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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태현 Nov 11. 2022

기억하며 기억된다는 것, <투명인간 최장수>(2006)

2005년과 2006년의 드라마 두 편을 선정하자 조금은 뜨악했다. 연달아 시한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게 되다니. 이번에 다룰 드라마도 주인공이 시한부를 산다. <장밋빛 인생>처럼 암은 아니다. 몸이 점점 아파가면서 죽게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기억의 시한부를 산다. 조금씩 기억을 잃어가게 되는 병에 걸린 인물이 주인공이다. 기억을 잃어가면서 그의 존재조차도 투명해져서 보이지 않게 되는 삶을 산다. 2006년 방송된 유오성, 채시라 주연의 KBS 2TV <투명인간 최장수>에 대한 이야기다.


그 시절을 살았던 나의 인생이 너무 격했던 걸까. 아니, 오히려 그 시대의 작가들이 정말 그런 이야기들을 좋아했던 것이리라. 그래서 시청자들은 끊임없이 TV에 앉아서 눈물을 흘려야 했다. 눈물이 흐를수록 시청률은 고공상승하니 작가들은 작정하고 시청자들의 페이소스를 자극했다. 하지만 덕분에 나의 열다섯 살은 정말 우울했다. 누군가를 현실에서 떠나보내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는데, 드라마 주인공들은 너무 쉽게 현실에서 떠나갔다. 게다가 ‘중2병’에 걸려서 허우적대고 있는 나에게 <장밋빛 인생>과 <투명인간 최장수>는 과연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냐를 끊임없이 탐구하게 만들었다.


후에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사후세계나 신이라는 영역에 큰 관심을 가진 이유가 이것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불교, 기독교, 천주교를 거쳐 지금은 완전한 무신론자가 되어버린 나지만, 그 열다섯 살의 나는 논리로 탄탄하게 쌓아올린 무신론자도 아니었고, 유약한 감정으로 켜켜이 쌓여 올린 한없이 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드라마를 통해 인생을 배웠다고 하지만, 드라마를 통해 인생을 생각한 것도 많았다. 그 고민의 절반은 <장밋빛 인생>과 <투명인간 최장수>가 남겨둔 유물이기도 했다.


다만 두 드라마를 보고 인생을 고민한 결은 확연하게 달랐다. <장밋빛 인생>이 어떠한 한 존재의 물리적 소멸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면, <투명인간 최장수>는 기억이라는 추상적인 것의 소멸이 어떻게 존재에게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지금이야 심신 일원론이나 심신 이원론에 입각해서, 논리적으로 이 복잡한 이야기들을 풀이해 보려고 하겠지만, 당시 그 개념 자체를 몰랐던 나는 ‘기억이 존재에 미치는 영향’을 <투명인간 최장수>라는 사례에 입각해서만 생각해야 했다. 갑자기 관념적인 단어를 쓰는 것을 용서해주시라. 어쨌든 이건 열다섯 살의 나에 대한 이야기다. 그만큼 중2병 단단히 걸린 사람이었다.


KBS 2TV <투명인간 최장수>


극 중 최장수(유오성 분)는 강력계 형사다. 토끼 같은 딸과 아들도 있고, 사랑스러운 아내 오소영(채시라 분)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드라마와 영화에 나오는 형사들은 대개 가정적이지 않다. 오직 범인 잡기에 바쁘다. 매일 잠복근무를 하고, 범인의 뒤를 쫓느라 가족들을 잘 살피지 않는다. 게다가 쥐꼬리 같은 월급으로 가족을 이끌어야 한다니, 이보다 불쌍한 직업이 없다. 현실 속 경찰의 삶은 나도 잘 모르기에, 드라마와 영화 속에 묘사된 것으로만 판단해 쓰고 있다. 편견이라고 생각한다면 편견이 맞다. 실제 가정적인 경찰들도 넘쳐난다. 그렇지만 한국 영화와 드라마 속 경찰의 프로토 타입은 항상 냄새나는 양말과 속옷도 제때 못 갈아입는 바쁜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이지 않나.


