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아프다
브런치 10주년 , 브런치와 함께 꿈꿔 온 '작가님의 꿈'에 도전!
헐레벌떡 글쓰기에 대한 짧은 단상을 적어보았다. 헐레벌떡이란 단어에는 성급함과 다급함이 들어있다.
일 년 전, 한 달 전도 아닌 며칠 전에 달랑 써서 퇴고를 거듭할 시간도 많이 거치지 않고 '될 거야, 되겠지'
단순한 자만심만 머릿속 가득했다. 읽을 사람을 전혀 고려함이 없이 오직 순수하게 100명의 작가에
들어가고 싶었다. 중간 고사도 아니고 모의 고사도 아니 건만 100명의 글만 전시를 하니 시험처럼 등수
안에 들여야 할 것 같았다.
결과는 예상을 비켜갔다. 아니다. 예상을 하거나 기대의 장대를 올려다는 것이 더 커다란 실패이다. 기껏 몇 편의 글을 올려놓고서는 터무니없는 거창한 꿈을 일주일 동안 헤매고 다녔다. 실패를 하고 나니 노트북을
펴고서 브런치에 들어가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조용하게 있었다. 작가가 그리 쉽게 되겠어!!
아쉬움이 더 커지기 전에 스스로를 다독였다. 브런치 회원이 5만여 명에 이른다는 내용을 읽었다. 5만 명의 100등은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의 숫자였다. 도서관 독후감 대회처럼 생각했던 착각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실력이 부족한 당연한 실패였다.
한 달 뒤에 작은 도서관 단기 근로자로 지원했다. 물류센터 단기 알바보다 덜 힘들 것이고, 단기 근로자로 일한 경력이 있어서 '한 번 도전!' 하지만 나이가 많아서 누가 나를 뽑아줄까? 의문이 들었지만 되든 말든
일단 해보자가 먼저였다. 홈페이지에서 다운을 받아서 서류 작성을 했다. 메일 어디로 보내야 하는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딸에게 물어보니 금방 찾아주었다. 겨우 보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내일 면접을 오라는 내용이었다. 처음 가는 곳이라 장소 검색을 했다. 오후 3시 면접인데 비가 왔다. 혹시 늦을까 봐 버스를 타고 가다가 택시를 탔다. 오랜만에 면접을 보는 것이라서 떨리고 긴장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면접 공간에 안내받아 앉아 있었다. 면접을 보는 사람이 한 분 더 있었다. 면접자는 두 사람, 면접관은 세 사람이었다. 다섯 사람 중에서 내가 제일 나이가 많은 것 같았다. 자기소개서에 적은 내용을 물어보았다. 솔직하게 너무 솔직하게 컴퓨터에 약간 서투르다고 적었다. 젊은 남자 면접관은 지원서 첨부 파일 작성에서도 컴퓨터 잘못하는 것이 보인다고 했다. 정년이 3년 남은 나이와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데 지원을 했다고 직설적이고 친절하게 지적을 해주었다. 내 옆에 앉은 면접자는 40대로 젊었다. 집도 도서관과 가까운 곳이라고 대답했다. 아무튼 10년 만에 본 압박면접이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들러리를 서주었다는 깨달음은 집에 와서 제정신이 들었을 때였다. 물론 혹시나 '문자가 오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 것이 더 문제였을 수도 있다, 오지 않을 문자를 그렇게 기다려 보기는 참 오랜만이었다. 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적인 실패는 많이 달랐다. 나만 찬 서리를 맞아서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낙엽이 되었다. 현실은 여전히 늦더위의 있음에도 찬바람이 솔솔 불었다. 의욕이 무지막지 꺾였다. 실패담을 여기저기 이야기했다. 실패가 나를 아프게 했다고 어리광을 부렸다. 그러게 너무 솔직하게 컴퓨터를 못한다고 한 게 잘못이다. 지원하라고 했던 사서샘이 들러리 서게 했을 수도 있다는 모함, 또 다른 곳에 지원을 하면 될 수도 있겠다 등등으로 말했다. 실패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나이를 현실적으로 실감했다. 왜 이런 현실적이지 못한 꿈을 꾸고 있을까? 아프게 허벅지살을 꼬집어야 제정신으로 돌아오려나보다. 재미난 책을 읽으러 카페에 가야겠다. 구름이 뭉게뭉게 그림을 그린 파란 가을 하늘을 보면서 정신을 차려보자.
실패의 직격탄을 연료로 앞으로 닥칠 험난한 고난을 대하는 자세에 보탬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