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모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응급실에 입사한 지 며칠 만에 미운털이 박혀버린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선배들이 시키는 그 무엇이든 "저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문제는 난 이제 막 세상에 나온, 모든 것이 다 낯설고 생소하기만 한 신생아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내가 있는 이곳은 아주 작은 실수에도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는 응급실이었다.
간호사 면허는 있으나, 할 줄 아는 게 아무도 것도 없는 아무개였던 내가 할 수 있다는 호기로 덤벼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럼에도 난 무조건 할 수 있다 외치곤 일단 선배들이 챙겨준 물품을 챙겨가 환자 앞에 가서 커튼을 치고 늘 고민을 했었다.
지금이야 핸드폰으로 검색이라도 해서 방법을 찾을 수 있겠지만, 내가 신규이던 그 시절 그때는 그야말로 텅 빈 사막에서 맨손으로 우물을 파야 하는 것과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무모하고도 위험한 행동이었다.
신규는 뭐든 모르는 게, 처음인 게 당연하다.
그저 "잘 모르겠습니다. " "알려주시면 열심히 배우겠습니다."라는 말을 해도 다 용서가 되는 그 시절,
난 왜 이런 말들을 하는 것이 그토록 두려웠을까?
아마도 그때 난 모른다는 말을 하면 선배들에게 더 미움을 받을 것 같았다.
가뜩이나 나와 함께 근무하는 선배들의 표정들이 다 지쳐 보였고 내가 실수할 때마다 선배들의 한숨 소리가
내 목을 조여 왔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그런 내 모습을 들키지 싫어 오히려 더 크게 밝게 웃었고, 내 행동도 목소리도 점점 더 오버스러워졌다.
그렇게 하루하루 부딪히고, 실수를 반복하며 조금씩 배워가던 어느 날,
심한 복통과 하혈 증세를 호소하는 30대 여자환자가 119에 실려 왔다.
모두들 분주하게 검사를 이어 갔고 수술이 결정되었다.
여자환자의 진단명은 자궁 외 임신(Ectopic pregnancy)이었다.
수술 준비를 위해 shaving(면도) 오더가 났다. 선배가 면도기를 챙기는 걸 본 나는 늘 그랬듯
"선생님~ 제가 할게요. 저 면도 잘해요." 하고는 면도기를 받아 들고 환자에게 갔다.
내 등뒤로 선배가 " 1/3 정도만 하면 돼~ 다 밀면 안돼~"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백하자면 그때의 나는 자궁 외 임신 수술을 어떻게 하는지 몰랐다.
그저 산부인과 실습 때 산모들 출산 준비 시 면도를 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저 이것 또한 산부인과적 수술이니 똑같겠지라는 무식한 생각을 하며,
환자의 회음부 밑쪽부터 1/3을 열심히 면도를 했다.
그리곤,
스스로 만족하며 커튼을 치며 나오는 날 발견한 응급실 수 샘의 한마디
" 그 복부 쪽도 매매 깨끗하게 잔털 없이 잘 밀었제?"....
아... 그랬다. 자궁외 임신 수술은 회음부가 아닌 복부 절개였다. 아랫배... 쪽을 말이다.
당황한 나는 " 아~ 수선생님, 제가 한 번 더 확인하겠습니다. " 하고는 얼른 다시 커튼을 쳤다.
그러곤 아랫배부터 회음 부 위쪽 1/3을 다시 면도를 했다.
다 하고 보니.... 이런 ㅠㅠ
위, 아래 1/3을 밀다 보니 가운데 음모만 덜렁 남은 상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어, 나는 어쩔 수 없이 남은 음모까지 다 밀어 버렸다.
이런 내 실수를 덮기에 급급했던 나는, 어디서 주어 들은 건 있어
환자에게는 "수술 시 감염의 우려가 있어 음모를 제거했습니다."라고 설명을 하고 나왔다.
다행히 아무도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완전한 범죄란 없는 법.
환자분을 수술실로 인계하고 내려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술방에서 전화가 왔다.
쩌렁쩌렁한 마취과장님의 한마디
" 아니 대체 @@@ 환자 shaving 누가 했어? 어? 이렇게 환자를 백. 보. G를 만들어 놓으면 어쩌자는 거야? 누구야?? 누가 이런 무식한 짓을 해 놨어? 응급실 똑바로 안 해? "
그 뒤... 응급실안은 순식간에 수 샘의 분노에 찬 샤우팅이 가득 채워졌다.
" 서은경이~~~~~ 무슨 짓을 한 거야? "
이 사건으로 내 별명은 돌아이에서 백보G로 바뀌었다.
누구나 처음은 서툴고 힘들다.
그러니, 자신이 제대로 할 수 있을 때까지 "잘 모르겠습니다 "라는 말에 부끄러워하지 말자.
오히려 모르면서 아는 체 하다가 잘 못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분에게 돌아간다는 걸 잊지 말자.
나는 이 사건 이후로 모든 처치에 "다시 한번 알려 주세요." 혹은 " 이렇게 하는 게 맞을까요?" 하며 무조건 두세 번 확인하고 시행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