어쨌든 각설하고, 최장수도 여느 드라마 속 대한민국의 형사들과 마찬가지의 모습이다. 가족들이 이사를 하는 날에도 범인 잡기에 열중하고 있고, 매번 다쳐서 가족들 앞에 서기가 부지기수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최장수와의 추억은 거의 전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최장수 자식들에게 추억이란, 아빠와 어딘가로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닌 아빠 없이 여행 떠난 것이 더 많았다. 어쩌면 가족들에게 최장수라는 존재는 원래부터가 희미한 존재였던 거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범인 찾기보다 가족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생긴다. 사소한 것들을 깜빡깜빡하는 것들이 심해져서 병원에 찾아가보니 갑작스럽게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아버린 거였다. 범인을 잡으려다 머리를 맞아 충격을 받은 일들이 중첩이 되면서 그의 뇌에도 이상이 생긴 것. 이에 최장수는 완전히 자신이 기억을 잃기 전에 망가진 가족의 사이를 다시 되돌리기로 한다. 점점 자신의 기억은 희미해질 텐데, 가족들만이라도 자신에 대한 기억을 강렬하게 각인했으면 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후회는 늦다. 벌써 가족들에게 ‘투명인간’이었던 최장수가 자신의 형체를 되찾는 일이란 너무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최장수는 세상 모든 존재에게 ‘투명인간’이 되더라도 가족들에게만은 자신이 투명인간이 아닌 ‘아빠 최장수’ ‘남편 최장수’가 되고자 한다. 그때부터 최장수는 자식들과 함께 새로운 추억을 쌓아가거나, 평생 자신 때문에 가정에 희생하면서 살았던 아내 오소영을 위해서 사랑의 표현을 늘려간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최장수에게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안다. 점점 건망증이 심해지거나, 멍해져 가는 그의 모습을 보게 된다. 게다가 소중한 추억을 쌓는 시간 속 가족들 앞에서도 갑자기 정신을 놓아버리는 최장수의 모습을 보면서, 알츠하이머라는 병이 어떤 병보다 더 악마 같은 병이라는 것을 느끼게 됐다.


KBS 2TV <투명인간 최장수>


기억을 점점 잃어가던 최장수에게는 뜻밖의 시련이 또 하나 찾아온다. 바로 오소영의 신장 장애다. 최장수가 가정에 없는 동안 궂은일은 도맡아 왔으니 오소영의 몸도 남아나지 못했다. 이런 오소영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최장수는 생각한다. 자신은 어차피 곧 모든 기억을 잃게 된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결심한다. 어차피 가족의 곁을 떠날 것이라면 신장을 오소영에게 기증하고 떠나겠다는 거였다. 그리고 자신의 신장을 기증받은 오소영은 최장수의 몫만큼 가족들을 더욱 행복하게 이끌어야 하는 책임감을 안아야 했다. 그래서 최장수의 마음은 무거웠다. 안 그래도 잘 챙겨주지 못한 오소영에게 더한 책임감을 떠안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짓눌렀다.


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 최장수는 계속 기억을 잃어간다. 그래서 계속해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내가 나에 대한 기억을 잃고, 또 당신에 대한 기억을 잃더라도, 당신은 늘 나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는 생각이다. 한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잃어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얼마나 위태로운지 모른다. 그 위태로움 속에서 시청자들은 눈물로 채워진 바다를 헤엄쳐야 했다.


특히나 자신에게는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가족들에 대한 기억까지 가물가물해지는 최장수의 모습은 너무 가슴 아팠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도 언젠가 내게 희미해질 수도 있을 존재들에게 ‘지금 당장’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항상 소중하게 대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노력이라도 한다면 달라질 거라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되면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을 많이 남길 수만 있을 것 같았다.


