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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보물, <얼렁뚱땅 흥신소>(2007)

by 안태현

1388년, 고려의 장수였던 이성계는 요동으로 향하던 군대를 돌리면서 고려 우왕의 후두부를 제대로 가격했다. 그리고 4년 뒤, 이성계는 고려라는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조선을 건국했다. 이후 이씨 왕조는 약 500년 이상 한반도를 통치했다. 그러나 일본 제국이 조선의 마지막 왕인 고종의 멱살을 틀어잡으면서 찬란했던 그 역사도 막을 내려야 했다. 고종은 이후에 조선이라는 국명을 버리고 대한제국이라는 새로운 국명을 선포했다. 이를 두고 훗날의 세대는 고종이 어떻게든 국력을 키워 일본 제국에 맞서려 했다는 긍정적 평가와 그 시기에도 끝까지 권력을 손에 놓지 않으려고 했다는 부정적 평가를 내놓게 된다.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지만 감히 말하자면, 후자의 평가 쪽에 마음을 더 두고 있다.


갑작스러운 역사 이야기가 나온 이유는 지금부터 다뤄야 하는 드라마에서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사극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다.’라고 답한다. 이 드라마의 배경은 2007년이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이기도 하다. 이 시기 나는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을 꽤 흥미롭게 읽은 상황이었고, 자연스럽게 흥선대원군부터 고종까지 이어지는 조선 후기 역사에 많은 관심을 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만나게 된, 드디어 이름을 꺼내게 된 드라마는 KBS 2TV <얼렁뚱땅 흥신소>였다.


<얼렁뚱땅 흥신소>는 고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007년에 무슨 고종에 대한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고종이라는 사람이 아닌 고종이라는 인물이 남긴 보물에 대한 이야기다.


만화 <원피스>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영화 <캐리빈안의 해적>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항상 지구 어딘가에 어마어마한 보물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품고는 한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처럼 숨겨진 보물을 찾아나가는 서사는 정말 많은 세대에게 익숙하다. 특히 여전히 어딘가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믿고, 전 세계를 떠도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얼렁뚱땅 흥신소>도 그런 보물을 찾아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바로 고종이 남긴 보물이다.


<얼렁뚱땅 흥신소>가 내세우는 가설은 이렇다. 고종이 서울 어딘가에 어마어마한 양의 금괴를 놓았다는 것. 근데 이게 그저 막연한 이야기도 아닌 것이, 야사에서도 고종이 독립 운동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금괴 85만냥을 12개의 항아리에 나눠서 서울 어딘가에 숨겨두었다는 이야기들이 종종 등장한다. 그 중에서는 독립운동가 선우훈이 쓴 『사외비사』에서 나오는 설이 가장 주목을 받았다. 바로 고종이 덕수궁에 이 금괴들을 파묻었다는 설이다. 85만냥이 어느 정도냐고 한다면, 약 30톤 정도라고 보면 된다.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Cap 2022-11-18 13-09-17-301-vert.jpg KBS 2TV '얼렁뚱땅 흥신소'


<얼렁뚱땅 흥신소>에서 이 금괴를 찾아 나서게 된 주인공들은 <원피스>나 <인디아나 존스>의 주인공처럼 특출한 신체 능력이나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아니다. ‘얼렁뚱땅’이라는 제목처럼 모인 사람들도 정말 엉성함 그 자체다. 태권도장 사범 박무열(이민기 분), 타로 마스터 정희경(예지원 분), 만화방 사장 김용수(류승수 분)가 그 주축이다. 지금 당장 내 주변을 둘러봐도 흔히 보이는 인물들이 이 보물찾기의 주인공이 됐다.


이들이 보물을 찾아 나서게 된 계기도 뭔가 얼렁뚱땅이다. 세 사람은 이름부터 대놓고 황금을 표방하고 있는 황금빌딩에서 서로 몸을 부대끼며 살고 있다. 특히 회원 수도 적은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박무열과 만화 가게 주인 김용수는 거의 한량과 다름없다. 언젠가부터 비어있는 흥신소 사무실에서 짜장면이나 시켜먹고 시간을 보내는 게 이들에게는 일상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흥신소 사무실에 고양이를 찾아달라는 한 의뢰인이 방문한다. 흥신소 직원은 아니지만, 돈도 준다기에 박무열과 김용수는 고양이를 찾아 나선다. 그러다가 이들과 친하게 지내던 정희경까지 합세한다. 하지만 고양이를 찾다가 이들이 마주하게 된 건 건물 지하에 있는 백골 사체다. 근데 백골 사체 근처에는 금괴 세 개도 함께 놓여있었다.


