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하는 기술

나만 아는 전통 한식 셰프

by 초록여유

오늘 저녁에 뭘 해 먹을까?, 주말에 뭘 먹을까? 주부라면 늘 하는 고민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고민을 아예 하지 않는다. 자신감이 가득하다. 밥 하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 세상없는 자신감의 원천을 네 가지로 정리해 보겠다.

첫 번째는 입맛이 '극강'으로 까다로운 남편과 30년 넘게 살다 보면 저녁 식사 문제는 껌이다. 김치 콩나물 국밥을 주말마다 15년 정도 끓였다. 까다롭다, '맛있다 '는 말만 빼고 타박을 하면서 먹었다. 그래도 밥만 주면 조용하다. 아들이 고등학교 다닌 때 집안 가득 퍼져 있는 김치콩나물 국밥 끓인 냄새에 '오늘도 먹었어 지겹지도 않아!' 하면서 문을 열고 나왔다. 정해진 메뉴를 하면 편하기도 하고 눈 감고도 할 만큼 손에 익어서 자동반사적으로 수행했다. 육수를 내는 다시마, 대멸치, 콩나물, 대파, 식은 밥은 떨어지지 않게 구비를 했다. 어렸을 적 친정엄마가 밥이 조금 남았을 때 신김치를 넣고 식은 밥을 조금 넣고 마른국수 한 줌을 더해서 푹 끓여줬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때를 메운다'라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남편이 집밥을 고집하는 데는 속이 편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돈을 아끼려는 의도가 더 강했다. 돈을 절약하는 부모님을 보고 자라서 배운 데로 자신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주말에 맛있는 외식을 했다고 자랑을 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아이고 부러워라'하고 있었다. 아들이 아버지의 고집을 꺾어보려고 맛집을 예약을 했으니 택시를 타고 가족 모두 가자고 했다. 남편은 돌아오는 버스에서 배탈이 나서 진땀이 났었다고 일주일 뒤에 말했다. 그래서 요즈음은 나 혼자 먹고 싶은 메뉴를 정해서 돌아다녔다. 돈가스, 순대국밥, 추어탕, 햄버거, 월남국수, 수제비등 아무튼 혼자서 외식으로 욕망을 채웠다. 그러고 나면 주말에 열심히 세상없이 밥을 할 수 있었다. 남편은 삼식이를 넘어서 '종간나**'(종일 밥을 먹고 중간에 간식도 먹는 사람)로 성장했다. 2년 뒤에 닥쳐올 퇴직을 위해 자신의 밥을 챙겨 먹도록 오늘부터 훈련을 시켜야겠다. 30년 동안 미루고 미뤄 왔던 '남편 조련'을 시작해야겠다.

두 번째는 솜씨가 뛰어난 친정엄마와 시어머니가 있었다.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기술 수련 덕분이었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해주는 음식은 별로라고 여기고 잘 드시지 않아서 '큰일이다'라고 본인들이 인정했다. 취향의 기준(입맛)이 높고 음식 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고 즐겨했다. 명절음식은 물론 종갓집 큰며느리 출신답게 대량의 음식에 최적화되신 분들이었다. 두 사람 다 반찬집에서 음식을 사서 드시지는 않았다. 푸짐하게 해서 온 동네 사람과 나눌 정도로 대량에 탁월한 솜씨의 보유자들이다. 마늘 다져 넣고 식초 쪼매 더 넣어야 되겠다. 간을 보고 나서 꼭 하시는 말이다. 대가족이 큰 상에 둘러앉아 밥 먹는 모습을 보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일주일 전부터 하나씩 하나씩 사다가 다듬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끓여서 한 솥을 만드셨던 분들이다. 우엉 김치, 톳나물 설치, 추어탕, 장어국, 약밥, 쌀강정, 식혜, 절구로 찧은 밥떡, 콩나물 잡채, 고사리 해물찜 등등이다. 90세가 다 되어가는 노인이 손수 밥을 해서 먹고 지낸다'대단하고 놀라운 기술'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된장, 고추장, 액젓이라는 기본양념부터 내 손으로 직접 담근다는 것에는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기술이 녹아있었다. 남은 음식을 보관하기 위해 음식을 옮길 때 '저짝에 있는 통'에 다 들어가겠다. 눈대중이 정확하다. 알뜰살뜰 살아낸 생활의 기술이 몸에 베여있었다. 내년에는 친정 엄마와 '콩나물 잡채'비법을 배우기 위해 같이 하기로 약속했다. 방송을 타지는 않았지만 온 동네 소문이 자자하고 든든한 '한식 셰프'가 계셔서 너무 좋다.