기억이라는 건, 우리의 삶을 찬란하게, 또 불행하게 만든다. 정말 행복했던 기억은 언제나 끄집어내서 그 기억 속 순간의 감정을 꼭 끌어안게 만들고 싶어진다. 하지만 불행했던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거나, 정말 쪽 팔렸던 기억으로 남아 이불 속에서 수없이 많은 발차기를 하게 만든다. 그런데 어쩌겠나. 그 기억이 내가 살아온 족적이다. 내가 쌓아온 것이기에 기억은 ‘나’라는 한 존재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과거가 없다면 현재도 없고, 현재가 없다면 미래도 없다. 나라는 존재의 과거는 현재의 나를 만든 가장 중요한 순간들이었다. 그래서 만약 기억이라는 것이 없다면 내가 살아온 것의 의미도 모두 사라진다. 앞으로 살아갈 삶도 무의미해진다. 기억하지 못할 것인데,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싶다. 이러한 생각이 <투명인간 최장수>를 보던 때에 나를 지배했다. 그때부터였나. 원래 쓰지도 않은 일기를 쓰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이 말이다.


KBS 2TV <투명인간 최장수>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될 가족사를 꺼내보자면, 어릴 적 나의 외할머니도 기억을 잃어가는 병에 걸리셨다. 내 기억 속의 외할머니는 언제나 인자하시고, 나를 보면 무엇이라도 하나 더 챙겨 주시려 하던 분이셨다. 하지만 그런 외할머니가 가끔씩 깜빡깜빡하시는 게 잦아지셨다. 그 시점부터 나는 외할머니를 그전만큼 많이 만날 수 없었다. 교류가 적어지고, 연락도 적어지다 보니 외할머니의 존재도 내게서 가물가물해졌을 때, 나는 외할머니의 건망증이 더 심해졌다는 걸 전해 들어 알게 됐다. 그리고 그 병세가 더 깊어졌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외할머니라는 존재가 나의 곁에서 영원히 떠나고 난 뒤였다.


외할머니는 평생 걸어 다니셨던 길도 기억을 못하셨고, 집을 찾아 동네를 헤매시다가 음주운전 차에 치여 돌아가셨다. 그 순간, 외할머니는 과연 어떤 기억을 안고 계셨을까. 적어도 음주운전 차에 치이셨던 순간만큼은 기억하지 않으셨기를 바랐다.


이런 나의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은,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셨다고 하더라도 지금 내가 쓰는 글처럼 내 기억 속에는 외할머니라는 존재는 내게 강렬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교류가 적었어도, 외할머니가 내게 남긴 강렬한 ‘사랑’이라는 감정은 여전히 내가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었다. 어쩌면 외할머니의 기억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희미해졌을지라도, 또 지금은 영원히 만날 수 없을지라도 내게 외할머니는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되고 있다. 어쩌면 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웃음을 짓고 계시는 외할머니는 지금도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기억은 그래서 소중하다.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건, 내가 언젠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여전히 이 세상에 발을 붙이고 있도록 만드는 정말 강력한 중력이다. 저 많은 위인들이 여전히 우리가 사는 세상에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처럼, 기억된다는 건, 죽어도 그 존재의 가치만큼은 죽지 않게 만드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뭔가를 이뤄내고 내 이름을 알리려고 하는 걸지도 모른다. 누군가 계속해서 나를 기억해줬으면 하는 욕망이자, 삶에 대한 미련이다.


최장수도 결국 투명인간처럼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지만 그 ‘존재’의 소중함은 주변인들에게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사랑’이라는 존재로 기억돼 가족들의 곁에 영원히 남았다. 어쩔 수 없이 기억을 잃어간다는 건 슬픈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내가 기억되지 않는 것은 그보다 더한 슬픔이자 아픔이다. 그래서 극 중의 가족들은 최장수를 슬픔으로 간직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행복으로 기억하려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들의 기억 속 최장수는 슬픈 인생을 산 것이 아닌 누구보다 행복한 인생을 산 것이니. 그리고 그 기억 속에서 최장수는 여전히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을 터다.


오소영에게 신장을 이식하고 혼수상태에 빠진 최장수는 가족들과의 행복했던 기억을 쥐고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그는 식목장을 치르고 나무가 됐다. 최장수의 이름이 새겨진 나무는 끊임없이 자랐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최장수 나무는 자라고 있다. 그렇게 그는 계속 기억된다, 또 기억될 거다. 이제 그는 ‘투명인간 최장수’가 아닌 ‘끊임없이 자라나고 기억될 최장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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