과연 금괴가 왜 백골 사체와 함께 있을까를 고민하던 세 사람에게 유은재(이은성 분)가 나타난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억대 재산을 상속 받은 유은재. 그는 어느 날 옥상에서 기절해 있다가 박무열에게 발견된다. 박무열은 예쁘장하게 생긴 유은재에게 마음이 뺏긴다. 그런데 유은재는 뭔가 금괴가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여기에 빌런도 등장한다. 바로 오래 전부터 고종이 숨겨둔 금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던 백민철(박희순 분)이다. 조폭 두목인 그는 황금빌딩에서 금괴와 백골 사체가 발견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추적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걸 황금빌딩 삼인방과 유은재가 눈치 챈다. 이들도 이제 어마어마한 양의 금괴가 서울 어딘가에 파묻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게 ‘골드 D. 고종’이 남긴 금괴를 찾기 위한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다.


아직 보시지 않은 분들을 위해 결말에 대한 발설을 보류해두겠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사실 금괴를 찾는 이야기 속에 다른 이야기를 숨겨두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꼭 하고 싶다. 바로 ‘성장’이다. 고종이 금괴를 숨겨두었다고 얘기하면서, <얼렁뚱땅 흥신소>를 쓴 박연선 작가는 ‘성장’이라는 이야기의 보물을 드라마 속에 꽁꽁 숨겨 놨었다.


Cap 2023-03-05 18-07-09-303-vert.jpg KBS 2TV <얼렁뚱땅 흥신소>


이를 발견하게 된 나의 탐험 일지를 내보이자면 이렇다. 극 중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평범한 것처럼만 보이지만 어딘가의 포인트는 평범과 분명 엇나가 있다. 먼저 박무열은 정말 철없기 그지없고 무식한 인물에다가, 정희경은 타로를 봐준다고 하지만 삼류극단 출신 배우답게 연기력으로 사람들을 속이기 바쁘다. 김용수도 오래 전에 실종된 형에 대한 상처를 품에 안고 사는 어딘가 부족한 인물이다. 여기에 합류하게 된 유은재는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상속 받은 돈은 많지만. 어린 시절 겪은 모종의 사건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폐소공포증을 앓고 있다. 그래서 좁은 공간에 들어가면 기절하기 일쑤다.


이는 빌런으로 등장하는 백민철도 마찬가지다. 백민철은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사회의 낙인 속에서 살아가다 조폭이 되어버린 인물.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은 캐릭터들은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황금을 찾아 나서면서 오히려 정말 부족했던 자신의 한 부분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니깐 일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황금 찾기도 바쁜데 서로의 부족한 부분 때문에 티격태격 다투다가 상황은 복잡하게 꼬여간다.


근데 이 인물들은 청소년도 아니고 평균 나이 30대 이상의 ‘어른’들이다. 이미 2차 성징은 끝나고도 한참이 지났는데 아직 이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상처나 부족한 부분 때문에 뭔가 덜 성장한 것만 같이 느껴진다. 실제로 하는 행동을 보면 이 사람들에게 진중함이란 없다. 정말 만화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후반부로 가면서 이들은 보물찾기에 열중하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상처와 부족한 모습이 무엇인지를 깨달아간다. 자신의 결핍을 마주한다는 건 좌절과 성장 사이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과 같다. 이제 주인공들은 선택해야 한다. 자신의 한계를 목도하고 보물찾기를 그만둘 건지, 혹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계속해서 보물찾기를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다.


<얼렁뚱땅 흥신소>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걸 선택한다. 이게 바로 ‘성장’이었다. 그러면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달아가고, 사람의 소중함, 우정, 사랑의 소중함도 깨달아간다. 일본 만화가 오다 에이이치로가 그린 <원피스> 속 주인공들은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보물찾기에 열중하면서 이런 의미들을 깨달아가고 있는데, <얼렁뚱땅 흥신소>는 16회 안에 이 모든 걸 담아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얼렁뚱땅 흥신소>가 <원피스> 보다 훨씬 경제적인 선택이 될 것이라고 자부한다.


