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간호대학을 졸업하던 그때 IMF가 터졌다.
내가 입사하기로 했던 병원은 총 30명의 신규가 합격을 했으나 병원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인원은 결국 17명으로 축소되었다. 만약 성적순이었다면 당연히 내가 밀렸어야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어떤 기준이었는지 내가 17명 안에 선택되었다.
입사하고 3주의 오리엔테이션으로 각 분야에 로테이션 경험을 한 후, 내가 선택한 우선순위와, 각 파트의 수간호사들이 매긴 우선순위로 매칭해서 각자의 부서가 정해졌다. 나는 1,2,3 지망을 다 응급실을 적었다.
그 당시 응급실 자리는 단 한 명이었고, 17명 중 11명의 신규가 응급실을 우선순위로 신청한 상태였다.
하지만 13명의 수간호사들의 만장일치로 내가 응급실로 배정이 되었다.
응급실 첫날, 좀 부려 먹기 좋을 만한 신규를 원했던 선배들 입장에선 내가 온 것을 많이들 실망을 했었다.
누가 봐도 17명 중 체격조건이 제일 약했기 때문이다. 깡마른 몸에, 누가 봐도 연약하게 생긴 나를 선배들은 대 놓고 싫어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한창 바쁜 응급실에 신원미상의 시체가 도착했다. 도착과 동시에 사망선고가 내려졌고 바로 영안실로 시체가 옮겨졌다. 잠시 후, 힘께 일하던 선배는 내게 영안실 가서 샘플을 해오라고 했다.
D.O.A (도착 시 사망) 환자 중 신원미상인 경우 경찰서에서 신원확인차 샘플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나는 샘플 보틀과 주사기를 챙겨 들고 영안실로 내려갔다. 하지만 이미 사지강직이 오고, 싸늘하게 식어버린 시체에선 도저히 혈관이 보이지가 않았다.
그러자 영안실 실장님이 내게 " 아이고 초자라 샘플 하나도 못하는 구만~ 응급실 간호사들은 다들 한 번에 금방 피 빼서 가던데...." 하며 날 비웃듯이 옆에서 계속 혀를 차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토니켓(고무줄)으로 팔다리를 묶어 보지만 여전히 혈관은 보이질 않았다. 죽은 시체니 동맥혈이 만져지질 않으니 도무지 어떻게 샘플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러다 갑자기 언젠가 영화에서 사람이 죽어도 심장의 혈액은 맨 나중에 굳어 심장에 바늘을 넣어 피를 빼던 장면이 생각이 났다.
난 곧바로 응급실로 뛰어 올라가 응급실에서 가장 큰 바늘(중심 정맥관 할 때 쓰는 16G 바늘)을 찾았다. 그리곤 다시 영안실로 뛰어 내려가 심장 한가운데를 그 바늘을 90도로 찔러 넣었다. 그런데 분명 혈액이 맺히는 듯했으나 샘플 할만한 혈액이 나오질 않았다.
내가 다시 가슴에 바늘을 찌르려는 순간 영안실 실장님은 내 손을 막아서더니 응급실로 당장 돌아가라고 했다. 나는 샘플을 해야 해서 못 간다고 하자 그분은 바로 응급실로 전화를 걸더니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여기 이 간호사 좀 데려가요. 아니 이러다가 심장 절개도 하게 생겼어요. 얼른 데려가요. 당장. 우리가 경고 먹겠어~~~ 와 이번 응급실에 제대로 돌아이가 하나 들어왔네. 아이고야 고생하겠어요 하하하 "
그랬다.
응급실에는 신규가 들어오면 그 신규를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영안실에서 샘플을 해 오도록 하는 전통이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응급실 선배들은 영안실에서 시체를 만지지 못해서 울거나, 토하거나, 때론 기절까지 하는 선배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놀라기는커녕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시체를 이리저리 만지며 팔, 다리에 토니켓을 묶고, 주삿바늘을 들이대고, 심지어 심장에다 냅다 바늘을 찔러댔으니...
그때부터 한동안 내 별명은 응급실 돌아이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행동으로 온 병원에 소문이 나면서 병원장님 귀에까지 이번 사건이 들어가게 되고 이후로 응급실의 전통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응급실의 미운오리새끼가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