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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영 Jul 24. 2024

솔직한 마음

2012년 7월 기록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하지만, 내가 이곳에서의 일을 평생, 말 그대로 죽기 직전 그 순간까지 할 수 있을까? 평생 하고 싶지만, 어느 시점에 더 이상은 못 하겠다고 하는 순간이 올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일이 힘들어서. 몸이 힘든 것과 같은 물리적인 힘듦 말고, 감정적인 힘듦을 버티기 힘든 순간이 올 것만 같아서다. 지금 느끼는 이 모든 감정들을 내 그릇에 담아내고 소화해 내고 담담하게 매일 내 길을 나아가기에는 내 그릇이 작다고 느껴져서다. 


병원에서의 일상에는 희망, 사랑과 같은 에너지도 있지만, 분명 슬픔, 분노, 안타까움의 에너지가 공존한다. 여러 가지 감정들이 짙은 농도로 한데 모여 있기에 가끔은 버겁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날 새벽, 모두가 잠든 그 깊은 새벽에 말이다. 오후 내내 끙끙 대던 아가들도 어느새 잠에 든 그 깊은 새벽이었다. 밤중에 한 아가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응급 채혈 처방이 났다. 채혈을 해야 해서 조용히 병실에 들어가 커튼을 열었을 때, 아파서 잠에 들지도 못하고 가만히 누워 있던 그 아가와 마주했다. 그리고 그 아가의 눈빛을 본 순간, 내게 남은 것은 슬픔뿐이었다. 


하루 종일 곁에서 간호하시느라 고단하셨을 엄마는 잠깐 눈을 감고 아가 옆에 나란히 누워 주무시고 계셨는데, 엄마의 잠든 얼굴에까지도 힘든 기색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엄마의 품에서 작은 손가락으로 엄마의 검지를 감싸 쥔 채로 힘없이 나를 빤히 쳐다보는 아가를 보는 그 순간, 병동의 새벽은 정말로 더 깊어지고 깊어져 버렸다. 


오히려 응애응애 울어줘 버렸으면 싶었다. 

차라리 나를 보고는 왜 또 왔느냐며 울지. 


아파도 너무 아파서 울지도 못하는 아가와, 잠든 얼굴 마저 힘든 얼굴인 엄마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진심과 사랑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 정말 이 일은 평생 내가 사랑할 일이면서, 동시에 정말 평생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일이다. 


이런 날이면 특히나 글이라는 것에 감사하다. 글이 있어 다행이다.


/ 간호사 김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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