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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태현 Jul 29. 2023

물음표와 느낌표, <D.P.>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누군가는 삶을 무수한 물음표에 느낌표를 다는 지지부진한 과정이라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그 과정이라는 것이 단순히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얘기하고, 다른 어떤 이는 그것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숭고한 업적이라고 목소리를 낸다. 무엇을 어떻게 보든, 보는 사람에 따라 뭐든 답이 될 수는 있겠지만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게 삶이자 그걸 살아가는 방향성일 터다. 그래서 우리는 드라마와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 누군가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참고하고, 어쩌면 내가 풀지 못하는 삶의 난제를 풀 수 있는 힌트를 찾을 수 있을까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 기대 속에서 보던 작품 속에서 내 사소한 물음표보다 더 큰 물음표를 끌어안게 되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나의 경우는 넷플릭스 시리즈 ‘D.P.’였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다들 군대를 간다지만, 그러지 않은 사람도 있고 그러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도 존재하는 법이다. 전자라면 공익근무로 대체복무를 한 나일 것이고, 후자라면 ‘D.P.’ 속에서 등장하는 탈영병들일 터다. 사실 탈영병들 중에서도 군대를 원해서 온 사람이 존재할 수도 있다. 그건 군대에 오고 싶지 않았지만 끝까지 버텨내면서 전역장을 품에 안은 사람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 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생각들’ 속에서 ‘버티는 것’을 더 이상 견뎌낼 수 없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그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하극상을 벌이거나, 급기야는 탈영까지 감행한다. 이에 ‘D.P.’가 등장했다. 탈영병들을 잡기 위한 병사. 극 중 안준호(정해인 분)와 한호열(구교환 분)이다.


‘D.P.’는 안준호가 군대에 입대한 후 군탈체포조가 되어 군 생활을 해내가는 모습을 중심적으로 그린다. 그 과정에서 안준호는 수많은 탈영병들을 만나고 그들을 잡기 위해 한호열과 함께 고군분투한다. 군탈체포조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안준호의 삶은 물음표가 아닌 그저 수많은 온점들로 채워져 있었다. 자기가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을 품기보다는 묵묵하게 생계를 꾸려나가려고 했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게의 사장이 갑질을 하더라도 ‘왜?’가 아니라 단순히 ‘그럼 오토바이를 훔치자.’라는 원인과 결과가 간단하게 정리되는 인생을 살아왔다. 입대 통지서가 왔을 때도 안준호는 ‘왜 군대에 가야지?’가 아닌 ‘가야 하니깐 간다’라고 무미건조하게 생각했다.


넷플릭스 'D.P.' 스틸컷


그러나 안준호의 이러한 삶은 군탈체포조의 첫 임무에서 완전히 부서져 내린다. 시키면 하고, 안 시키면 안 하는 소위 ‘FM’의 삶을 살던 안준호가 자신의 상급자인 박성우(고경표 분)의 강권으로 술을 마시는 사이 탈영병이 자살을 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 더군다나 안준호가 술에 취한 채 탈영병인줄도 모르고 건네준 라이터가 자살을 하는 도구가 됐다. 이때부터 안준호는 ‘내가 미리 잡지 않아서’ ‘내가 술을 마셔서’ ‘내가 라이터를 건네줘서’ ‘내가 박성우를 말리지 못해서’라는 자책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탈영병의 죽음을 두고 그저 ‘어쩔 수 없는 사건이었다’라고 넘어가려는 박성우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면서 안준호는 분노를 터뜨리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중 박성우의 얼굴에 겹쳐진 자신의 얼굴은 ‘그저 시키는 대로만 살아왔던 나’에 대한 후회이자 분노였다.


