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제게 '너 스스로의 감정은 억누르면서 다른 누군가가 늘 행복하기만을 생각하는 건 이상적이지 않냐'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아마 그래서 저는 현실에 발을 딛지 못하고 공중에 떠있는 듯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중력은 약합니다. 그래서 늘 손으로 땅을 붙잡고 삽니다. 손에 항상 생채기가 나더라도 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삶입니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은 상처 받지 않기를 바라지만, 저는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저는 원래 생채기 가득한 손을 평생 안고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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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상대를 위해서, 또 상황을 위해서 꾹 참아야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그걸 혀 속에서 굴리다가 속으로 삼키다 보면 끝없는 답답함만 느껴집니다. 어딘가 해소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말이 튀어나오는 것을 억지로 틀어 막습니다. 저는 이걸 계속 참아낼 용기가 있습니다. 참아내다 보면 삼킨 말도 잘 소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도 삼킨 말의 슬픔이 나를 괴롭힙니다. 괴로움에서 이겨내야 하는 것도 오로지 나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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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러지 않았을까라는 후회가 덕지덕지 삶의 공기를 감쌉니다. 하지만 후회하기에는, 그 후회들을 넘어서는 커다란 감정이 남아있습니다. 두 감정들이 싸울 때면 공기가 한없이 무거워집니다. 언제가 되어서야 괜찮은 척이 아닌 정말 괜찮아질 수 있을까를 늘 묻고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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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버티는 것만큼, 내가 기원하는 것만큼 누군가가 채워지지 않는 것을 볼 때면 심장이 쿵 내려 앉습니다. 여전히 늪을 헤매고 있는 사람을 내가 구원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것 만큼 아픈 감정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라도 그를 구원해줄 수 있기만을 바라고 바라면서 내 감정을 삼킵니다. 속이 다시 답답해져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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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원하는 답만 던져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원치 않는 질문만 던지고는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감정은 어쩌면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무게를 가진 것이 아닐까도 생각합니다. 그렇지만서도 받치고 있어야 하는 걸 알기 때문에 버팁니다. 버티고 버티다 보면 무뎌질 것 같아서입니다. 하지만 발 밑에 놓인 날선 슬픔들이 계속 상처를 냅니다. 언제쯤 내 발이 강해질까, 혹은 언제쯤 감정이 무뎌질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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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단상의 답들을 찾아 헤메고 있지만, 그 단상의 답을 찾을 수 없을 때도 많습니다. 감정을 정리하고 글을 쓰려 하지만, 감정이 도저히 정리가 되지 않을 때는 그냥 단상으로만 남겨 서랍 깊숙하게 넣어두려 합니다. 언젠가는 답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서 입니다. 지금은 그 단상들을 서랍에서 꺼내 한 곳으로 몰았습니다. 글로 모아두면, 답을 찾지 못한 단상들이 여기에서라도 나를 괴롭히지 않고 붙잡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누군가 답을 내려줄 힌트를 주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지기도 합니다. 언제든 기적은 멀리 있지만 희망은 가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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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밀한 이야기를 누구든지 볼 수 있는 공간에 쓰는 이유는 정리되지 않는 것을 어떻게든 정리하려고 하는 발악일지도 모릅니다. 한 달 동안 모아둔 단상의 파편들을 쏟아냅니다. 언젠가 발악을 끝낼 답을 찾았을 때, 이 흩어진 단상들을 소중하게 모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는 일단 깨진 조각들로 모아두기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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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제 자전의 속도는 조금 느리게 두려 합니다. 그럼에도 공전의 궤도는 늘 돌겠습니다. 자전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 멀리 있는 기적을 향한 나의 위대한 도약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 이 단상들의 파편들이 하나로 온전히 묶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만약 당신의 생각을 헤집는 파편들이 있다면, 그것도 온전히 하나로 다시 맞춰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