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에 대한 예의

연분홍 치마가 봄 바람에 휘날리더라

by 초록여유

봄이 와도 그냥 그랬다.

다 큰 캥거루 때문이었다. 4년째 접어든다.

나의 시간은 더디 가도 너의 세월은 빨리 가서

더 힘들 수도 있다.

겨울도 잘 보냈는데 왜 그러냐고?

아니 새로운 시작의 봄에 직장을 찾아서

나갈 줄 알았다. 기대를 잠시 해서 더 힘들 수도 있다.

7년 만에 연락이 닿은 나랑 동갑인 외육촌은 작년에 작은 아이,

올해는 큰 아이가 제 짝을 찾아서 결혼식에 초대를 받았다.

자녀 둘 다 결혼식을 해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마냥 부러웠다. 결혼식장에 갔다가 왔어도 괜찮았는데

며칠 전에 아는 지인 딸은 두 군데나 턱 하니 취업이

되어서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이라고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딸보다 나이가 5살이나 어린데도

야무지게 일자리를 찾았다.

나가면 봄인데 더 우울해졌다. 아니 우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언제 캥거루를 내보내나!' 싶어 한숨이

나오려고 하다가도 명상 모드로 전환해서 호흡을 골랐다.

남편은 20년 된 자전차를 타고 나가서 시장에 가서 방풍나물,

햇 쑥, 돌나물 이렇게 세 가지를 사들고 나타났다. 점심부터

나물을 삶고 데치고 겉절이 하고 향내 좋은 쑥 국도 끓였다.

바쁘게 움직이고 입 터지게 먹고 나니 제정신이 좀 생겼다.

빨간 딸기도 한 박스 쌌다. 잼을 만들어서 여름까지 봄을 생각

하면서 먹어볼 요량이었다. 제철 토마토를 먹으면 힘이 날까

싶어서 비싼 것으로 한 박스 들고 왔다. 짭짤이 토마토는 여러

가지 맛이 났다. 여름에 먹어 보려고 아꼈던 국물 진한 콩국수도

해 먹었다. 친정엄마가 애써 가꾼 귀한 백태를 새로 장만한

두유 기계를 사용했다. 35분 만에 뚝딱 구수한 콩국물이 만들어졌다.

그래 아직까지 때가 아닌가 보다 했다. 그놈의 때는 왜 이리도

더딘지 성격 급한 사람 숨 넘어가 죽게 생겼다.

다른 방편으로 책을 필사했다. <불변의 법칙> 저자는 모건 하우절이다.

노트에 번호를 매겨 가면서 꼼꼼히 필사적으로 필사를 했다.

심리학자 도런 앨로이와 린 이븐 에이브럼슨은 이렇게 말했다.

우울한 현실주의 : 우울한 사람이 삶이 얼마나 위험하고 위태로운지

에 관해 더 현실적인 감각을 지니기 때문에 세상을 더 정확하게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 장기적인 성공을 누릴 만큼 충분히 오래 버티기

위해서는 당장 눈앞의 문제나 위험을 해결하고 살아남아야 한다.

'모든 여정은 원래 힘들다.' 목표로 삼을 가치가 있는 것에는 고통이

따른다. 중요한 것은 고통을 개의치 않는 마인드라고 책에서 말한다.

그런데 고통을 개의치 않기란 참으로 정말로 쉽지 않음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가 글을 읽고 깨달았다. 글이 잠시나마 위로를

건네고 나만 불안한 것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월요일에는 겨울 동안 사용했던 전기담요를 정리하고 이불도

빨기로 할 일을 억지로 만들었다. 그래 우울할 땐 빨래가 제격이다.

욕조에 물을 받아서 세제를 풀었다. 발로 지근지근 밟았다.

때 구정물이 많이 나왔다. 눈에 보이는 먼지도 대충 닦았다.

구정물과 함께 내 우울감도 약간은 아니 많이 따라 내려가는 듯했다.

몸을 움직이는 것만이 동작성 지능이 높은 엄마가

행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얼굴을 마주하면 차마 하고 싶은 말은

목구멍에서 내뱉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할 일을 바쁘게 찾았다.

여기저기 대중 없이 마음 가는 대로

빨래와 청소를 동시에 했다. 이불을 널고 나서 그동안

잘 입고 다니지 않았던 원피스를 꺼내서 차려입었다. 중식당에

가서 잡채밥'혼점'을 하고 오면서 마트에 들러서 장도 보고 돌아왔다.

가방에 책을 세 권 넣고 요가복으로 입고 또다시 집을 나섰다.

카페에서 졸다가 책을 읽다가 졸다가 책 읽기를 반복했다.

운동을 가면서 고개를 들어서 보니 어느새 목련은 활~~~짝

피어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반가웠다. 고향의 친구를 만난 것처럼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늘에 구름이 우중충히 있어도 꽃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꽃이었다. 내가세상사를 어찌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로 되지 않는다고

시무룩해 있어 봐야 별로 아니 전혀 개의치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도 봄은 봄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지금을 살아라'

고 되뇌었다. 며칠 전에 새소리가 나를 숲으로 데려갔다. 아파트 숲에서

처음 듣는 소리였다. 길을 가던 다른 사람도 고개를 들고 두리번 거렸다.

잠시 다른 생각을 멈출 만큼 자연히 고개를 들어서 눈으로 어디서

소리가 나는지 찾았다. 찾지 못했다. 윤무부 교수님에게 물어보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새소리였다. 아마 그 새소리는 '지금을 살아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우울해 있다고 해서 봄이 다시 겨울로 돌아가

지는 않는다. 파릇한 봄나물을 먹고, 여기저기 피어나는 봄을 눈으로

담고, 따사로운 햇 살에 이불과 패딩을 빨아서 말리고, 겨우내 웅크리고

있었던 주름져가는 힘이 빠져가는 몸을 깨워서 얼릉얼릉 가만히

앉아 있지만 말고 바쁘게 다니라고 정신 번쩍 차리라고 말이다.

화려한 봄에 대해 깍듯한 예우를 해드리고 나면

나에게도 아름다운 새소리처럼 아름다운 소식이 전해져 오리라!

세상 불변의 진리 앞에서 봄을 밝고 환하게 즐겨 볼일이다.

KakaoTalk_20260331_130743411_01.jpg


작가의 이전글셀프 탐구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