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배웅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해졌다.
새벽에는 여름이불을 덮어도 약간 춥다는 느낌이 왔다.
아! 여름이 가고 있구나. 시절을 속일 수 없구나!
올여름은 그래도 '아이고 덥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으려고 했다.
여름이 듣고 있다가 더 심술을 부릴까 봐서였다. 더우면 잠시 쉬거나,
땀을 흘렸으면 얼음물 샤워를 하고 나서 선풍기로 체온을 내리거나
그것도 안되면 할 일을 후다닥 하고 찬물을 뒤집어쓰고 나와서 에어컨
을 틀었다. 작년(24년)에는 전기료가 겁나서 더위에 벌벌 떨었는데
올해는 그래도 원 없이는 아니지만 살기 위해 리모컨으로 에어컨을
틀어야 했다. 새벽에도 선풍기를 틀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었다.
8월에 밖에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가 적도 가까이 떠밀려
내려온 줄 알았다. 달아오른 지열에 발바닥이 데이는 줄 알았다.
강열한 뙤약볕의 존재감을 느꼈다. 온사방의 빛의 강열함이 저녁이
되어도 지지 않는 열기가 처음으로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양산이나
선글라스를 쓰지 않고는 외출 불가였다. 열대야가 지속이 되어서
잠을 못 자서 에어컨만 켜면 잠이 쏟아졌다.
그래도 이 열기 속에 배운 것이 두 가지가 있어서 너에게 자랑을
하려고 한다. 물류센터 단기알바와 브런치 글쓰기가 더운 열기 속
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했던 일이다.
물류 센터 단기알바는' 땀이 비 오듯 하다' 온몸으로 경험을 했다.
하루 10시간대형 선풍기만 있고, 화장실과 식당만 에어컨이 가동되는
시설에서 옷에 땀의 지도를 그리면서 노동을 했다. 체감 온도가 34
도에 이를 때는 오전 오후에 20분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주체할
수 없이 땀은 흐르고 샤워는 안 되고 젖은 옷을 입고 할 수밖에
없는 노동에 나를 던졌다. 더위에 살아남기 위한 별난 몸부림이었다.
노동을 하고 있을 때는 이성이 마비되는 듯했다. 순간의 사고에도
아무렇지 않더라. 며칠 뒤에 팔뚝에 시퍼런 멍이 생겼는데도 어디서
부딪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부부싸움을 심하게 한 줄 오해하기
딱 좋은 거라서 남편은 멍 연고를 빨리 발라라고 야단이다 못해 성질을
부렸다. 멍이 노동의 훈장인 것처럼 아무렇지 않았다. 그래도 요가를
할 때는 밴드로 가리려고 애를 썼다. 노동과 휴식을 번갈아가면서
온몸으로 치열하게 여름 속에서 묵묵히 살아냈다.
시골에 계신 80대 친정엄마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내려가 볼까
생각했다가 지난여름에 한 고생이 떠올라서 두유만 보내고 말았다.
친정엄마도 더우니 오지 말라고 했다. 더울 때는 우선 내가 살고 봐
야한다는 단순한 생각밖에 없었다. 효도도 시원해지면 이성을 찾아
서 두배로 해야겠다.
카페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꼈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나서 발행을 누르는 맛을 알고 나서 집으로 오는
시간은 하늘하늘 가벼웠다. 냉장고 같은 카페에 오래 있어서 더위는
떠오르지 않았다. 글쓰기는 더위에 찌들어가는 두뇌에 생동감을 불러
일으켰다. 노동 후의 수고로움을 시원하게 글로 남겨 두었다. 초역
채근담, 녹나무 여신, 스토너, 인간의 대지를 읽고 블로그로 남겨두었
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몸으로 땀을 흘렸더니 비로소 여름이 준
또 다른 무늬가 몸과 두뇌의 어딘가에 새겨졌다. 그러면 됐다.
해영이 언니는 몇 해전부터 요란한 여름의 매력에 빠졌다고 말했다.
'사계절 중에 제일 화려하고 요란하고 격정적이고 열정적이다'라고
화들짝 , 옴마야! 놀라웠다. 정숙이 언니는 최근에 동생이랑 얇은
가죽 재킷이랑 겨울 패딩을 샀다고 자랑했다. 그래서 얼른 가을이 오
기를 학수고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팥빙수를 3번 정도 먹었다. 냉면을 일부러 찾아가서 먹었다. 초여름에는
수박도 제법 먹었다. 고구마 줄기를 다듬어서 고추장을 넣고 졸여서
반찬도 했었다. 여름 음식을 먹어도 먹어도 더운 열기는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아서 슬슬 원망이 날 무렵에 새벽에 우는 귀뚜라미 소리
는 가을이 오고 있음을 실감했다.
오늘은 비빔밥을 점심으로 후다닥 해서 먹고 딸이 주는 카페 쿠폰을
손에 쥐고 노트북 와이파이 연결 방법을 배워서 이렇게 글을 두드린다.
가고 있는 여름을 배웅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살짝 아쉬움이 있다는
말도 해주고 싶어서였다. 하늘도 내가 글을 쓰러 가는지 알고서 적당히
구름을 띄워 주었다. 잘 가라 여름아! 북극에 가서 잘 쉬었다가 내년에는
조금 더 시원해져서 오렴. 체감온도 30도, 열대야는 10일 정도면 좋을
것 같아 예쁜 원피스 입고 너를 기다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