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 작대기 내려놓듯
마음먹은 일이 잘 되지 않았다고 지인에게 하소연을 한다. 그러면
"어이구! 내려놓아야지"라는 쉬운 말만 해준다. 대단한 것을 바라고
있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그래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정도는 이루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욕심'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밥을 먹고 그 일을 향해서 열심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왔을 것이다. 그런데 큰 스님의 화두 마냥 내려놓아라, 욕심을
버려라는 말을 쉽게 한다. 물론 나도 한 번쯤 했을 수도 있다. 기대하고
이루고자 열심히 달리고 뛰어 온 사람에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라는
말로 들릴 수도 있다. 내려놓음은 허망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지게 짝대기 내려놓듯' 그렇게 하루아침에, 순식간에 되는 일이
아님을 모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기대를 안고 참고
견디며 열심히 해 보지도 않은 사람만 쉽게 할 수 있는 '내려
놓음'이다.
수학 문제처럼 새해 소원처럼 마음먹은 대로 일이 술술 풀리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마음먹고 기대했던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실망하고, 고뇌하고, 허망하고,
분노하고, 억울하고, 무력해지고 온갖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
요가의 마무리는 언제나 '사바하' 자세이다. 한 시간 동안 여러
자세를 하느라 힘들었다. 복식 호흡을 하면서 자는 듯 아니 죽은
듯 편안한 쉼의 자세이다. 잠깐의 쉼 동안 진짜 잠이 드는 사람도
있다. 코 고는 소리도 난다. 이 자세를 할 때 조금씩 조금씩 내려
놓았다. 수행의 동작으로 의식적으로 의지를 갖고서 욕심의 한
가닥, 한 줄기, 한 줌, 10CM, 10g으로 내려놓음에 온 마음을
집중했다. 책을 읽다가 내려놓음과 비슷한 문장이 보이면 여지
없이 필사를 했다. <내가 생각한 삶이 아니야>라는 제목의 책도
읽었다. <생각 버리기 연습> 예전에 읽었던 책도 다시 꺼내서
읽었다.
그런데 하나를 내려놓기도 전에 또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일
이 생겨버린다. 겹쳐버리거나 두 가지가 한꺼번에 꼬여버린다.
태풍이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태풍의 조짐이 또 보이기 시
작한다. 허리케인이나 쓰나미가 아니어서 '다행이다'라고 해야
하나 내려놓음의 수행을 계속하고 있어야 할까? 잠시 허둥대거나
인생의 날씨를 거시적으로 관망해야 하나 싶다가, 그래 무슨
수로 인생의 날씨를 알 수 있을까? 이렇게 허둥대다가 마음을
놓은 순간 언제고 꼭 한번 가고 싶었던 '세계여행'의 기대가
저 아래로 내려놓음을 알아차려버렸다. 편안한 시기가 오면
방 안에 앉아서만 돌아다녔던 곳을 두 다리로 두 눈으로 서서
바라보고 싶었다. 의욕이 점점 약해졌다. 내가 살아서 저
먼 곳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겨버렸다.
프랑스 몽블랑이나, 몽골의 지평선, 아르헨티나 빙하, 뉴욕의
빌딩에서 석양보기, 아이슬란드 오로라 보기 등 거대하고
비용이 들고 체력이 소모되는 욕구마저 내려놓음 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