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
저는 캥거루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청년 세대의 취업난이 불러온 사회문제의 하나라고 합니다.
1년을 계약직으로 직장을 나갈 때는 안심이 되었는데 계약직이
끝나고서는 도서관에 가거나 집에 있거나 합니다.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물어볼 수도 없습니다. 말 못 하는 심정이 오죽하겠나
싶은 마음이 먼저 들어서 속 시원히 물어볼 수도 없습니다.
다 큰 자식이 더 어렵다고 했던 선배 시어머님의 이야기도 생각
났습니다. 작년 가을부터는 부처님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
고 매달려 보기도 했습니다. 자식은 멀리 보고 키워야 한다는데
잔소리를 안 하려고 하다 보니 가슴은 자연히 답답해집니다.
안타까운 심정에서 남편과 의논해 보았습니다. 경제적 지원을
완전히 끊어버리자고 했더니
"내가 벌고 있으니 그냥 봐줘!"
어렸을 때 생전 하지 않았던 '딸바보'를 이제야 해주고 있구나!
돈 버는 아버지가 주라고 하는데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5월에는 남편이 '청년 인턴'이라고 있던데 지원을 해보라고
말해서 딸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랬더니 서울시와 협업해서
프로젝트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면서 두 달 동안 꾸준히 나가서
또 잠시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연계가 되어서 취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걸었습니다. 8월 초에 둘이
같이 밥을 먹다가 물어보았더니 취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잠시 실망했습니다.
물론 제 주위 지인들도 캥거루를 키우고 있는 집도 꽤 있어요.
사회적인 문제인 게 맞긴 하지만 다 큰 아이가 집에서 뒹굴뒹굴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
들 엄마가 아침부터 집에 있지 않고 나와서 운동하거나 약속을
잡아서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일을 하지 않았던 나도
할 수 없이 단기 알바를 다녔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딸은 별난 남동생 때문에 빨리 철이 들어서 6살부터 잠도 따로
자고 유치원에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사람 많은 백화점에서
OO어린이가 엄마를 찾고 있다고 안내 방송을 듣고 방송실로
갔던 적도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잘 사귀고 밝아서
"우리 OO 이는 아프리카에서도 살아남겠다"라고 말했던 기억
이 어제 같습니다. 대학교 때는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서
방학 때마다 가고 싶었던 외국을 갔다 오곤 했습니다. 그래서 딸이
지만 든든했습니다. 꿈속에서 자녀가 어떻게 되는지 누군가 물
었을 때 "음~~ 아들 둘인데요."라고 자연스럽게 말해서 놀라기도
했습니다. 사춘기 때도 무난하게 보내서 '그래 사춘기를 하지 않았
으니 엄마가 봐줄게!' 하며 스멀스멀 올라가고 있는 짜증지수를
살짝 이해모드로 변환해서 잘 지내보려 합니다. 나도 삼십 대 전
방황했던 것도 떠올라서 이해는 더 해야 했습니다. 대구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은 무조건 누나 편을 들어주고 한 번씩 둘이
나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오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너 나중에 돈 벌면 아빠에게 20만 원씩 갚아라"
"지((엄마)는 안 하면서"
이렇게 멋지게 받아치는 딸인데 어떻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외로움의 습격'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젊은 세대가 처한 사회문
제가 심각함을 알았습니다. 매일 딸의 얼굴을 보면서 잘 지내보
려고 '수행'하는 마음과 '이 또한 지나가리'하는 어려운 지혜를
실천하려 합니다. 어제는 백발마녀인 제 머리카락 염색을 딸이
꼼꼼히 해주었습니다. 고마워서 5만 원을 줬더니 내일 또 해준다고
합니다. 언젠가는 웃으며 말할 수 있는 때가 오리라 희망을 가져봅
니다. 이렇게 하소연하는 글을 써다 보면 뾰족한 캥거루 문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