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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태현 Nov 16. 2022

한 걸음의 가치

 시작은 다들 어렵습니다.  저도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면서 처음은 어떻게 시작할까 고민합니다. 거창한 걸 꿈 꾸는 거죠. 근데 막상 첫 운을 떼는 문장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이 글의 시작도 마찬가지죠. 뭔가 쓰고 싶었는데 뭘 쓸까 고민하다가 시작은 어렵다라고 썼습니다. 단순하게 쓰고 나니깐 뒷문장은 쉽게 나옵니다.


한동안은 드라마에 대한 글을 쓰자고 생각했습니다. 주제가 있는 글은 쓰기 쉽거든요. 왜 쓰는지가 정해져 있으니까요. 그런데 다른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마구 끓어오를 때가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경우입니다. 어떻게든 써야지 해소될 것을 압니다. 그래서 쓰려고 했는데 정말 도저히 첫 문장을 쓰기가 어려운 겁니다.


처음에 소설을 썼을 때를 생각해봤습니다.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커서를 바라보다가 정말 아무 내용 없는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그게 제 첫 단편영화가 됐습니다. 만들기는 했다만 관객은 40명 남짓이었습니다. 아는 사람만 보여줬다는 거죠. 그래도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뭔가를 했다는 것에 의미를 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거창해지는 것 같습니다. 주제가 거대해지고 이야기의 소재도 독특한 걸 찾으려고 하는 겁니다. 근데 압니다. 그거 다 부질 없다는 걸요.


그걸 느낀 건 영화 <아바타>를 처음 봤을 때입니다. 형식은 3D라고 하니, 정말 독창적일 줄 알았지만 플롯은 <늑대와 함께 춤을>과 거의 동일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바타>를 두고 혁신적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형식의 성공에 의미를 두는 것이죠. 이야기는 진부하더라도 형식이 신선하다면 의미가 달라진다는 걸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걸 쉽게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아바타>가 개봉하고 13년이 흘렀습니다. 이 시점에야 완벽히 느끼는 것은 시작이 어렵지, 시작만 한다면 그게 어떤 이야기를 품든, 담는 그릇만 다르면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시작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든, 과거의 기억이든, 결국 과거의 실패에 대한 트라우마가 가장 강합니다. 하지만 다들 압니다. 한 걸음을 떼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를. 그런데 그 쉬운 걸 쉽게 시작하지 않으려 합니다. 시작이 거창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소해도 됩니다. 사소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거창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사소하게 시작한 것이 나중에는 거창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시작하지 못한 모든 이들에게 정말 위대해질 시작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을 위해 저도 사소한 한 발자국을 내딛습니다. 마치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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