.
나의 모든 모습을 사랑스럽게 여기라는 강요가 아닙니다.
다만 타인에게만 허용했던 그 관대함을 나에게도 돌려주는 것입니다.
지금의 나를
‘아직 변화 중인 존재’로 남겨두는 것.
이 장면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 한 장면이 나의 전부는 아니라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
그것이 진짜 나를 사랑하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출처
Neff, K. (2003). Self-compassion: An alternative conceptualization of a healthy attitude toward oneself. Self and identity, 2(2), 85-101.
Neff, K. D. (2011). Self‐compassion, self‐esteem, and well‐being. Social and personality psychology compass, 5(1), 1-12.
Gilbert, P. (2009). The compassionate mind. Robin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