그런데 왜 이 드라마가 유명하지 않냐고? 당시 경쟁작으로 만난 작품의 이름을 듣는다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거다. MBC <이산>과 SBS <왕과 나>였다. 시청자들 입장에서도 이 드라마를 보는 게 황금 찾기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작품이 후반부로 들어가면서는 다소 제작비가 부족해 보이는 느낌이 크다. 근데 그게 뭐가 중요한가. <얼렁뚱땅 흥신소>는 이 작품이 가지는 가치만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나 역시 이 드라마라는 보물을 발견했을 때,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큰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처럼 ‘성장의 과정’을 보던 내가 드디어 ‘성장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의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Cap 2023-03-05 18-07-40-265-vert.jpg KBS 2TV <얼렁뚱땅 흥신소>


보물찾기는 말 그대도 ‘보물’을 찾는 게 목적이다. 하지만 <얼렁뚱땅 흥신소>는 보물을 찾는다는 결과보다 중요한 게 그 과정이라고 얘기한다. 보물은 그냥 그 과정을 거쳐온 보상일 뿐이라는 거다. 보물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배워가고 깨달아가고,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자기 자신 속의 가치들을 발견하는 게 ‘보물찾기’가 주는 진정한 가치라는 것. 실패해도 좌절이 아닌 그게 성장의 발판이라고 생각하라고 하는 게 ‘황금빌딩’ 삼총사와 유은재의 보물찾기 고군분투기가 보여준 가치였다.


그때부터였나 나 역시 ‘결과’가 아닌 ‘과정’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결과가 어떻게 되든 말든 상관은 하더라도 크게 괘념치 않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서도 결과는 항상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을 늘 가지고 있다. 정말 주변에 ‘결과는 중요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도 분명 결과가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큰 사람이다. 그렇지만 과정에 중점을 두게 되니 실패를 해도 쉽게 좌절하지 않게 됐다.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걸 조금 더 보완하면 나중에 더 잘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노벨화학상을 받은 생화학자 로버트 레코프위츠처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된 거였다.


그러면서 또 한 가지 배운 점이라면, 너무 성공에 집착해서도 안 된다는 거였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만 모든 실패가 무조건 성공을 낳는 것도 아니다. 과감하게 놓아버릴 것은 놓아버려야 한다. 미련과 집착을 가지고 ‘실패를 하다 보면 꼭 성공할 거야.’라고 달려든다면 그것부터 이미 ‘과정’의 소중함 보다 ‘결과’의 소중함을 우선순위에 두게 된 것이니 말이다.


실제로 고종이 금괴를 묻었는지, 정말 덕수궁 어딘가에 금괴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드라마에서는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와서 포크레인을 동원해 덕수궁을 파헤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어딘가에 보물이 있다는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뭔가 모를 호기심과 기대감이 차오른다. 그 희망은 우리를 변하게 만든다. 뭔가를 갈구하게 만들고,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그저 금괴라는 결과에만 집중해서 포크레인을 동원해서 덕수궁을 파헤치려 든다면 문화재보호법에 의거해서 처벌 당할 게 뻔한 결과다.


금괴보다 더 우리의 인생에서 값진 것들은 어디에든 산재해 있다. 다만 우리가 그 보물의 의미를 찾지 못했을 확률이 가장 높다. 나는 그 귀중한 것의 의미를 찾는 과정도 금괴 30톤과 마찬가지의 가치를 가진 것이라고 본다. 허황된 금괴만 좇다보면 내 주변의 값진 것들을 놓치게 되는 실패를 계속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결과보다는 과정과 성장이 중요하다고 마음에 되새겨야 한다.


물론, 모든 성장에는 통증이 필요하다. 그게 우리에게는 좌절로, 슬픔으로, 아픔으로 다가온다. 그 과정에서 결국 다 놓고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좌절에 안주한다면, 변하는 건 없다.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다시 되돌아보고 새로운 희망을 품어야 한다. 희망이 저기 어딘가에 있는데, 앉아만 있다면 누군가 먼저 그걸 빼앗아갈지도 모른다.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자. 일어나는 그 사소한 몸짓 하나도 당신에게는 보물을 찾는 과정의 하나이자 성장이다.


어쩌면 그 몸짓 하나라는 ‘과정’과 ‘성장’ 당신의 인생을 바꿔주는 보물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결국 인생이라는 과정 모든 게 보물이 아닌가 싶다. 정말 금보다 더 소중한 게 ‘시간’이다. 우리가 가진 ‘시간’이 바로 인생이라는 것. 이렇게 <얼렁뚱땅 흥신소>는 내게 정말 얼렁뚱땅 삶에 대한 의미를 전해줬다. 그럼 이제 내가 보답을 할 차례다. <얼렁뚱땅 흥신소>라는 보물이 있으니, 꼭 찾아가 보시라고 하고 싶다. 그곳에서 당신은 어떤 보물을 발견하게 될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 궁금증이 또 나를 설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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