세 번째는 부지런함과 바지런함이었다. 아들이 대학가 앞에서 자취를 할 때 한 달에 두 번씩 반찬을 해서 꽁꽁 싸매서 지하철을 타고 갔었다. 대충 방도 청소를 해주고 냉장고 정리도 해주고 왔었다. 아들은 '외식을 좋아하지 않는' 아버지를 닮아갔다. 엄마가 해준 집밥과 반찬을 더 좋아했다. 멸치 볶음. 진미채 볶음, 장조림을 꼭 가져가려고 했다. 음식이 든 종이봉투를 지하철에 두고 내려서 한 바탕 소란을 당해도 소용이 없다. 엄마가 한 것은 뭐든 맛있다는 '최고의 칭찬'이 춤을 추게 만든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졸이고 졸여서 후닦해 치워서

몇 가지를 해서 손이 쥐어줬다. 배달과 식당이 곳곳에 있지만 며칠 전부터 다듬고 불 앞에서 푹 익혀낸 '정성'

한 스푼은 결코 담기지 않는다는 것을 아들이 알아차렸다. 큰일 났다. 앞으로 힘닿는 데까지 해주려면 '세상없이 바지런함'을 쭉 쭉 유지해야겠다. 친구는 시댁이 해남이라서 겨울 저장배추를 시어머니가 줬다고 고민이

늘어졌다. 집에 와서 대야 두 개와 굵은소금, 찹쌀가루, 마늘을 갖고 올라갔다. 무를 나박 썰고 배추도 듬성듬성 썰었다. 한 시간을 절였다가 휘리릭 배추 물김치를 해서 세 집으로 나눴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지인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방금 우리 엄마가 온 줄 착각했다고 말했다. 가까운 지인에게 슬픈 일이나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물김치 한 통 손에 쥐어주면서 힘내라는 말을 전했다.

네 번째는 시절을 아는 지혜이다. 제철 음식을 먹는 것이 보약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봄에는 각종 나물을 먹고 여름에는 고구마 줄기, 오이, 수박을 많이 먹고 , 가을에는 뿌리채소, 견과를 위주로 겨울에는 늙은 호박죽, 팥죽을 해서 먹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엉개나물(개두릅), 두릅을 먹어와서 그런지 쌉싸름한 그 맛을 먹어야 왠지 한 해를 잘 보낼 것처럼 힘이 생겼다. 여름에는 고구마 줄기를 까느라 손은 시꺼먼 물이 들어있어도 괜찮다. 도라지가 등장하는 가을이 되면 통도라지를 사 온다. 껍질을 대충 까고 손질을 하면 두 배로 늘어났다.

푸짐하게 고추장에 무쳐 먹고, 굵은소금으로 약간 치댄 후에 국 간장으로 볶는다. 도라지를 집에서 다듬으면 훨씬 싱싱하고 량도 많았다. 7년 전부터 남편은 어렸을 적 먹었던 박을 찾았다. 셋째를 당신이 가졌구나! 늦여름에 나는 박으로 나물을 했다. 반은 나박나박 썰어서 냉동해 두었다가 두 번 더 해서 먹었다. 초가을 애호박으로 멸치 몇 마리 던지고 통제피, 양파를 같이해서 끓였다. 나만 아는 애호박찌개 '필살기'이다. 더위에 지치고 지쳤을 때 먹으면 시절이 지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메뉴이다. 그날 소식좌 남편은 꼭 밥을 더 달라고 했다.

이렇게 자랑질을 하지만 잘못하는 것도 고백해야 양심이 설 것 같다. 세상없이 밥은 잘해도 못하는 것이 정리 정돈과 청소다. 며칠 전 아들 때문에 힘들어 울먹이던 언니가 마음에 남았다.

"언니 내가 팥죽 끓여 줄게 라인 댄스 끝나고 집으로 와"

시어머니가 보내 준 국산 팥으로 압력 밥솥에 한 솥단지 끓였다. 언니들은 두 대접을 순삭 했다. 김치 부침개까지 접시가 깨끗해졌다. 그날 저녁 낯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더니 남편은 청소를 좀 하고 불러야지 그랬다. 인정한다. 이놈의 청소 기술은 해도 해도 늘지 않아서 걱정이다. 정리 수납 전문가 2급 과정을 배워도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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