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by 김경민


아무런 일도 없는 평범한 날임에도, 나는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낄 때가 있다. 밀린 과제도 없고, 시험 기간도 아니고, 신경 쓰이는 인간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그냥 이유도 없이 마음이 불안한, 그런 날이 있다. 나는 그런 날이면 운동화를 고쳐 신고 곧장 집 앞의 서점으로 향한다.


서점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전혀 다른 세계에 들어온 듯 바깥 세계와 잠시 이별한다.

잔잔한 음악, 책장을 가득 메운 도서들, 그리고 신간도서를 실은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책을 꽂아 넣는 직원. 이 모든 요소들이 만들어 내는 질서정연하고도 고요한 분위기는 나에게 안락함을 선사해 준다. 눈이 즐거운 볼거리가 있거나,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행복감을 주기 때문이 아니다.

안정감. 이곳에 있으면 나는 안정감을 느낀다.

태풍 앞의 코스모스처럼 사정없이 흔들렸던 마음도 가지런히 꽂힌 책들의 정렬을 보면 이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잠잠해진다. 그럴 때면 내 키보다 훨씬 높은 책장 속에 책들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만 같다.


“아무 일도 없어”


사실 나는 다독(多讀)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한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며 어딜 가든 책을 보고,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출간 소식에 방방 뛰며 곧장 서점에 달려갈 정도로 책을 좋아하진 않는다.

다만, 그저 책이라는 존재 자체를 좋아할 뿐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줄지어진 문장의 나열이나, 흰 종이 위에 검은색 잉크로 또렷하게 각인된 글자들은 마치 책이라는 세상 속에서 불안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다는 듯이 일관된 태연함으로 나에게 위안을건넨다.


사실 책과 나는 조금 별난 관계다. 사랑하는 사이라고 하기에는 서로 자주 만나는 것을 싫어 하고,

그렇다고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하기에는 이따금씩 서로를 애절하게 들여다본다. 친구와 연인 그 사이 어딘가에 우리를 규정짓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빼곡히 쌓인 책들의 제목을 훑어보고, 흥미로운 제목이 있으면 곧장 꺼내어 자리를 잡고 책을 읽는다. 한 장, 두 장. 가지런한 글자들을 읽다 보면 어느새 반나절이 훌쩍 지나 버린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서점을 나설 때면 나는 다시 내일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세상을 살아낸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한 곳에서 앞으로를 살아갈 수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얻고 다시금 문을 나선다.


서점을 나서는 순간, 잊고 있던 현실이 눈앞에 놓이지만, 나는 이제 괜찮다. 여기, 내가 머물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기 때문에. 서점에 꽂힌 수많은 책들을 보며 생각한다.


‘사람들은 왜 글을 쓰려고 할까.’


그리고 이내 답을 내렸다.

삶이란 모든 것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종이 위에

선명하게 새기고자 했던 게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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