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의 비행

by 글소리


초등학생 때부터인지, 중학생 때부터인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꿈속에서 나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 능력이 있었다.


한참 키가 커야 하는 성장기 시절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이 키 크는 꿈이라는 게 정설이었다.

그래서 떨어지는 동안의 그 아찔하고 무서운 경험을 '성장'이란 해몽으로 풀어내는 이상하고도 괴이한 해설을 친구들은 철석같이 믿었다.

"이제 곧 나의 키가 자라겠지?"

친구들은 기대감으로 악몽을 길몽으로 바꾸는 초긍정 에너지를 발산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친구들과 다른 방식으로 성장했다.


나도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기는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바닥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나의 몸은 하늘로 다시 날아올랐고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비행하는 것이었다.


그 방법은 이러했다.

머리가 땅을 향해 떨어져 간다.

땅바닥이 눈에 보이기 시작할 때쯤 머리를 하늘로 힘껏 들어 올린다. 그리고 가슴, 몸통도 이어서 하늘로 들어 올린다.

그러면 다리도 같이 몸통을 따라 하늘로 올라간다.

그렇게 공중으로 올라 2~3미터를 날면 다시 땅으로 몸이 내려가기 시작하는데 같은 방법으로 머리를 힘껏 하늘로 들어 올리면 다시 내 몸은 하늘로 올라가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날아다니는 것이다.

나는 피터팬이 된 것처럼 날아다니는데 그때의 기분은 정말 짜릿했다.

내 몸을 바람이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는 이런 황홀한 비행은 오직 꿈속에서만 가능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은 비행하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을 안 꾼 지 한참이 되었다.

어쩌면 나의 비행능력이 이제 나이 들어 사라진 걸까?

아니면 더 이상 키 클 일도 없고 굳이 하늘을 날 일이 없어진 건가?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점점 나이가 들고 허리가 안 좋아 운동으로 수영을 하는데 체력이 달려 나는 주로 자유수영을 다녔다. 어린이용 풀에서 그야말로 자유롭게 내 맘대로 수영을 했다.

그러나 예전에 겨우 배운 자유형도 엉망이 되었고, 배영이 그나마 잘하는 편인데 배영만 했다 하면 허리가 아파서 이 마저도 못하니 운동이 아니라 물놀이하러 온 사람이나 모양새가 비슷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어서 키 판을 붙잡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키 판과 같이 얼굴을 수영장 바닥을 보며 물 위에 몸을 띄우고 발을 첨벙첨벙 엇갈려 젓는다.

2m는 갔을까? 숨이 차서 일어섰다.

어린이용 풀에서 2m마다 한 번씩 일어나 숨을 쉬고 다시 반복.

심장과 폐가 들숨과 날숨을 바쁘게 해대느라 혼자 헉헉거리며 숨을 쉬었다.

이번엔 키 판 없이 두 팔을 앞으로 나란히 뻗은 상태로 물 위에 엎드렸다.

순간 수영장 바닥으로 내 얼굴이 가라앉고 있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얼굴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가슴과 몸통을 들어 올리니 다리가 자연스럽게 S자를 그리며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다리가 따라오는 것을 느낀 순간 다시 고개를 수영장 바닥으로 들이밀고 따라왔던 두 다리를 힘차게 접었다 펴는 동시에 물을 밀어냈다.

그러자 나의 몸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무언가 익숙한 몸짓이었다.

한숨으로 수영장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갔다.


'이거 잠영이랑 비슷한 거 같은데...'


잠영을 따로 배운 적도 없는데 너무 쉽게 몸이 나아간다.


'뭐지?'


다시 반대 방향으로 출발한다.

내 몸을 훑고 지나가는 물결의 느낌이 어쩐지 익숙하다.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내가 한 잠영은 돌핀 킥과 비슷한 것이었다.

고래가 꼬리의 힘으로 물을 차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었다.

제대로 된 돌핀 킥 자세는 아니었지만 꿈속에서 내가 하늘을 날던 모습과 더 많이 닮았다.

이제는 고래처럼 물속에서 날 수 있게 된 것인가? 하늘이 아닌 물속에서?


그리고 얼마 지 않아 예전처럼 비행을 하는 꿈을 꾸었다.

정말 얼마 만의 비행인지, 꿈속에서조차 감탄하며 몸을 날리고 있었다.


'사라지지 않았어!'


옛날의 그 비행 방식대로, 고래의 돌핀킥처럼, 나는 이제 하늘과 물속에서도 날을 수 있는 능력자가 되었다.

근래 드라마에서 하늘을 나는 주인공을 보았다.

그의 비행 방법은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어쭈~ 좀 나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만약 내가 땅으로 제대로 떨어졌다면 내 키가 지금보다 더 컸을까?

어쨌거나, 나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로 잘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