안준호는 이후부터 필사적으로 탈영병들을 잡는다. 더 이상 자신이 행동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아서가 이유다. 그러나 이것이 안준호의 삶의 ‘느낌표’인 줄 알았지만 탈영병들의 여러 사연과 군대 내에서 벌어지는 부조리와 폭력을 마주하면서 안준호의 머릿속에는 ‘물음표’들이 가득 찬다. ‘아무리 많은 탈영병을 잡아봤자 바뀌지 않는 군대라는 조직이 과연 옳은 것인가’와 같은 물음표들이다. 그리고 이 물음표는 자신의 맞선임이었던 조석봉(조현철 분)의 탈영 사건과 자살 기도까지의 과정까지를 지켜보면서 더욱 커진다. 그래서 시즌1 마지막 안준호는 부대의 인원들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뛰어갔다. 조직이 바뀌지 않는다면 나라도 바뀌어야지라는 생각이었을 터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엇이 바뀔까? 이게 바로 시즌2의 시작이었다.


안준호와 함께 탈영병들을 잡는 한호열의 마음속에도 “뭘 할 수 있는데”라는 물음표가 가득 차 있다. 그건 후회이자 자조였다. 조석봉을 막지 못한 후회와 ‘뭔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과연 맞게 살아온 걸까라는 자조. 그건 이들을 이끄는 수사관 박범구(김성균 분)와 대위 임지섭(손석구 분) 역시 마찬가지였다. 탈영병들이 생기는 이유는 계속 묻어두고, 군대 내에서의 비리와 부조리까지 묻어두면서까지 탈영병들을 잡아야 하는 이들에게도 이 거대하면서 풀리지 않는 질문이 퍼져나간다. 그래서 이들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도 군대라는 조직에 맞서려고 한다. 내부고발자라는 딱지가 붙을 수도 있음에도 잘못을 바로잡고 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그건 숭고함일까, 혹은 무모함이었을까. 그건 그들의 선택의 결과를 마주한 ‘D.P.’의 결말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라 말을 아낀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삶에 대한 물음표’란 어디서 오는가다. ‘D.P.’는 이 거대한 질문이 후회와 자책 속에서 등장한다고 말한다. ‘왜 바꿀 수 없을까’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 같은 것들. 이건 내가 저지른 실수를 되돌리고 싶다는 집착 아닌 집착에서 더 커진다. 그래서 안준호, 한호열, 박범구, 임지섭 등의 인물들은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려고 한다. 되돌릴 수 없기에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기원하고, 잘못된 부분들을 고쳐나가려 한다. 하지만 대척점에 선 ‘군대’라는 조직은 “돌이킬 수 없다면 일어나지 않은 일로 만들라”라고만 얘기한다. 그저 ‘일어나지 않은 일’로만 치부하고, 지워버리고, 잊어버리면서 후회와 자책 또한 없이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렇게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걸 택한다.


넷플릭스 'D.P.' 스틸컷


그렇다면 던지는 나의 물음표는 ‘지금의 나는 어디에 서 있나?’다. 후회를 하고 있나라고 묻는다면 ‘그렇다’ 일 것이고, ‘일어나지 않은 일로 만들려고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일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나 역시 돌이킬 수 없다면 일어나지 않은 일로 만드는 행동들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어난 일을 일어나지 않은 일로 만들 수 있을까. 가라앉은 진실이 언젠가 수면 위로 떠오르듯 모든 일어난 것들은 지울 수 없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후회가 필요하다. 후회와 자책이, 또 사과가 필요하다. 되돌릴 수 없다면 되돌리고 싶다는 의지라도 드러내거나,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 노력이라고 해야 한다.


안준호는 그런 가시밭길을 스스로 걷는 인물이다. 거대한 물음표를 느낌표로 만들기 위해서 반대로 걷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좁고 긴 터널 속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 모든 게 시즌2의 마지막 회의 제목처럼 ‘내일’을 위해서다. 그리고 그 지지부진한 과정을 거친 후 안준호는 자문한다.


"나는 이곳에 와서 많은 이들을 만났고 많은 이들과 헤어졌다. 그들은 날 기억할까? 난 그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의 답은 무엇이었을까. 우연히 버스 밖 풍경에서 마주친 과거 후임들을 괴롭혔던 황장수(신승호 분)의 굳은 표정이었을까, 아니면 얼굴에 총상을 입고 안준호의 앞에 돌아온 조석봉의 활짝 미소 진 표정이었을까. 어떠한 것이라도 그 표정에서 읽을 수 있는 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이라는 걸 나는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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