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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타

이때의 일 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by 치와와

내가 완벽한 응급실 일원이 된 후...


근무표가 나오면 모두들 연휴나, 주말 근무를 나와 몇 번이나 하는지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난 환타였다.

(유난히 환자를 많이 타는 사람을 뜻한다)


평일 낮엔 외래로 인해 응급실이 바쁜 경우가

드문데도 내가 근무만 했다 하면 기본으로 119가

3번은 출동하고 경증이 아닌 대부분 응급수술이

필요한 상태의 환자들이 들어왔다.


내가 근무가 아닌데 연거푸 119가 출동하고

바쁘면 근무하던 선생님들이 혹시 응급실 근처에

내가 지나가는 거 아닌지 확인까지 했다.

(병원 근처에서 자취했었기에 ㅋㅋ

내가 그 옆을 지나가기만 해도 환자가 폭발한다고

할 만큼 난 심각한 환타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중엔 119 상황실에서 조차 내 근무를 확인 하기도 했었다.(내가 밤근무를 하면 본인들도

출동이 유독 많다고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쩐 일로 내가 근무를 시작한 지 4시간이 지나도록

119는커녕 환자 한 명 없이 빈 침상으로 한산하던

어느 평일 오후였다.


당직실에서 모처럼 꿀같은 휴식을 취하던 인턴샘이 간호사스테이션으로 오더니 한마디 했다

"뭐야 소문은 엄청나더니만 서샘의 그 기를 내가

눌렀나 보네요.. 내가 PK때부터 일복이 없는 걸로 또 유명했거든요. 자~ 다들 나만 믿으시죠. 오늘 우리 저녁 내가 쏩니다. 이대로 쭉~~ 조용...." 하고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것만.. 기다렸단 듯이 전화벨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그리곤 갑자기 환자 이름들이 하나둘 모니터에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어느 사이,

응급실 출입구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여기요~~ 손가락이 잘렸어요. "

" 우리 아기가 경기를 해요"

" 지금 다리에 피가 안 멈춰요"

" 여기 우리 아버지가 제대로 숨을 못 셔요"


순식간에 각기 다른 증상들을 호소하며 응급실의 침상들을 가득 채워버렸다.

우린 모두 일제히 인턴샘을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째려보곤 각자의 일을 하러 흩어졌다.


울상이 된 인턴샘은 계속 프린트되는 차트들을

하나씩 챙겨 들었다.


그 순간,

119 사이렌 소리가 유난히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한대가 아닌 두대의 119가 동시에 정문 앞에 정차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 들어온 환자 분 한분은

CPR을 30분 넘게 했으나 사망했었고,

또 다른 환자는 DI(약물중독) 환자였다.


한마디로 응급실안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날 대체 그 많던 환자들을 어떻게 우리가 다 봤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의 나는 정말 기계였다.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4년 동안 난 단 한 번도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어 본 적이 없었을 만큼

나의 그 시절은 파란만장했었다.


그만큼 정말 다양한 케이스들의 환자를 많이 접했고 수많은 죽음과, 생사의 갈림길에 선 사람들을 만났다.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처럼 웬만해선 당황하지도 않고 침착할 수 있는 여유를 부릴 내공이 생긴 건 아닐까?


그러니,

자신이 환타라 그저 힘들다 투정하기 전에

이런 경험들로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기회라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임상 20년을 병원근무를 하며 수백 명의 간호사를

만났지만.. 아직까지 나만큼 환타였던 사람은

만나보기 힘들었으니.....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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