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적인 필사 뒤에 오는 것들

일기의 쓸모

by 초록여유

책을 읽으면서 노트 한편에 필사를 해 두었다가 블로그에 올리는 일을 시작했다.

기억을 저장해 두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다. 읽다가 마음에 와닿았던 문장을 필사

했다. 필사적으로 밤에 불면이 있을 때 정말 좋았던 나름의 처방전이었다. 읽을 때

한번 필사할 때 두 번 블로그에 올릴 때 세 번 들여다보게 되는 문장이었다. 그래서

특별했다. 문장의 잔상들이 내 머릿속에 일주일 한 달을 머물렀다. 통장에 돈처럼

머릿속이 가득 차면서 그러다가 모양을 전환해서 나의 일상을 건드렸다. 적었던

문장 속에서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말과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신기하리 만치 아니 신비스럽게 현실의 일상이 다른 화면으로 전환이 되었다.

아무튼 생각을 달리하게 만들고 이래 저래 여유로 바뀌었다. 필사적인 필사가

가져온 뿌듯한 효능감이었다.

<철학의 쓸모> 로랑스 드빌레르가 썼다.

일상은 너무나 가혹해서 우리는 삶을 가볍고 경쾌하게 살아내지 못한다.

그래서 늘 시간의 제약이 느슨해지고 부담이 가벼워지는 순간들, 고된 하

루의 쉼표가 되어주는 순간들을 기다린다. 그리고 고통이나 슬픔이 가벼

워질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p129 )

보바리즘(Bovarysme) 실제로 겪어보지 않고도 사랑과 그것으로 인한 슬

픔은 오롯이 느끼는 문학적 질병 (p132)

평온하게 살아가려면 삶이 우리 앞에 차려놓은 음식을 제대로 먹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우리 삶이 연회에 참석한 것과 같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앞에

이제 막 음식이 놓였다고 하자, 그러면 손을 뻗어 적당한 양을 덜어가면

된다. 우리 앞에 놓이지 않은 음식은 굳이 집으려 해서는 안된다. 아직

우리 차례가 되지 않은 것이다. 오지 않은 음식에 욕심을 내지 말고 그

것이 우리 앞에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자녀들과 아내

에게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권력과 부에 대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언젠가 신들과 축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스토아학파 에픽테토스

그대는 작가가 원하는 대로 쓴 연극의 배우임을 기억하라. 연극은 작가

의 뜻에 따라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다. 작가가 그대에게 거지 역할

을 바란다면 기꺼이 그 역할을 해내야 한다. 또한 절름발이나 법관, 그저

평범한 사람의 역할을 바랄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대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이 그대가 해야 하는 할 일이다.

역할을 선택하는 것은 결코 그대의 일이 아니다. 오직 가능한 것만 욕망

하는 것이 과연 욕마일까? (p217~~218)

일상의 가혹함, 굳이 내 앞에 놓이지 않은 음식을 집으려 하지 마라, 주어진 역할

을 잘 수행할 일이지 역할을 바꾸려고 하지 마라는 일침을 가하고 있다. 내 인생의

작가가 되어 내 인생을 요래조래 바꿀요량을 두뇌를 풀가동했던 적도 있고, 다른

사람 앞에 놓인 화려함을 침 흘리면서 부러워했던 적은 누구나 다 있을 것이다.

'신과 같이 축배'를 기울이기 위해서는 내 앞에 차려진 음식만 먹어야 한다는

'엄청난 욕망의 절제'를 요망했다. 불가능을 해내야만 신과 함께 할 수 있다니

그냥 인간이기를 바랄 뿐이다. 중학교2학년 국어 시간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

라고 선생님이 물었다. 대답은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답했다.


<약간의 거리를 둔다> 소노 아야코 에세이

불행은 사유재산이다.

불행도 재산이므로 버리지 않고 단단히 간직해 둔다면 언젠가 반드시 큰

힘이 되어 나를 구원한다.(p46)

적당함의 미학

적당한 자신감, 적당한 가난, 또는 적당한 풍요로움, 적당한 좌절감, 적당

한 성실, 적당한 안정, 적당한 거짓말, 적당한 싫증, 적당한 기대 또는 적

당한 체념........

이것들이 인생에 깊이를 더하고 그늘을 드리우며 좋은 맛과 향기가 나는

존재로 만들어준다.

소노 아야코 언니를 좋아한다. 불행도 재산이라는 말에 '헉'해버렸다. 밀어내려고

떨쳐버리려고 발버둥을 치는 불해이란 놈을 재산으로 생각하라고 하니 뒤에서

'아이구'하고 꿀밤을 주는 듯했다. '적당한'말이 이렇게 위로를 더해줄 수 있을까?

완벽함을 추구미로 가다가 그래 '적당한' 앞에 숨을 돌리고 '적당히 하자'를 외쳐

보지만 어느 정도가 얼마만큼 이 적당한지 모르겠다.


<초역 쇼펜하우어의 말> 쇼펜하우어

삶이란 끊임없이 죽음을 모면해 가는 것이다

삶이란 '지금'의 연속이며, 지금은 당신의 손에서 매 순간 과거로 사라진다.

살아있다는 것은 곧 매 순간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삶은 그저 죽음을

잠시 미뤄둔 것에 불과하다. 매끼의 끼니, 매일의 수면, 무엇하나 죽음과

싸우고 있지 않은 것이 없다.(p40)

일기는 스승이다.

일기를 쓰지 않는다면 당신의 인생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스스로를 기록하지

않는 사람과는 제대로 대화할 수 없다. 경험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안

는 다. 세월은 모든 것을 지운다. 경험도, 감정도, 기억도 모두 사라진다. 기록

하지 않는 사람은 평생 갓난아기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 행동이 어

떤 의미인지도 모른다. 자기 마음과 생각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기 자신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도 없다. 끊임없이 자신을 돌보고 기록하라. 무엇을 얻었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똑똑히 바라보라. 경험은 그제야 교훈이 되고, 과거는 비로소

오늘을 위한 지혜가 된다. 당신 삶의 가장 좋은 스승은 바로 당신이다. 기록하

지 않으면 그 스승은 결코 만날 수 없다.

최근에 나랑 자주 만난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윤리 교과서에 언급되었던 것만 어렴

풋이 기억하고 있었는데 '염세주의자' 철학자라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코로나 시국이라

다들 힘들었을때 '왜 인생이 힘들지 않아야'라는 책의 제목이 방망이질을 해서 바로 사서

읽었다. 일기를 써야만 내 안의 스승을 만날 수 있다고 하니, 매일 매일 맨날 맨날 써봐야

겠다. 일단 써 볼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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